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상대로 한 경찰의 정정보도 청구소송,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이 늘어나고 있다.
1999년 9월17일자 K신문의 가판 1면을 장식한 이 기사로 3명의 경찰관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사건의 발단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공문서 한 장에서 비롯됐다. 경찰청 외사관리실 직원들이 ‘휴대전화 감청기 도입 여부’를 묻는 한나라당 이해봉 의원의 질의서에 ‘(휴대용 유선전화 감청기인) 모델명 KD-2200 감청기 17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것. 질문지의 ‘휴대전화 감청기 도입 여부’를, 경찰은 ‘휴대할 수 있는(portable) 전화감청기 도입 여부’로 이해한 셈이다. 이 답변을 바탕으로 K신문은 ‘경찰이 휴대전화 감청기를 보유하고 있어 논란이 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가판 1면에 실었다. 그간 정부가 감청설비와 장비현황을 공개하지 않은 데다 “휴대전화 감청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해온 만큼 이 기사의 파장은 컸다. 기사를 본 경찰들은 해당 신문사에 “외사관리실이 관리하는 것은 휴대용 감청기로 휴대전화 감청기와 무관하다”고 밝혔으나, K신문은 가판 1면의 기사를 배달판 사회면에 그대로 옮겨 실었다. 당시 취재기자는 “데스크에 기사 삭제를 요구했으나, 1면에 실린 기사를 빼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국 배달판에도 실었다”고 말했다.
충북청 경찰관들, MBC 상대로 승소
이로 인해 해당 경찰관들은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들의 명예회복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론중재위)는 그해 9월30일 K신문의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판결을 내렸지만, K신문은 정정보도문을 싣지 않았다. 경찰 수뇌부와 신문사 간에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 경찰관은 명예훼손 혐의로 K신문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려 했으나, 윗선의 압력으로 포기해야 했다. 해당 경찰관은 “‘경찰청장이 바뀌는 시점에서 언론을 자극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며 “신문사의 압력보다 경찰 수뇌부의 눈치 보기가 더 심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 일화는 과거 경찰과 언론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조직은 언론과 법적 시비를 가리는 일에 대해서 줄곧 몸을 사려온 게 사실이다. 언론의 ‘보복성 보도’ 등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경찰조직에서 반론보도 요구와 정정보도 청구소송,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경찰 수뇌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경찰 개개인이 권리 찾기에 나선 것이다. 한 경찰 자체 네트워크는 ‘모래알 소송 기금마련 운동’을 벌이며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의 홈페이지.
이 프로그램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벌였던 이장표 경사.
스터디 그룹 통해 언론 바로 알기 노력
언론중재위에 접수되는 경찰의 반론, 정정보도 청구는 증가 추세에 있다. 언론중재위 한 관계자는 “지난해 경찰이 제기한 반론, 정정보도 청구소송은 17건이었으며 올해엔 6월까지 모두 12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요청대로 정정보도문이 실리거나,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이어지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충북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의 소송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찰은 또 5월4일 MBC 뉴스데스크에 방영된 ‘나사 풀린 경찰’이란 보도에 대해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당시 KBS 9시 뉴스는 ‘시민의 살신성인 자세’를 중점적으로 보도한 반면, MBC 뉴스는 ‘나사 풀린 경찰’이란 제목 아래 “경찰관이 범인 1명을 놓치고도 시민과 표창을 받았다”고 비판한 것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범인 중 1명은 시민과 격투가 벌어지기 전에 도주한 상태였으며, 서초경찰서 북부지구대 경찰관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뒤 흉기로 시민을 다치게 하고 달아나는 범인을 약 200m 추격, 검거해 포상을 받은 것”이라 밝혔다. MBC 뉴스데스크는 6월23일 뉴스의 말미에 반론보도문을 방영했지만, 경찰 일각의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동환 경감(부산 해운대 경찰서 경비과장)은 “‘나사 풀린 경찰’이란 표현은 전체 경찰관을 매도한 잘못된 보도인데도 반론보도는 수도권에만 방영됐다. 경찰의 잘못에 대한 합당한 비판은 적극 수용하겠으나,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보도에는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6월23일 MBC 뉴스데스크가 방영한 반론보도.
언론에 대한 주제로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경찰 전용 사이트 ‘폴네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