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술 사용자인 소비자의 자유와 해방을 간절히 희구하면서도 특정 브랜드와 번호로부터의 해방은 절대 원치 않는 세력들이 있으니, 이들은 바로 기술과 서비스의 공급자들이다. 쉽게 말해 이동통신 사업자, 단말기 제조업체, 인터넷 포털회사 들이다. ‘포털’이란 의미 자체가 “우리 사이트를 통해서만 인터넷 공간을 드나드세요”란 말인 걸 보면, 애초에 디지털 유목민들을 붙잡아두고 싶다는 의지의 사업화인 셈이다. 이제 이동통신 사업자 간에 유목민의 정착화를 위한 영토 전쟁이 시작되어 초반전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번호이동성 전쟁이 그것이다. SK텔레콤은 네이트를 통해 검색엔진 라이코스와 싸이월드를 인수합병하면서 유•무선 포털의 기선을 제압했고, 최근 KTF는 다음과 손을 잡고 대응전선을 구축했다. 번호이동성 정책의 결과 이동통신 삼국지의 지도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시차제를 적용하면서 초기에는 KTF의 약진이 나타났고, 이제 SKT의 반격이 시작된 셈이지만 한쪽의 우세를 점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다.
미국의 사례에서는 번호이동성 적용의 결과 선두 기업인 버라이존이 과반에 가까운 47%의 사용자를 장악한 것으로 나타나, 아무래도 시장 선점자의 효과가 큰 것 아니냐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수치적 결과의 예측은 어렵지만 예측 가능한 성공변수의 조합은 생각보다 쉽다. 첫째, 서비스 제공의 우위. 둘째, 가격 요인. 마지막으로 최종결정은 전적으로 소비자 마음이다. 앞서 말한 노마디즘 트렌드에 근거한다면 소비자를 얽어매려는 것보다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면서 스스로 선택해 찾아오게 하는 유연한 철학의 비즈니스화가 필요하다. 이들을 잡고 싶다면 역설적이지만 노마드들을 더더욱 자유롭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상생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