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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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동화 속 소왕국 연상

발틱 3국 중 가장 큰 나라 … 중세 고딕 건축 르네상스 스타일 건물 아직도 즐비

  • 글ㆍ사진=행창/승려 haengchang17@yahoo.co.kr

    입력2004-10-22 0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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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동화 속 소왕국 연상

    한쪽 팔로 자전거 여행 중인 폴란드 친구(왼쪽)와 함께 선 필자 .

    폴란드 국경검문소에서 출국도장을 받고 나오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국경 경비대원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리투아니아 입국 수속을 하라는 것이다. 따라가 보니 방금 출국 수속을 한 창구 바로 옆 창구에서 리투아니아 입국 업무를 보고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요금수납 창구만한 건물에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 국경검문소라는 표시조차 붙이지 않은 곳이다. 두 나라 모두 EU(유럽연합) 가맹국이기는 해도 출입국 업무까지 같은 곳에서 할 만큼 가까운 관계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국경검문소를 빠져나와 국도변을 둘러봐도 국경마을 같은 곳이 보이지 않는다. 리투아니아 전체 인구가 400만명이 채 안 되니 국경 마을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 국민 수가 한국의 대도시 정도에 불과한 이 나라는 발틱 3국 가운데서 국토 면적으로나 인구 수로나 가장 큰 나라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 국도변 마을 빈곤에 찌든 모습

    고요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교통량이 없는 국도 저만치에서 반가운 자전거 여행자가 달려오고 있는 게 보인다. 등산길에 마주치는 등산객끼리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관습이 있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자들의 경우엔 가벼운 인사 정도로 안 끝난다. 그만큼 반갑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동화 속 소왕국 연상

    한적한 카우나스 ‘자유의 거리‘ 풍경

    저쪽에서도 나를 발견하고는 도로를 건너 달려오는 모습이 어딘지 불안정해 보인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친구가 내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는 순간, 난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다. 환하게 웃는 친구는 팔 한쪽이 없었다. 의수조차 끼지 않은 상태다. 자전거에 실은 짐을 보니 장기여행자다. 내 사고의 한계를 넘는 현실에 직면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가 먼저 어디서 왔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영어가 꽤 유창하다. 국도 부근에 가로수 사이로 이어진 지방도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얘기 좀 나누자며 대화를 청했다. 자전거로 수십 개 나라를 여행해왔지만 팔 하나로 장기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는 올해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취업한 뒤, 첫 휴가를 받아 3주 동안 자전거 여행 중인 옆 나라 폴란드 친구였다. 한쪽 팔로 여행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팔 하나를 잃은 뒤에도 자전거를 타다 남은 한 팔까지 몇 번이고 부러지는 일을 겪었기 때문에 사고에는 익숙해졌다며 웃어 보였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동화 속 소왕국 연상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다가 메일 주소를 교환하고는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국도에 올랐다. 얼마간 달리다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폴란드 친구, 아직도 가시지 않은 충격에 나는 내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 국도변의 마을 풍경은 빈곤에 찌든 모습이다.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낡은 슬레이트 지붕. 집 주위엔 으레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10여년 전 옛 소련제국 나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독립공화국을 이룩한 이 나라의 명예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리투아니아에 입국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오후 늦게, 국경에서 100km가량 떨어진 카우나스(Kaunas)에 도착했다. 이 나라 제2의 도시다. 대학도시로 알려져 있어 한층 기대를 했는데, 시내 한가운데 있는 2km나 이어진 ‘자유의 거리(Laisves aleja)’엔 썰렁함만 맴돌았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동화 속 소왕국 연상

    필자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중앙역 대합실로 향했는데, 자전거를 끌고 대합실로 들어서는 순간 경찰 두 명에게 제지를 당했다. 비가 오는 밤중에 캠핑장까지 갈 수 없어 그러니 하룻밤만 대합실에서 자게 해달라고 하자, 부랑자들이 많으니 짐 조심은 물론 신변 조심에도 신경을 쓰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잡고는 저녁식사를 겸해 메마른 빵 조각을 삼키고 있으니 술에 취한 부랑자들이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자 그들도 갈 데가 없는 듯 역 대합실로 모여든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 소련제국 붕괴의 직접적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소련군으로 참전한 ‘용사’가 둘이나 있었다. 제국의 식민지 개척 전쟁에 또 다른 식민지인 위성국에서 징병돼 참전한 것이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동화 속 소왕국 연상

    수십만 개의 십자가가 숲을 이루고 있는 슈레이 ‘십자가들의 언덕’

    6개월에 걸친 실크로드 횡단 연재 프로젝트로 여행 중이던 지난해 7월, 전쟁의 불씨가 채 꺼지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을 2주가량 돌아보았다. 양대 제국 소련과 미국이 번갈아가며 ‘인간 사냥터’로 선택한 처참한 역사의 현장 아프간. 남은 한 점의 살과 한 방울의 피까지 쥐어짜는 피의 축제가 남긴 것은 한마디로 참담함 자체였다. 영광된 제국의 ‘리틀 도그(Little dog 작은 개, 소모용인 용병이나 하수인 등을 뜻하는 속어)’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폐인이 된 상태로 돌아온, 지금 내 앞에 앉은 이 무명의 두 용사 역시 제국에 의해 선택된 역사의 희생양이 아닐 수 없다.

    호텔 정원에 텐트 치며 배낭족 진한 우정 확인

    역 대합실의 딱딱한 나무의자에서 무명의 아프간 참전 용사와 그의 친구들이 지켜주는 가운데 단잠을 잤다. 새벽녘에 일어나 보니 빗줄기는 멎어 있다. 옛 시가지 옆으로 흐르는 강 줄기를 따라 옛 소련 시절 이후 변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시내를 돌아보고는 바로 수도 빌니우스(Vilnius)를 향해 동쪽으로 뻗은 A1 고속도로에 올랐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동화 속 소왕국 연상

    맥주를 마시며 거리 콘서트를 즐기고 있는 빌니우스 시민들 모습

    저녁 10시, 어둠과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서서히 자리하고 있는 빌니우스에 입성했다. 중세풍이 가득한 거리에는 여름철 저녁 한때를 즐기려는 관광객과 인파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시내에 있는 몇 곳 없는 호스텔을 다 돌았는데 모두 만원이란다. 할 수 없이 호스텔 정원에 텐트를 치게 해달라고 부탁해 허락을 받았다. 비만 안 내린다면 북적대는 호스텔 방보다 나만의 공간인 텐트가 훨씬 마음 편하다.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독일 여행자들이 합세해 텐트를 치고 짐 푸는 것을 도와주고는 남은 저녁음식까지 데워 내왔다. 이게 여행자들끼리의 우정이다. 최근 들어 유럽에 쏟아지는 젊은 한국의 배낭족들은 다른 배낭족들과 인사를 나누기는커녕 서로 얼굴 마주치는 것조차 꺼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람이, 그것도 같은 세대끼리 외국에 나와서까지 불편해하고 못 믿어서야 앞으로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꾸려가겠는가. 물론 그들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개인주의 풍조가 만연하는 한국의 사회풍토에 문제가 있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른 월드컵 때, 의기투합해 외친 ‘필승 코리아!’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문조차 남는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동화 속 소왕국 연상
    중세 후기 고딕 건축과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축물이 즐비한 빌니우스 거리는 완만한 경사와 작은 강줄기 등, 아기자기한 동화 속 소왕국 수도를 연상케 한다. 근대 들어 유대민족의 문화와 학문의 장으로 발전해 ‘리투아니아의 예루살렘’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 도시에는 아직도 화려하던 시절의 잔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강한 인종차별의 눈빛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다지 상쾌하지만은 않다. 폐쇄적인 옛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데서 오는 정보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중동 횡단 때,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빛에서 느낀 그 뭔가와도 많이 흡사하다. 며칠 머물까 했지만 빌니우스 근교 트라카이(Trakai)에 있는, 아름다운 호반 속에 떠 있는 듯한 중세 독일 기사단의 성만 보고 떠나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인 라트비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십자가들의 언덕(Hill of Crosses)’으로 알려진 슈레이(Siauliai)에 들렀다. 관광지라기보다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주로 찾는 순례지다. 슈레이에서 동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만 언덕으로, 수십만 개의 십자가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십자가의 모양은 물론 예수의 얼굴과 형체가 토착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 각양각색의 형태로 조각된 상들이다. 외래 종교인 기독교 문화에 토착의 민간신앙이 더해진 일종의 기복신앙이 탄생시킨 언덕이다. 공동묘지가 아니고 이곳 사람들의 염원과 기원을 담아 세운 십자가들이다. 민속학적으로나 종교학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엷은 하늘색 창공 아래에 자리한 십자가들의 언덕을 뒤로 하고 국경을 향해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노을이 대평원을 물들이고 있을 즈음, 리투아니아-라트비아 국경지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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