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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昌 선친 묘 이장한 장소 ‘자미원’이냐 아니냐

한화갑·JP 선영도 반경 5km 내 위치… 권력 지향과 풍수 현재 진행형

  • 안영배/동아일보 출판기획팀 기자 ojong@donga.com 김두규/ 우석대 교수dgkim@core.woosuk.ac.kr

    입력2004-10-20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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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昌 선친 묘 이장한 장소 ‘자미원’이냐 아니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부친 묘.

    충청도에 ‘자미원(紫微垣)’이란 천하의 명당이 있다. 물론 구전되는 전설이다. 이곳 명당에 묘를 쓰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자가 나온다고 한다. 칭기즈칸이나 알렉산더보다 더 막강한 지도자를 잉태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조선 말엽 흥선군이 경기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 묘를 이곳 예산 가야산 자락에 쓰고 나서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흥선군은 풍수를 더욱 신봉, 충청도 어딘가에 있다는 자미원을 찾아나섰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는 것. 일제시대를 비롯해 해방 이후에도 자미원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지금까지 누구도 자미원을 찾았다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선친이 옮겨간 곳을 풍수적으로 살핀다면 어떨까. 자미원의 천하명당일까. 2004년 10월10일 일요일 오후 3시. 관광버스 한 대가 충남 예산군 신양면 녹문리 마을 입구에 멈춰 섰다. 이장한 이 전 총재의 선친 묘는 이 마을 뒷산에 있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등산복 차림의 50~7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손에는 필기도구와 패철(나침반), 혹은 수맥 측정용 ‘ㄱ자 모양의 쇠막대기(L-로드)’ 등을 들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찾은 최낙기(선문대 사회교육원 풍수 담당) 교수에게 이 전 총재의 선영 이장지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이곳이 자미원 명당 터가 맞습니까?”

    “모르지요.”

    “풍수적으로 좋은 땅입니까?”



    “이전 선영보다는 훨씬 좋지만 엄밀하게 혈(穴, 명당)은 아닙니다.”

    “대권을 장악할 만한 땅입니까?”

    “그야 모르지요,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 하지 않습니까. 여러 무덤들을 비교해봐야 알지, 한 집안의 선영만 보고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 다스릴 권력자 나올 ‘명당 중 명당’?

    관광버스를 타고 온 또 다른 답사팀 인솔자의 설명도 최교수와 대동소이하다.

    “새로 이장된 이곳은 앞의 예산읍 자리보다 100배 낫다. 이 일대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잡은 자리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백호날이 벗어났다. 좌청룡이 겹겹이 뻗어 있는 것을 보아 아들들이 잘되기를 의식하고 쓴 듯하다.”

    昌 선친 묘 이장한 장소 ‘자미원’이냐 아니냐
    이러저러한 이유로 조상의 무덤을 이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선친 묘 이장은 여러 면에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부친이 돌아가신 지 1년 반이 채 안 되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이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개 이장은 시신을 안장하고 시신이 육탈(肉脫)되는 데 걸리는 최소한 4~5년의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다. 이 전 총재 측은 “민원제기와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해진다.

    2002년 대선 직전 ‘주간동아’는 이 전 총재의 부친 이홍규 옹의 묘와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 선친 묘를 함께 비교, “풍수적으로 이회창 후보보다 노무현 후보가 더 강하다”는 기사(주간동아 363호 참조)를 내보냈다.

    “세 후보 가운데 선영으로 본다면 노무현 후보가 가장 좋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너무 강한 기운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 노후보에게 필요할 것 같다. … 그의 생가 역시 역대 대통령의 생가 터와 매우 유사해 산자락 끝 집이면서 좌청룡 끝 집에 해당한다.”

    昌 선친 묘 이장한 장소 ‘자미원’이냐 아니냐

    한화갑 민주당 대표 부모 묘.

    조선시대부터 소원 성취 가능성 기대

    대선이 끝나자 이회창 후보가 ‘풍수의 기(氣)’ 싸움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졌다는 말이 돌았다. 이번 이장을 놓고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는 이유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러나 풍수가들이 이번 이장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이곳 예산에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와 한화갑 민주당 대표 등 거물급 전·현직 정치인의 선영이 차례로 이장됐기 때문이다.

    김 전 총재가 선친을 모신 곳은 충남 예산군 신양면 하천리. 이곳으로 옮긴 것은 2001년으로,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이었다. 풍수 호사가들은 김 전 총재의 선영이 선 자리를 평소 ‘왕기가 서린 명당’이라고 평했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목포에 있던 선영 묘를 이곳으로 이장한 것도 2001년. 민주당 내에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인정받고 있을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 한대표는 ‘007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은밀하게 이장을 했다. 그러나 한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장전형 대변인은 확인 요청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김 전 총재와 한대표의 선영은 직선거리로 2km가 채 안 되며 주산을 같이하는 산 능선 양쪽에 쓰여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행정구역은 공주이나 예산군과 접경지역임). 이 전 총재를 비롯한 세 사람의 선영은 신양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반경 5km 안에 모두 있다.

    昌 선친 묘 이장한 장소 ‘자미원’이냐 아니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부모 묘.

    김 전 총재와 한대표가 비슷한 시기에 선영을 이장하자 “그곳이 자미원 명당 아니냐”는 소문이 퍼졌다. 물론 반론도 있었다. 자미원을 놓고 터져나온 갑론을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다가 이 전 총재가 선친 묘를 이 일대로 옮기면서 자미원 논쟁이 다시 일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최고의 권력을 지향했던 이들이 부모나 조부모 묘를 이장해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거나 최소한 그 가능성을 기대한 것은 200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공통점(표1, 2)이 있다. 특히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맞붙은 대선 경쟁에서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복귀한 뒤 부모 묘를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경기 용인으로 이장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장을 한 정치가들을 보면 이장 직후 그들의 발언이나 정치적 행보가 바빠진다. 우연인지 이 전 총재 역시 최근 들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국가보안법에 대한 강한 의견 표명을 한 것이나 추석 직후 서울 남대문에 개인사무실을 내는 등 정치적인 행보를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권력과 풍수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昌 선친 묘 이장한 장소 ‘자미원’이냐 아니냐

    경기도 용인의 김대중 전 대통령 부모 묘.

    “임금과 제후가 나는 큰 명당은 기이한 형태의 괴혈에 있는데,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昌 선친 묘 이장한 장소 ‘자미원’이냐 아니냐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면, 천심을 얻은 사람에게 대권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즉 민심을 얻은 자에게 대권이 주어진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풍수 논리도 그러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풍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 중인 일상의 삶이자, 또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버리기 아까운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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