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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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 매콤 개운한 그 맛, 예술이네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4-03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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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콤 매콤 개운한 그 맛, 예술이네

    밴댕이회무침이다. 여기에 강화 교동 추청쌀로 지은 밥을 비벼 먹으면! 오른쪽 귀퉁이에 조금 보이는 것은 잘 삭은 돌게장.

    일 때문에 러시아 연해주를 방문하는 일이 잦다. 초기에는 호기심으로 느끼한 러시아 음식을 잘도 먹었는데 서너 차례 먹다 보니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해진다. ‘주간동아’에 칼럼을 연재하기로 한 뒤 바로 연해주에 갈 일이 생겼다. 닷새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 1년 내내 똑같은 우리 국적기의 맛없는 기내식을 튜브 고추장으로 범벅을 해 식도에 밀어넣으며 ‘뭘 쓰지?’ 고민하다가 비행기에서 내려 가장 먼저 먹고 싶은 것을 쓰기로 했다. 그랬더니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것이 ‘집밥’이었다. 집에서 먹는 밥만큼 맛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 다음에 ‘강화식당’의 개운한 회무침이 눈앞에 떠올랐다.

    ‘강화식당’은 네댓 차례 넘게 가본 곳이다. 그런데 갈 때마다 헤맨다.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뒷골목에 들어앉아 있는 탓이다. 경기도 일산 정발고등학교 담벼락까지만 찾으면 그 다음은 쉬운데, 초행인 사람은 반드시 전화(031-905-1083)를 하고 갈 일이다. 골목을 헤매다 보면 강화식당이란 간판보다 ‘밴댕이 전문’이라고 쓰인 돌출간판이 먼저 눈에 띈다.

    제철 생선 사용 … 밥에 비벼 먹어도 그만

    이 식당은 컨셉트가 분명하다. 강화에서 나는 식재료로만 음식을 해서 낸다. 밴댕이를 비롯해 준치, 병어, 전어, 꽃게, 조기 등의 해산물로 회, 회무침, 매운탕을 하고 반찬으로는 돌게장, 순무김치, 미역무침이 항상 나온다. 밥은 반드시 강화 교동 쌀로만 한다. 개성 없이 매장 넓이나 고급 인테리어만으로 밀어붙이는 일산의 여느 식당들에 비하면 마케팅에서 한 수 위다. 고객들에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를 심는 게 식당 생존 전략의 기본임을 강화식당 주인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음식을 빼면 이 식당은 가관이다. 주류회사에서 주는 광고전단을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데다 카운터 옆에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 창고를 방불케 한다. 허름한 시골 동네 식당 수준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감수된다.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식당에서 주로 먹는 것은 ‘회무침비빔밥’이다. 회로 썰어넣는 생선은 밴댕이나 전어, 병어 또는 준치로 그때그때 다르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계절에 따라 싸고 많이 나는 생선으로 회무침을 하는 듯이 보인다. 어떨 때는 밴댕이에 전어가 섞여 있기도 하고 병어가 들어 있기도 하다. 회는 얇게 저미고 양배추, 상추, 오이, 당근, 깻잎 따위를 채썰기 해 새콤 매콤 무쳐 내는데, 그 맛이 여느 회무침처럼 단지 새콤 매콤한 것만이 아니라 약간 고소한 향내가 어우러져 입 안을 즐겁게 한다.

    고소한 향내의 정체는 회무침 조금 한다는 식당들이 흔히 쓰는 콩가루가 아니라 들깻가루다. 간혹 들깻가루를 쓰는 식당에서 큰 실수를 하는데, 오래 묵어 기름 절은 냄새가 나는 들깻가루를 써서 음식 맛을 다 버려놓는 것이다. 강화식당에서는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아직 없었다.

    회무침을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고슬고슬한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예술이다. 강화 교동에서 지은 추청쌀(아키바레)만 쓴다는데 밥알이 하나하나 살아 있고 고들고들하면서 찰져 회무침과 비벼도 밥이 떡지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검정쌀의 달착지근한 향내가 회무침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므로 그냥 흰밥을 내놓는 게 어떨까 싶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100점을 줄 수가 있는데 한 가지 기찬 서비스 음식이 따라 나온다. 바로 돌게장이다. 꽃게 비슷하면서 껍데기가 단단하고 조그만 강화도 돌게를 간장에 푹 삭혀 내놓는다. 보통의 게장 전문점에서는 간장을 연하게 하고 오래 삭히지 않아 게의 싱싱한 맛을 강조하지만 강화식당의 게장은 살이 흘러내릴 정도로 푹 삭혀 발효음식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게다가 게장 그릇이 비면 끝없이 리필해주는 여주인의 넉넉한 인심도 좋고.

    공항에서 냅다 달려 강화식당에 앉아 느끼한 러시아 음식 기운을 다 밀어낸 뒤에야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다. 며칠 후 사진 건질 양으로 다시 가서 회무침을 또 먹었는데 여전히 맛있었다. ‘밴댕이 문화사’를 줄줄 읊어대던 남자 주인이 최근에는 보이지 않아 좀 섭섭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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