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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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낚시꾼 삶의 지혜를 낚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07-08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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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 낚시꾼 삶의 지혜를 낚다
    낚시에 ‘낚인’ 사람들은 물고기만 낚지 않는다.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아올리고, 인생의 황금도 낚아올린다. 내면의 가장 깊은 바다에서 고귀한 철학도 낚아올린다. 그들에게 인생의 필수품은 낚싯대, 미끼, 그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마음이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을 찾은 이들에게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시오. 신나게 낚시했으니”라는 유언을 남길 사람들이다.

    베테랑 낚시꾼이자 심리학자인 폴 퀸네트는 단연코 이 그룹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20년 동안 마약치료센터 책임자로, 알코올중독자 컨설턴트로 일해왔으며 자살에 관한 한 세계적인 전문가인 그는 생활의 대부분을 깊은 절망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보냈다. 그런 삭막한 삶을 버티게 해준 원천이 바로 낚시였다.

    퀸네트는 50년 넘게 낚시여행을 다니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파블로프의 송어’ ‘다윈의 배스’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뉴스위크’ ‘뉴욕타임스’ 등에 관련 글을 기고해 작가상을 받기도 했으며 지금은 ‘스포팅 앤드 클래식스’에 낚시칼럼을 연재하고 있을 만큼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퀸네트는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지금 동부 워싱턴의 한 시골에 살고 있다. 이유는 주변에 물고기가 가득한 호수가 50개나 있기 때문. 업무차 해외로 돌아다녀야 할 때가 많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곧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는 마음만 내키면 낚시하러 갈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1년에 80일을 낚시를 하며 보낸다.

    베테랑 낚시꾼 삶의 지혜를 낚다
    그런 그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라는 책에서 낚시의 세계로 가는 미끼를 던진다. 그가 건져올린 90개의 에세이는 통찰과 유머, 철학이 담겨 있어 삶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그에게 낚시는 단순한 레포츠가 아니라 삶의 훌륭한 스승이다.



    낚시꾼에 대한 정의도 흥미롭다. 퀸네트는 낚시꾼과 시인이 비슷하다고 얘기한다. 둘 다 자연을 신뢰하며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 혹 누군가에게서 “제가 낚시를 다니거든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저는 다정하고, 사려 깊고, 느긋하고, 사과를 잘하고, 윤리적이고, 상냥하고, 점잖고, 약간 철학적이고, 자연을 사랑하고, 깨달음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에요”라는 뜻으로 여기라고 한다.

    그는 먼저 떠나라고 부추긴다. 사랑도 해봐야 맛을 아는 법. 멀리 낚시여행을 떠날 때 집에 두고 갈 것들은 시간을 잘 지키는 것, 우월감을 느끼는 것, 목표를 세우고 결과를 조정하는 것, 음식 습관,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려는 것 등. 정말 가져가야 할 것들은 경이감, 모험심, 타인에게서 배우려는 의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유머 감각.

    경이감이라면 이런 것이다. 어느 날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에 캐나다 밴쿠버의 캠벨강에서 200척의 낚싯배가 함대를 이루고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한 마리도 미끼를 물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연어가 회귀하는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파악했지만 낚시꾼들의 지식과 기술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그때 흰머리독수리 한 마리가 배 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다 천천히 방향을 돌려 아래로 돌진했다. 독수리가 다시 하늘로 올라갈 때 그 발톱엔 은빛 연어가 덜덜 떨고 있었다. 거대한 함대에서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스스로 힘든 일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는 ‘불편 호수’로 간다. 이 호수는 불편하기로 유명해서 그가 붙인 이름이다. 그곳으로 가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불편 호수에는 집도 없고, 전화도 없고, 화장실도 없다. 그러나 그곳은 그에게 피를 끓게 하는 야생의 공간이다. 그는 그곳을 사랑한다.

    동부의 대도시에 살며 몬태나나 와이오밍 같은 대자연에 묻혀 살길 원하는 친구 얘기도 흥미롭다. 그는 사냥하고 낚시하고 하이킹하고 수염을 기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도시의 아파트에 살며 점심시간이면 낚시도구점을 기웃거린다. 오래 전 젊은 시절에 잠시 맛본 것을 갈구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꿈만 꾼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을 지켜보는 대신 자기 삶을 살려는 이들에게 퀸네트는 이렇게 조언한다.

    “미래는 언제나 당신에게서 달아난다. 미래를 잡고 싶다면 미래를 쫓아가야 한다. 사는 것, 물고기를 잡는 것,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 싶다면, 숨이 턱턱 찰 때까지 쫓아가야 한다.”

    퀸네트가 소개하는 대부분의 일화들이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곳곳에 유머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웃음 없는 낚시여행은 낚시여행이라 할 수 없다고 못박는다. 갑자기 폭풍을 만나거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 낚싯대가 부러지거나 손을 베일 때 등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돌발상황 앞에서도 노련한 낚시꾼은 유머를 길어올린다.

    그런데 노련한 낚시꾼은 인생에서도 성공한 이들일까. 퀸네트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무지한 낚시꾼과 입씨름 벌이지 말라. 그대는 얻을 게 없고, 그는 잃을 게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폴 퀸네트 지음/ 공경희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388쪽/ 1만2800원

    Tips | 퀸네트의 말 말 말

    ·제대로만 하면 낚시는 스포츠가 아니라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풋볼과 달리 낚시는 물고기한테 져도 심판 탓을 하지 않는다.

    ·인생의 의미는 짜릿한 입질을 느낄 때 더 잘 이해되는 법이다.

    ·낚시는 사랑을 나누는 것과 아주 비슷해서 직접 해봐야 만족감을 안다.

    ·중년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멋진 물고기를 놓쳐도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

    ·인생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딱 두 가지다. 조만간 송어가 뛰어오르리란 것과 송어가 무엇 때문에 뛰어오르든 낚시꾼의 플라이 통에 든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

    ·그대가 자주 낚시를 다니면, 곧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그대를 피하기 시작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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