아내는 며칠 전,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와 주변 지역을 샅샅이 뒤지면서 돌아다녔다. 이제 20개월에 접어든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열 군데 이상은 돌아다녀봐야 한대. 아내는 아침마다 옷을 차려입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열 군데나? 뭐 그렇게까지…. 어린이집이 다 거기서 거기지.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이내 후회했다. 가정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차라리 하지 말자, 매번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늘 자책골을 넣었다. 아내는 곧장 도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다시 말했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좀 차이는 있겠지. 암, 열 군데는 봐야지. 나는 괜스레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바지도 내리지 않은 채 변기에 걸터앉아 문밖 동향을 살폈다. 다행히 아내는 별다른 ‘액션’ 없이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저래 모면의 기술만 늘어나는 것 같았다.
일주일 넘게 어린이집을 알아본 아내는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냈으나 정작 아이를 보내지는 못했다. 아내의 예상보다 월 보육료 부담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자세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내 월수입의 25% 정도 되는 금액인 것 같았다. 이것저것 지원제도가 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해당이 안 된대. 대출을 많이 받긴 했지만 우리 명의로 작은 아파트가 한 채 있고, 내가 몰고 다니는 차도 한 대 있으니 그런 모양이었다. 더구나 어린이집에선 특별수업 명목으로 얼마씩 가욋돈을 걷는 눈치였다. 아내가 두 손을 든 것은 바로 그 대목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저축은 고사하고 대출금 이자도 감당하기 어렵겠구나, 그런 계산을 한 듯했다.
임신 7개월에 접어든 아내에게 어린이집을 알아보라고 권유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임신한 몸으로 20개월짜리 아들을 하루 종일 돌보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였거니와, 그 와중에 자격증 시험까지 준비하느라 쩔쩔매는 모습이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반나절만이라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아내에게도 태아에게도 숨 돌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한데 언제나 그렇듯 권유만 하고 책임을 못 지니, 미안한 마음만 가중되고 말았다. 어린이집 보육료를 구립 문화센터 헬스클럽 사용료와 엇비슷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 컸다.
당장은 안 보내도 좋은데…. 아이를 재운 뒤 아내는 우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이를 당장 어린이집에 안 보내도 좋은데, 앞으로 둘째가 태어나고 두 아이를 한꺼번에 교육시킬 일이 걱정이라는 말이었다. 벌써부터 아내에겐 이런저런 어린이 영어학원에서 하루 몇 번씩 광고 전화가 오는 모양이었다. 아내의 태도가 시원치 않으면 상담원들은 대뜸 아내를 무책임한 부모로 몰아붙인다고 했다. 곧 정부에서 학교마다 영재반을 만든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거기에 들지 못한다, 거기에 들지 못하는 아이가 뭐가 되겠느냐, 어린 나이에 패배자가 되는 거다…. 어린이 영어학원 상담원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교육 전쟁터, 영재반보다 부모 마음 어루만지길
그 말을 듣는 순간 뭐랄까, 나는 내가 좀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좋은 아빠,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많이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때 이른 자책도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이 문제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들어왔고 선거철마다 핵심 공약이 되는데도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일까? 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또 괜스레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나는 담배를 피웠다. 피워도, 무엇 하나 마음에 위로가 되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툭 까놓고 말해서 나는 지난 선거에서 현 대통령을 찍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 대통령이 이 땅의 교육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준다면, 나는 주위에서 어떤 욕을 먹더라도 그를 지지할 마음을 갖고 있다. 사실 그것은 간단한 문제다. 얼마 전 한 신문 칼럼에서 누군가 지적했듯, 과외를 전면 금지하면 되는 문제다. 칼럼을 쓴 사람은 그것이 허황된 공상(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위헌 결정이 내려진 문제이므로)이라고 했지만, 이 땅의 교육이 자꾸 주저앉는 이유는 그것을 이상화하고 추상화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헌재의 결정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고, 한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합의를 본다면(예를 들어 ‘국민투표’), 그것은 충분히 교정 가능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사실 지금처럼 경제 불황이 지속될 때일수록 그런 합의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그런 점에서 대통령에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합의가 결코 기회의 균등을 빼앗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또 장담하건대 합의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세금을 기꺼이 낼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학원 종사자들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제발 이 포악한 사교육의 전쟁터 아래에서 영재반 따위를 만들 생각 하지 말고, 부모들 마음부터 어루만져주면 좋겠다(영재반 따위를 만들려거든 과외금지부터 하기 바란다). 지금 같은 심정이라면 ‘과외금지 전 국민 청원’ 사이트라도 만들겠다. 동네 구청에서도 헬스클럽을 운영해 구민 건강을 신경 써주는데 왜 아이들은 이렇게 오랜 세월 방치하는지, 나는 그것이 계속 의문스러울 뿐이다.
일주일 넘게 어린이집을 알아본 아내는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냈으나 정작 아이를 보내지는 못했다. 아내의 예상보다 월 보육료 부담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자세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내 월수입의 25% 정도 되는 금액인 것 같았다. 이것저것 지원제도가 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해당이 안 된대. 대출을 많이 받긴 했지만 우리 명의로 작은 아파트가 한 채 있고, 내가 몰고 다니는 차도 한 대 있으니 그런 모양이었다. 더구나 어린이집에선 특별수업 명목으로 얼마씩 가욋돈을 걷는 눈치였다. 아내가 두 손을 든 것은 바로 그 대목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저축은 고사하고 대출금 이자도 감당하기 어렵겠구나, 그런 계산을 한 듯했다.
임신 7개월에 접어든 아내에게 어린이집을 알아보라고 권유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임신한 몸으로 20개월짜리 아들을 하루 종일 돌보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였거니와, 그 와중에 자격증 시험까지 준비하느라 쩔쩔매는 모습이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반나절만이라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아내에게도 태아에게도 숨 돌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한데 언제나 그렇듯 권유만 하고 책임을 못 지니, 미안한 마음만 가중되고 말았다. 어린이집 보육료를 구립 문화센터 헬스클럽 사용료와 엇비슷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 컸다.
당장은 안 보내도 좋은데…. 아이를 재운 뒤 아내는 우울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이를 당장 어린이집에 안 보내도 좋은데, 앞으로 둘째가 태어나고 두 아이를 한꺼번에 교육시킬 일이 걱정이라는 말이었다. 벌써부터 아내에겐 이런저런 어린이 영어학원에서 하루 몇 번씩 광고 전화가 오는 모양이었다. 아내의 태도가 시원치 않으면 상담원들은 대뜸 아내를 무책임한 부모로 몰아붙인다고 했다. 곧 정부에서 학교마다 영재반을 만든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거기에 들지 못한다, 거기에 들지 못하는 아이가 뭐가 되겠느냐, 어린 나이에 패배자가 되는 거다…. 어린이 영어학원 상담원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교육 전쟁터, 영재반보다 부모 마음 어루만지길
그 말을 듣는 순간 뭐랄까, 나는 내가 좀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좋은 아빠,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많이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때 이른 자책도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이 문제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들어왔고 선거철마다 핵심 공약이 되는데도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일까? 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또 괜스레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나는 담배를 피웠다. 피워도, 무엇 하나 마음에 위로가 되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툭 까놓고 말해서 나는 지난 선거에서 현 대통령을 찍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 대통령이 이 땅의 교육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준다면, 나는 주위에서 어떤 욕을 먹더라도 그를 지지할 마음을 갖고 있다. 사실 그것은 간단한 문제다. 얼마 전 한 신문 칼럼에서 누군가 지적했듯, 과외를 전면 금지하면 되는 문제다. 칼럼을 쓴 사람은 그것이 허황된 공상(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위헌 결정이 내려진 문제이므로)이라고 했지만, 이 땅의 교육이 자꾸 주저앉는 이유는 그것을 이상화하고 추상화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헌재의 결정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고, 한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합의를 본다면(예를 들어 ‘국민투표’), 그것은 충분히 교정 가능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사실 지금처럼 경제 불황이 지속될 때일수록 그런 합의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그런 점에서 대통령에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합의가 결코 기회의 균등을 빼앗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또 장담하건대 합의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세금을 기꺼이 낼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학원 종사자들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제발 이 포악한 사교육의 전쟁터 아래에서 영재반 따위를 만들 생각 하지 말고, 부모들 마음부터 어루만져주면 좋겠다(영재반 따위를 만들려거든 과외금지부터 하기 바란다). 지금 같은 심정이라면 ‘과외금지 전 국민 청원’ 사이트라도 만들겠다. 동네 구청에서도 헬스클럽을 운영해 구민 건강을 신경 써주는데 왜 아이들은 이렇게 오랜 세월 방치하는지, 나는 그것이 계속 의문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