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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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치 당당' 발레 배우는 여자

  • 입력2004-10-22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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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로고 발을 다쳐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자 무섭게 살이 오른다. 친구들은 임신했나며 놀리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함께 낄낄댈 정도니 말 다 했다. 빠른 치유가 우선이라 고칼슘 고단백질 위주로 열심히 챙겨먹고 있는 데다가 체중 조절까지 신경 쓰기에는 불편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너무 고단했다. 이제야 뼈가 붙어 기브스를 풀게 되니 본격적으로 살 빼는 문제를 고만할 때다.

    요가와 수영, 헬스 시간표를 받아두고 보니 몇 달간 쉬었던 발레 레슨에도 생각이 미친다. 서른 살이 넘는 늙은 초보자들이 레오타드와 타이즈 차림으로 바를 쥐고 플리에(Plie)나 바트망(Battement)동작에 열을 올리는 풍경은 희극적일 수도 있겠지만, 2년 가깝게 경험한 발레는 소박하고 건강한 취미가 될 만했다.실력 있는 강사가 성의 있게 지도하고 수강료도 저렴한 편인 데다(아무리 고급예술 분야의 레슨이라도 입시와 관련 없으면 의외로 수강료가 비싸지 않다)발레 입문자들의 연령대도 높아 부담이 적다. 다이어트를 위해 발레를 배우기보단 순백의 ‘튀튀(발레리나가 입는 스커트)‘에 대한 동경을 실현해 보자는 분위기인 만큼 수업에 대한 열의도 대단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스튜디오를 찾으며 공들였던 발레이건만 올해 들어서는 어째 슬슬 결석이 잦아진다. 작업과 공부가 공식 핑곗서리였지만 사실은 학습 능력에 대한 도저한 열패감이 솔직한 이유. 같은 발레 초보라고 해도 막춤이나 어설프게 추던 나에 비해 수강생들은 대채로 몸에 대한 감각이 발달한 편이었다. 스트레칭이나 터닝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무능한 수강생은 내가 유일했던 것이다.

    균형감각이 떨어진 데다 유연성도 부족하고 동작을 읽는 눈까지 발달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일었던 심리적인 불안을 끝내 해결하지 못한 데에 있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할 때마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 내 어설픈 모습을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 몸에 대한 불만으로 위축되게 마련이었다. 결국 지진아로 분류되어 연습실 구석에서 혼자 스텝을 연습해야 했던 비참함이라니.

    발레에 대한 오랜 애정으로 꿋꿋하게 버텨봤지만 나와 같은 시기에 등록한 친구가 급을 높여가며 일취월장하는 걸 지켜보기만 한다거나 ”도대체 나아지질 않는다”는 강사들의 한숨 소리를 듣는 일까지 즐거울 순 없었다. 성실하게 연습해도 근육이 쉬 단련되지 않아 초조했는데 일주일이라도 게으름을 피울 때면 당장 몸이 반응한다. 동작이 느리고 무거운 건 둘째치고, 무엇보다 발이 아파서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쥐가 나고 아찔한 통증이 몰려온다. 결국 재합류 할 시기를 놓친 채 ‘얻은 것 없이 자존심만 구겼다‘는 자괴감에 의기소침할 때 뼈가 부러져 발을 못 쓰게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작업실에 앉아 굳어진 발을 발레동작으로 이리저리 움직여보려니 잘해 보겠다는 욕심은 버리고 그저 스스로의 몸을 아끼고 볼보는 차원에서 예서 그만둬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기억을 짚어보면 발레 레슨이 아니더라도 열등한 성적으로 자존심 구겼던 전력은 적지 않다. 개인 교습을 10년 꼬박 받았던 피아노만 해도 신통히 않은 진도로 어머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참으로 가관이었던 수학 점수를 비롯, 고등학교 학과 성적표도 퍽 자랑스럽진 못했다. 전공인 국문학도 어학이나 고전문학 교수님을 필사적으로 피해 다녀야 했을 정도가 아닌가. 그래도 공부는 포기만 안 하면 결국 어느 정돈 올라서게 마련이고, 손놓았던 피아노에 대해서는 끝까지 미련이 남는 걸 상기할 때 발레도 어정쩡하게 중간에 포기하지는 말자.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을 굳세게 지켜나가야만 곱게 나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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