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팔로 자전거 여행 중인 폴란드 친구(왼쪽)와 함께 선 필자 .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국경검문소를 빠져나와 국도변을 둘러봐도 국경마을 같은 곳이 보이지 않는다. 리투아니아 전체 인구가 400만명이 채 안 되니 국경 마을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 국민 수가 한국의 대도시 정도에 불과한 이 나라는 발틱 3국 가운데서 국토 면적으로나 인구 수로나 가장 큰 나라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 국도변 마을 빈곤에 찌든 모습
고요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교통량이 없는 국도 저만치에서 반가운 자전거 여행자가 달려오고 있는 게 보인다. 등산길에 마주치는 등산객끼리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관습이 있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자들의 경우엔 가벼운 인사 정도로 안 끝난다. 그만큼 반갑기 때문이다.
한적한 카우나스 ‘자유의 거리‘ 풍경
그는 올해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취업한 뒤, 첫 휴가를 받아 3주 동안 자전거 여행 중인 옆 나라 폴란드 친구였다. 한쪽 팔로 여행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팔 하나를 잃은 뒤에도 자전거를 타다 남은 한 팔까지 몇 번이고 부러지는 일을 겪었기 때문에 사고에는 익숙해졌다며 웃어 보였다.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다가 메일 주소를 교환하고는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국도에 올랐다. 얼마간 달리다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폴란드 친구, 아직도 가시지 않은 충격에 나는 내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 국도변의 마을 풍경은 빈곤에 찌든 모습이다.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낡은 슬레이트 지붕. 집 주위엔 으레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10여년 전 옛 소련제국 나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독립공화국을 이룩한 이 나라의 명예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리투아니아에 입국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오후 늦게, 국경에서 100km가량 떨어진 카우나스(Kaunas)에 도착했다. 이 나라 제2의 도시다. 대학도시로 알려져 있어 한층 기대를 했는데, 시내 한가운데 있는 2km나 이어진 ‘자유의 거리(Laisves aleja)’엔 썰렁함만 맴돌았다.
필자
수십만 개의 십자가가 숲을 이루고 있는 슈레이 ‘십자가들의 언덕’
호텔 정원에 텐트 치며 배낭족 진한 우정 확인
역 대합실의 딱딱한 나무의자에서 무명의 아프간 참전 용사와 그의 친구들이 지켜주는 가운데 단잠을 잤다. 새벽녘에 일어나 보니 빗줄기는 멎어 있다. 옛 시가지 옆으로 흐르는 강 줄기를 따라 옛 소련 시절 이후 변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시내를 돌아보고는 바로 수도 빌니우스(Vilnius)를 향해 동쪽으로 뻗은 A1 고속도로에 올랐다.
맥주를 마시며 거리 콘서트를 즐기고 있는 빌니우스 시민들 모습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독일 여행자들이 합세해 텐트를 치고 짐 푸는 것을 도와주고는 남은 저녁음식까지 데워 내왔다. 이게 여행자들끼리의 우정이다. 최근 들어 유럽에 쏟아지는 젊은 한국의 배낭족들은 다른 배낭족들과 인사를 나누기는커녕 서로 얼굴 마주치는 것조차 꺼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람이, 그것도 같은 세대끼리 외국에 나와서까지 불편해하고 못 믿어서야 앞으로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꾸려가겠는가. 물론 그들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개인주의 풍조가 만연하는 한국의 사회풍토에 문제가 있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른 월드컵 때, 의기투합해 외친 ‘필승 코리아!’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문조차 남는다.
중세 후기 고딕 건축과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축물이 즐비한 빌니우스 거리는 완만한 경사와 작은 강줄기 등, 아기자기한 동화 속 소왕국 수도를 연상케 한다. 근대 들어 유대민족의 문화와 학문의 장으로 발전해 ‘리투아니아의 예루살렘’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 도시에는 아직도 화려하던 시절의 잔영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강한 인종차별의 눈빛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다지 상쾌하지만은 않다. 폐쇄적인 옛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데서 오는 정보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중동 횡단 때,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빛에서 느낀 그 뭔가와도 많이 흡사하다. 며칠 머물까 했지만 빌니우스 근교 트라카이(Trakai)에 있는, 아름다운 호반 속에 떠 있는 듯한 중세 독일 기사단의 성만 보고 떠나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인 라트비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십자가들의 언덕(Hill of Crosses)’으로 알려진 슈레이(Siauliai)에 들렀다. 관광지라기보다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주로 찾는 순례지다. 슈레이에서 동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만 언덕으로, 수십만 개의 십자가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십자가의 모양은 물론 예수의 얼굴과 형체가 토착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 각양각색의 형태로 조각된 상들이다. 외래 종교인 기독교 문화에 토착의 민간신앙이 더해진 일종의 기복신앙이 탄생시킨 언덕이다. 공동묘지가 아니고 이곳 사람들의 염원과 기원을 담아 세운 십자가들이다. 민속학적으로나 종교학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엷은 하늘색 창공 아래에 자리한 십자가들의 언덕을 뒤로 하고 국경을 향해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노을이 대평원을 물들이고 있을 즈음, 리투아니아-라트비아 국경지대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