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정치 입문 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공개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박의원의 자택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국회 의원수첩의 자택주소와 전화번호란은 빈칸으로 남아 있고, 당직자들은 새 대표의 자택 위치를 알지 못했다. 결국 ‘박의원이 2002년 1월 기자들에게 자택을 개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초대됐던 기자들의 휴대전화는 불이 났다.
기자들의 도움으로 자택을 파악한 정치 지망생들은 그러나 곧바로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대문’이 열리지 않은 것. 박의원 자택을 어렵게 찾은 이들은 일하는 사람들이 인터폰을 통해 전하는 “당사에서 만나자더라”는 말만 듣고 물러나야 했다. 3월25일 부산을 출발, 10여 시간이 걸린 미로 찾기 끝에 밤 10시30분쯤 박의원 자택 앞에 선 비례대표 공천희망자 L씨는 “5분만 시간을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박의원 측은 “밤늦게 금남(禁男)의 집을 찾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정중하게 물리쳤다. 허탈감에 빠진 그는 길 안내를 맡았던 일간지 한 기자와 밤새 폭음하며 서운함을 달랬다고 한다.
공과 사 확실히 구분 ‘금남의 집’
7월19일 전당대회 대표 경선 출마를 위해 5일 대표직을 떠난 박 전 대표 자택은 금남의 집이다. 이는 1998년 정치권에 들어온 박 전 대표가 정치권 입문 전부터 지켜온 원칙이다. 이 원칙은 그대로 지켜져 아침저녁으로 박 전 대표와 얼굴을 맞대온 전여옥 대변인도 박 전 대표의 집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정도다.
전대변인은 “박 전 대표의 집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쯤 있는지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일산에 있는 김대중 총재 자택으로 출근, 하루를 시작한 것과 정반대 상황이다. 한선교 대변인도 대강의 위치는 알지만 구체적으로 박 전 대표의 집이 어디인지 모른다. 일정을 책임지고 있는 진영 대표비서실장 역시 박 전 대표의 자택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 다른 당직자들도 마찬가지. 당에서 박 전 대표 자택을 ‘금남의 집’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전대변인은 “박 전 대표나 나나 안방을 찾고 하는 3김식 정치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자택 개방에 소극적인 박 전 대표를 옹호했다. 타협의 정치, 밀실흥정의 정치를 멀리하고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얘기다.
박 전 대표는 정치적 행보만큼이나 인간적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스토커가 따라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한편 박 전 대표는 대단히 폐쇄적이다. 공과 사가 분명하다. 이런 처신은 때로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오기 십상이고, 박 전 대표가 몇 차례 뜬소문에 휘말린 배경이 됐다.
특히 퇴근 이후 동선이 베일에 가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온갖 억측과 소문들이 증폭돼왔다. “코멘트를 따야 한다”며 기자들이 연결을 요청해도 비서진은 “퇴근 후라 곤란하다”는 답을 내놓기 일쑤였다. 기자들이 자택 개방을 요구했지만 박대표는 ‘사생활’임을 들어 거절했다. 집으로 들어가 바깥과 연락을 끊는 그를 놓고 바깥 세계에서 의혹이 이는 것은 당연지사. 집안을 보지 못하니 궁금증은 커지고 커진 궁금증은 자연스레 의혹과 의문으로 이어졌다. 박 전 대표는 이 일로 밤잠을 설쳤다고 할 정도였다.
2002년 1월, 박 전 대표가 자택을 개방한 것은 지지층들과의 ‘스킨십’ 강화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런 뜬소문을 가라앉히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베일 속 의혹은 지금도 박 전 대표를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사안에 따라 수시로 이런저런 얘기가 흘러다닌다. 그에 대한 궁금증은 자택 생활로도 이어진다. 한 그루의 감나무와 잔디가 깔린 자그마한 정원으로 꾸며진 자택에서 박 전 대표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박 전 대표는 소주 4잔이 주량으로, 복분자주-이강주-문배주 등 전통주 애호가다. 그가 밤늦게 술잔을 기울일 것이란 지적은 이런 그의 기호를 알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흘러나온 얘기다. ‘머리를 풀고, 화장을 지운 후에도 꼿꼿하게 앉는 특유의 자세는 잃지 않을까’라는 인간적인 궁금증은 그를 지지하는 네티즌과 당내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런 궁금증에 대해 “홈피를 보라”고 말한다. 그의 미니 홈페이지(cyworld.com/ ghism)는 사생활 일부와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과감히 공개한다. 20대 시절 사진,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동영상, 맨발로 물구나무를 서서 단전호흡 하는 모습을 비롯해 거실 구조를 만화로 소개하고 있다. 당은 박 전 대표의 베일에 가려진 퇴근 후 동선이 당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한다.
전대변인은 “저녁 시간 상황이 생기면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며 “이런 방법 덕분에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퇴근 후 동선이 끊기던 때와는 다르다는 것. 전대변인은 “김선일씨 피살 소식이 전해진 6월23일 오전 1시55분에 통화해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진영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2시쯤 박 전 대표한테서 전화를 받고 아침 비상회의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에서 나오는 쓴소리는 많다. 박 전 대표의 당 장악력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석 달간의 대표 생활에도 그의 곁에는 아직도 소장파밖에 없는 것이 비판의 출발점이다. 중진과 비주류는 “참모진이 부실하고 폐쇄적이다”거나 “의원들과 직접 접촉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등의 불만도 터뜨린다. 결론은 스킨십의 한계로 귀결된다.
대표 경선은 ‘차기’ 위한 출정식
6월16일 천막정치를 청산한 한나라당은 강서구 염창동 신당사에 ‘초심의 공간’이라는 컨테이너 기념관을 만들었다. 84일간의 천막당사 생활 당시 익숙했던 천막 쪼가리, 비가 새는 대표실의 물받이 양동이, 야전침대, 대표 집무실 책상과 의자 등, 심지어 박 전 대표가 신었던 신발과 당복도 전시됐다. 당내 비주류들은 ‘박근혜 기념관’이자 또 하나의 상징 조작이라고 반발했다. 여진은 지금도 박 전 대표를 둘러싸고 있고, 주변에서는 “사전 기획단계에서 스킨십을 통해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래서일까. 듣고 있던 박 전 대표 측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먼저 박 전 대표는 금남의 집인 자택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한선교 대변인은 “기자들과 정치인들을 자택으로 불러 식사할 계획임을 사석에서 밝혔다”고 말했다.
대지 120평, 건평 60평 정도의 서울 삼성동 2층집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 부부의 체취가 묻어나는 몇몇 유작 외에는 별다른 장식품도 없다. 박 전 대표가 굳이 자택을 공개하는 이유는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춰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 전 대표에게 7월19일의 대표 경선은 본격적인 지도자로서, 특히 제1야당의 ‘차기’로 확실한 위상을 보장받기 위한 출정식의 성격이 짙다.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 새로운 출발을 전후한 시점에서 자택을 개방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대표비서실 한 관계자는 자택 개방과 관련해 “전당대회(경선)를 앞두고 ‘영남의 공주에서 대중지도자’로 변신을 본격화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지지율은 27.8%로 27.6%인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을 앞질렀다. 총선 성적에 이어 또 한번 박 전 대표의 얼굴을 세워주는 결과물이다. 그러나 비판 여론은 여전하다. 김선일씨 피살사건 등 우리당에 치명적인 악재에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겨우 4.5%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당지도부가 총선 성적에 빠져 자만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 전 대표는 2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국가발전비전으로 선진화를 제시했다. 그러나 연설을 지켜본 사람들은 “공허한 느낌을 주었다”고 지적한다. 박 전 대표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