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는 얼마 전에 작고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1년 후’와 ‘멋진 구름’의 주인공 이름이자, ‘1년 후’의 팬인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구미코의 별명이다. 영화 속의 조제는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녀로, 같이 사는 할머니가 주워오는 책과 새벽마다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에 숨어 하는 산책이 그녀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다. 어느 날 새벽 산책하다 조제와 할머니는 마작 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쓰네오와 마주치는데, 그날부터 조제와 쓰네오의 다소 별난 관계가 시작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조제라는 캐릭터에 있다. 19세기 소설에 나오는 병약한 여자 주인공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조제는 단 한 번도 그 깔끔한 공식을 반복하지 않는다. 오사카 사투리로 퉁명스럽게 대사를 내뱉는 이 불친절한 캐릭터는 관객들의 시선을 1시간 반 동안 잡아두는 괴팍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나베 세이코가 쓴 20쪽 분량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의 유한성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주제를 사강의 소설에서 그대로 인용했다. 영화 중간에 조제는 사강의 책을 넘기며 다음 대사를 크게 낭송한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영화는 불멸의 사랑을 과장하는 대신 잠시 지속되는 젊은이들의 감정이 어떻게 이어져가는지를 보여주며, 그 유한한 찰나의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현명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주제는 조제라는 캐릭터의 설정에 의해 강화된다. 조제와 쓰네오의 연애담은 일대일의 공정한 위치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쓰네오가 대학 졸업을 앞둔 신체 건강하고 선량한 젊은이라면, 조제는 가난하고 학교도 다니지 않은 반신불구의 괴짜다. 이 둘을 연결해주는 동정심이라는 감정 역시 둘의 관계를 특별히 공평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조제는 이런 상황을 이기적으로 이용하지도 않고 자기 비하나 연민으로 몰고 가지도 않는다. 영화가 서글픈 결말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여전히 차분하고 쿨하다.
‘쿨(cool)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쿨한 영화다. 그건 ‘킬 빌’의 우마 서먼이 그런 것처럼 요란한 육체적 스타일의 과시가 아니라,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에서 다른 여자가 좋다는 남자 친구를 구질구질하지 않고 담백하게 떠나보내는 ‘리얼 시트콤’의 주인공과 같은 쿨함이다. 지저분한 감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논리의 주인이 되는 그런 쿨한 태도.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쿨함에 대한 현대인들의 갈망과 자의식에 호소하는 두 가지 면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조제라는 캐릭터에 있다. 19세기 소설에 나오는 병약한 여자 주인공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조제는 단 한 번도 그 깔끔한 공식을 반복하지 않는다. 오사카 사투리로 퉁명스럽게 대사를 내뱉는 이 불친절한 캐릭터는 관객들의 시선을 1시간 반 동안 잡아두는 괴팍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나베 세이코가 쓴 20쪽 분량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의 유한성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주제를 사강의 소설에서 그대로 인용했다. 영화 중간에 조제는 사강의 책을 넘기며 다음 대사를 크게 낭송한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영화는 불멸의 사랑을 과장하는 대신 잠시 지속되는 젊은이들의 감정이 어떻게 이어져가는지를 보여주며, 그 유한한 찰나의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현명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주제는 조제라는 캐릭터의 설정에 의해 강화된다. 조제와 쓰네오의 연애담은 일대일의 공정한 위치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쓰네오가 대학 졸업을 앞둔 신체 건강하고 선량한 젊은이라면, 조제는 가난하고 학교도 다니지 않은 반신불구의 괴짜다. 이 둘을 연결해주는 동정심이라는 감정 역시 둘의 관계를 특별히 공평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조제는 이런 상황을 이기적으로 이용하지도 않고 자기 비하나 연민으로 몰고 가지도 않는다. 영화가 서글픈 결말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여전히 차분하고 쿨하다.
‘쿨(cool)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쿨한 영화다. 그건 ‘킬 빌’의 우마 서먼이 그런 것처럼 요란한 육체적 스타일의 과시가 아니라,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에서 다른 여자가 좋다는 남자 친구를 구질구질하지 않고 담백하게 떠나보내는 ‘리얼 시트콤’의 주인공과 같은 쿨함이다. 지저분한 감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논리의 주인이 되는 그런 쿨한 태도.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쿨함에 대한 현대인들의 갈망과 자의식에 호소하는 두 가지 면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