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인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비유와 상징이다. 비유는 헬라어로 ‘파라볼레’라고 한다. ‘파라’는 ‘옆’이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볼레’는 동사 ‘발로’의 명사형이다. ‘발로’는 ‘던지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파라볼레는 옆에 둔 것이라는 뜻으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좀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비슷한 사물이나 사건을 옆에 두어 비교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헬라어가 영어에서는 패러블(parable)로 남아 있다. 상징도 헬라어로 보면 ‘순’과 ‘볼레’가 합해진 말로 ‘함께 던지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역시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좀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비슷한 사물이나 사건을 함께 던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징은 비유처럼 ‘옆에’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보다 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의미라 할 수 있다. 비유도 직유와 은유 등으로 구분하는데, 가령 ‘내 마음은 호수같이 맑다’라고 할 때는 직유가 되고 ‘내 마음은 호수다’라고 할 때는 은유가 된다. 그런데 왜 전자를 직유라고 하고 후자를 은유라고 하는지 이유를 물어보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뿐 잘 대답하지 못한다. ‘뭐뭐같이’, ‘뭐뭐처럼’이라고 하면 직유가 된다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외우기만 했기 때문이다.
복합•총체적 의미 … 읽는 사람마다 느낌 달라
‘내 마음은 호수같이 맑다’라고 할 때 호수의 맑은 성질이 내 마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유, 즉 직유가 된다. ‘내 마음은 호수다’라고 할 때는 호수의 어떤 성질이 내 마음과 연관되어 있는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므로 은유라고 한다. 개개인의 마음과 삶의 정황에 따라 내 마음과 연관시키는 호수의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은유는 상징처럼 좀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성경은 직유와 은유 등 갖가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이다. 특히 노래 중의 노래, 문학 중의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아가서’는 빼어난 비유와 상징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사랑하는 대상의 신체 부위에 대한 비유들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머리와 머리카락에 관한 비유들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줏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7:5) 갈멜은 히브리어로 농원, 정원, 과수원이라는 뜻이다. 갈멜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우람한 산이다. 머리가 갈멜산 같다고 한 것은 머리카락이 갈멜산의 숲처럼 풍성하여 치렁하게 드리워져 있는 형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머리털은 자줏빛으로 우아하기 그지없다. 왕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빠져 꼼짝하지 못하는 모습을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요즈음 머리카락을 윤기 있게 해주는 샴푸 광고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여기 아가서의 표현만큼 여성의 머리카락의 매력을 잘 드러내는 문구(카피)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카락에 매여 꼼짝없이 끌려가는 남자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대단히 효과 있는 광고가 될지도 모른다.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5:11) 머리가 정금 같다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 정금은 온전하게 제련된 금으로 순결을 의미하기도 하고 견고함과 단정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스 조각 작품들 중에 정금 같은 머리를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다 해당하는 비유법이다. 견고하면서도 단정하고 맑은 얼굴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머리가 정금 같다고 여길 만하다. 그러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머리카락은 모양이 어떠하든지 아름답게 보이게 마련이다. 축구선수 안정환을 보면 ‘머리가 정금 같다’는 표현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게 견고하면서도 단정하고 맑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머리카락이 퍼머 형태를 하고 있어도 멋있게 보이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얼굴에 그런 머리카락을 하고 있으면 지저분하게만 여겨질지도 모른다. 여기 아가서에도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라고 하여 한일 월드컵 때의 안정환 머리를 연상시키고 있다.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6:5) 여기서는 머리털을 산기슭에 한가로이 누워 있는 염소떼에 비유하고 있다. 아마도 머리털이 굽이굽이를 이루며 드리워진 형용에서 염소의 등을 떠올리고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한없이 평온함을 주는 머리털을 이런 비유로 묘사했을 수도 있다. 이런 머리털을 가진 여자의 머리에 남자는 산기슭에 누워 있는 염소떼처럼 편안히 기대어 눕고 싶은 법이다.
2) 눈에 관한 비유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1:15)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4:1) 비둘기의 눈은 한 번에 한 곳만 바라본다. 비둘기는 동시에 여러 곳을 보느라 눈을 흘긋거리지 않는다. 시선이 언제나 안정되어 있다. 두 마음을 품은 자의 눈동자는 늘 불안하다. 맹자 선생도 눈과 마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는 데는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눈동자는 능히 자기의 악을 엄폐하지 못한다. 마음이 올바르면 눈동자가 맑고(胸中正 則眸子瞭焉), 마음이 올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뿐만 아니라 눈동자를 살펴봄으로써 사람의 마음 깊숙한 데까지 꿰뚫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남편을 두고도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아내의 눈은 차분하지 못하다. 아내를 두고도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남편의 눈은 들떠 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여자나 남자의 눈은 비둘기처럼 평온하고 맑다. 그 눈이 너울 속에 있으니 더욱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3) 입과 입술에 관한 비유들 사랑의 노래에서 입과 입술에 대한 묘사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아가서에 보면 ‘입술이 홍색실 같고’(4:3), ‘입술이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5:13),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4:11) 등등 입과 입술에 관한 비유들이 가득하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입과 입술과 관련하여 몰약의 즙, 꿀 방울 같은 달콤한 액체와 관련된 비유들이 동원되고 있는 점이다. 입맞춤을 할 때 서로의 입안에 고인 침이 자연스레 교환된다. 그때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입안에 고인 침이 얼마나 달콤한가, 즉 당도(糖度)가 결정된다. 특히 7:9 같은 비유는 아주 육감적이라 할 수 있다.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공동번역을 보면 ‘잇몸과 입술을 넘어 나오는 포도주 같은 단맛을 그대 입속에서 맛보게 해다오’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연인의 입안에 고인 침이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달콤하여 그 침을 자꾸 들이켜고 싶다는 표현이다. 평상시에는 지저분하고 불결한 침마저 사랑이라는 묘약이 작용하면 질 좋은 포도주로 발효되는 셈이다. 입맞춤을 하는 자들만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성을 파는 여성들도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외에는 입술을 주지 않는다. 입맞춤이 없는 부부관계는 합법적인 성매매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무튼 입맞춤을 통하여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없이는 그 사랑이 무르익을 수 없는 법이다.
상징은 비유처럼 ‘옆에’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보다 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의미라 할 수 있다. 비유도 직유와 은유 등으로 구분하는데, 가령 ‘내 마음은 호수같이 맑다’라고 할 때는 직유가 되고 ‘내 마음은 호수다’라고 할 때는 은유가 된다. 그런데 왜 전자를 직유라고 하고 후자를 은유라고 하는지 이유를 물어보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뿐 잘 대답하지 못한다. ‘뭐뭐같이’, ‘뭐뭐처럼’이라고 하면 직유가 된다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외우기만 했기 때문이다.
복합•총체적 의미 … 읽는 사람마다 느낌 달라
‘내 마음은 호수같이 맑다’라고 할 때 호수의 맑은 성질이 내 마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유, 즉 직유가 된다. ‘내 마음은 호수다’라고 할 때는 호수의 어떤 성질이 내 마음과 연관되어 있는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므로 은유라고 한다. 개개인의 마음과 삶의 정황에 따라 내 마음과 연관시키는 호수의 성질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은유는 상징처럼 좀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성경은 직유와 은유 등 갖가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이다. 특히 노래 중의 노래, 문학 중의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아가서’는 빼어난 비유와 상징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사랑하는 대상의 신체 부위에 대한 비유들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머리와 머리카락에 관한 비유들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줏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7:5) 갈멜은 히브리어로 농원, 정원, 과수원이라는 뜻이다. 갈멜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우람한 산이다. 머리가 갈멜산 같다고 한 것은 머리카락이 갈멜산의 숲처럼 풍성하여 치렁하게 드리워져 있는 형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머리털은 자줏빛으로 우아하기 그지없다. 왕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빠져 꼼짝하지 못하는 모습을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요즈음 머리카락을 윤기 있게 해주는 샴푸 광고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여기 아가서의 표현만큼 여성의 머리카락의 매력을 잘 드러내는 문구(카피)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카락에 매여 꼼짝없이 끌려가는 남자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대단히 효과 있는 광고가 될지도 모른다.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5:11) 머리가 정금 같다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 정금은 온전하게 제련된 금으로 순결을 의미하기도 하고 견고함과 단정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스 조각 작품들 중에 정금 같은 머리를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다 해당하는 비유법이다. 견고하면서도 단정하고 맑은 얼굴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머리가 정금 같다고 여길 만하다. 그러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머리카락은 모양이 어떠하든지 아름답게 보이게 마련이다. 축구선수 안정환을 보면 ‘머리가 정금 같다’는 표현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게 견고하면서도 단정하고 맑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머리카락이 퍼머 형태를 하고 있어도 멋있게 보이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얼굴에 그런 머리카락을 하고 있으면 지저분하게만 여겨질지도 모른다. 여기 아가서에도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라고 하여 한일 월드컵 때의 안정환 머리를 연상시키고 있다.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6:5) 여기서는 머리털을 산기슭에 한가로이 누워 있는 염소떼에 비유하고 있다. 아마도 머리털이 굽이굽이를 이루며 드리워진 형용에서 염소의 등을 떠올리고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한없이 평온함을 주는 머리털을 이런 비유로 묘사했을 수도 있다. 이런 머리털을 가진 여자의 머리에 남자는 산기슭에 누워 있는 염소떼처럼 편안히 기대어 눕고 싶은 법이다.
2) 눈에 관한 비유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1:15)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4:1) 비둘기의 눈은 한 번에 한 곳만 바라본다. 비둘기는 동시에 여러 곳을 보느라 눈을 흘긋거리지 않는다. 시선이 언제나 안정되어 있다. 두 마음을 품은 자의 눈동자는 늘 불안하다. 맹자 선생도 눈과 마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는 데는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눈동자는 능히 자기의 악을 엄폐하지 못한다. 마음이 올바르면 눈동자가 맑고(胸中正 則眸子瞭焉), 마음이 올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뿐만 아니라 눈동자를 살펴봄으로써 사람의 마음 깊숙한 데까지 꿰뚫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남편을 두고도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아내의 눈은 차분하지 못하다. 아내를 두고도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남편의 눈은 들떠 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여자나 남자의 눈은 비둘기처럼 평온하고 맑다. 그 눈이 너울 속에 있으니 더욱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3) 입과 입술에 관한 비유들 사랑의 노래에서 입과 입술에 대한 묘사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아가서에 보면 ‘입술이 홍색실 같고’(4:3), ‘입술이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5:13),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4:11) 등등 입과 입술에 관한 비유들이 가득하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입과 입술과 관련하여 몰약의 즙, 꿀 방울 같은 달콤한 액체와 관련된 비유들이 동원되고 있는 점이다. 입맞춤을 할 때 서로의 입안에 고인 침이 자연스레 교환된다. 그때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입안에 고인 침이 얼마나 달콤한가, 즉 당도(糖度)가 결정된다. 특히 7:9 같은 비유는 아주 육감적이라 할 수 있다.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공동번역을 보면 ‘잇몸과 입술을 넘어 나오는 포도주 같은 단맛을 그대 입속에서 맛보게 해다오’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연인의 입안에 고인 침이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달콤하여 그 침을 자꾸 들이켜고 싶다는 표현이다. 평상시에는 지저분하고 불결한 침마저 사랑이라는 묘약이 작용하면 질 좋은 포도주로 발효되는 셈이다. 입맞춤을 하는 자들만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성을 파는 여성들도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외에는 입술을 주지 않는다. 입맞춤이 없는 부부관계는 합법적인 성매매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무튼 입맞춤을 통하여 사랑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없이는 그 사랑이 무르익을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