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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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선 미술이 과학을 앞섰다?

  •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미술이론

    입력2006-04-03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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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에선 미술이 과학을 앞섰다?
    팩션(faction·사실과 허구를 섞는 소설 기법)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지적 호기심과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동시에 충족해주는 책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에서는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한 고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다루어지는 반면 현대미술에 대한 팩션은 거의 없다.

    소설은 아니지만 미술에 대한 매우 독특한 관점을 유장한 필치로 써 내려간 책이 있다. 미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며 재미도 있다. 1991년 미국에서 출판되어 1995년에 번역된 ‘미술과 물리의 만남’(도서출판 국제 펴냄)이 그것이다. 지은이 레오나드 쉴레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업한 외과 의사로, 역사 속에서 미술이 과학을 어떻게 예지하고 선도했는지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약간의 과학 지식을 갖추고 있는 독자라면 더욱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고대의 유클리드기하학에서 현대의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과학적 사고의 진전이 일어난 순간들을 피라미드에서 현대의 대지 미술까지 이어지는 미술사의 주요한 작품들과 함께 다룬다.

    저자는 과학적 전환의 근본적인 계기들이 항상 미술가들의 예술 작품을 통해 한 세대 먼저 형상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가령 14세기에 조토가 원추곡선의 중요성에 대해 간파한 지 300년 후에 케플러가 원추곡선을 통해 행성의 운동법칙을 밝혀낸 일 사이에 필연적인 역사적 인과관계가 있다거나, 인상주의의 등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등의 예들이 구체적인 과학적 서술들과 함께 제시된다. 현대미술의 주요 주제들을 과학사와 미술사라는 틀 속에서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개인과 사회, 과학과 종교, 정치와 혁명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사고의 줄기들이 모두 교차하면서 지나간다.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이 방대한 이슈들을 정교하고도 일목요연한 논리로 미술과 과학의 두 틀 안에 새겨넣는 저자의 해박함과 창의성에 혀를 내두르게 하는 책이다. 현대미술의 이해에 눈을 뜨게 하는 시작으로는 더없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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