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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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암시장은 북한 외화벌이 장마당

마약·위조 담배 이어 가짜 비아그라 유통 … 불법 제품 상당수 한국 시장으로 흘러들어

  • 베이징·옌타이·웨이하이=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04-19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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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암시장은 북한 외화벌이 장마당
    3월23일 호주 해안에서 북한 선박 봉수호가 격침됐다. F-111 전폭기가 발사한 유도폭탄은 봉수호를 순식간에 가라앉혔다. 2003년 4월 멜버른 근해에서 150kg의 헤로인을 고무보트에 넘겨주다 호주 군경에 나포된 봉수호는 호주 공군의 훈련용 목표물로서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

    “봉수호 격침은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

    1억6000만 호주달러(약 1100억원)어치의 마약을 실은 봉수호가 호주의 레이더에 걸려든 데는 미 정보당국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미국과 호주는 ‘봉수호 사건’을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마약 제조와 밀매에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뉴사우스웨일스 연안에서 봉수호가 수장된 시각, 중국 베이징(北京) 샤오엔디엔의 한 암시장. 취재진이 “한국 담배를 달라”고 요구하자, 상인은 판매 테이블 아래 숨겨진 비밀 담배고에서 BAT가 한국에서 만드는 ‘던힐’을 꺼내놓는다. 포장에 새겨진 ‘made in korea’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비밀 담배고에는 말버러, 마일드세븐, 던힐, 블랙데블 등 비(非)중국 브랜드의 담배가 가득했는데, 이들 담배의 판매가는 1갑에 5~11위안(약 600~1300원). 싸게 팔리는 이들 담배 상당수는 정교하게 위조된 가짜다. 베이징의 초현대식 쇼핑가 왕푸징에서도 가짜 담배는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었다.



    가짜 담배 생산국으로 지목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북한과 중국. 특히 미국은 북한을 ‘세계 최대 담배 위조국’으로 낙인찍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시장에서 유통되는 가짜 담배가 제작되는 곳은 어디일까.

    중국 암시장은 북한 외화벌이 장마당
    북한은 마약과 가짜 담배를 팔아 쌈짓돈을 마련해왔다. 최근엔 북한산 가짜 비아그라도 활개친다. 미국은 최근 ‘북핵 문제’를 ‘북한 문제’로 한 단계 높여 접근하고 있다. 핵문제 해결보다 북한의 체제 변환을 위한 전방위적 압박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북한의 쌈짓돈 조달 창구인 ‘위폐’ ‘마약’ ‘가짜 담배’ ‘위조 의약품’에 대한 문제 제기다.

    미국은 마약, 가짜 담배, 짝퉁 비아그라 생산을 통해 북한이 연간 10억~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본다. 북한의 전 세계 자금줄을 추적해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는 ‘지갑 정책(Pocketbook Policing)’을 강화하고 있는 까닭이다. 취재 결과, 북한의 외화 조달 창구인 이들 불법 상품의 상당수는 한국 시장으로도 흘러들고 있다.

    미국 “연간 10억~20억 달러 수익 올리고 있다”

    “마약을 불법적으로 생산하거나 수출하는 행위를 하지 말고 마약에 대한 보급, 취급, 이용질서를 어기는 행위를 하지 말라. 이 포고를 어기는 중한 행위를 한 자는 직위와 공로, 소속에 관계없이 사형에 처한다.”

    중국 암시장은 북한 외화벌이 장마당

    베이징 시내의 좌판에선 가짜 담배가 공공연히 팔린다.

    3월1일 발표된 북한 인민보안성의 포고령 중 일부다. 북한이 마약 생산 및 밀매 근절을 대내외적으로 표명한 것은, 북한 사회에 만연된 마약 제조 및 판매가 정권 차원에서 이뤄지는 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복수의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마약을 밀매하던 이들이 최근 잇따라 처형당했다고 한다.

    ‘아이스’ ‘얼음’ 등의 은어로 불리는 북한산 마약은 중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1회 투입 분량의 필로폰은 한국 돈 6만~8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마약 조직이 대거 중국으로 이동했는데, 이들이 취급하는 물건 중엔 북한산도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똬리를 튼 한국 마약 조직은 중간 판매책을 활용한 일대일 방식에서 인터넷을 통한 박리다매 방식으로 밀매 수법을 바꿨는데, 중국에서 수집된 마약은 특수 포장된 뒤 국제우편 등을 이용해 한국으로 배달된다. 이들 마약 조직엔 중국 사정을 잘 아는 조선족이 파트너로 참여하는데, 이들이 북한산 마약의 수집책 노릇을 한다.

    “조선족과 탈북자들이 주로 북한산 마약을 거간한다. 담배 거래엔 중국계 폭력조직이 개입하기도 한다.”(옌타이에서 만난 한 대북 소식통)

    언론에 보도된 바 없지만, 관세당국도 북한산 가짜 담배를 적발한 적이 있다. 지난해 1월 함북 나진항을 출발해 부산항에 입항한 선박에서 가짜 ‘마일드세븐’ 14만8175보루를 찾아낸 것. 이전에도 3차례나 나진항에서 부산항으로 가짜 담배가 선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진시의 담배 공장들은 적발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항구를 경유해 환적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고 한다(그림 1 참조).

    담배를 실은 선박이 출항한 나진시는 가짜 담배의 주요 생산기지다. 필립모리스, BAT 등이 공동으로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0~12개 공장에서 연간 410억 개비의 가짜 담배를 생산해 5억~7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공장은 북한 군부와 정보당국이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가짜 담배 제조에 나선 것은 옛 소련의 붕괴 이후 경제가 내리막길을 탄 1990년대 초반부터다.

    북한은 국제적인 컨테이너 운항 체계에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북한의 컨테이너는 중국 혹은 한국에서 환적된 뒤 제3국으로 보내진다. 부산항에서 적발된 ‘마일드세븐’처럼 북한산 위조 의약품 및 위조 담배가 부산항에서 제3국 배에 옮겨져 세탁된 뒤 유통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에서 오거나 북한을 경유하는 환적 화물에 대한 철저한 검색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항구들도 북한산 모조품이 ‘중국산’으로 세탁돼 ‘수출’되는 루트다. 한국과의 무역이 활발해 인천광역시 ‘옌타이구’ ‘웨이하이구’라고도 불리는 산둥(山東)성 옌타이(煙台)와 웨이하이(威海)의 암시장에선 가짜 담배뿐 아니라 가짜 비아그라도 공공연히 팔린다. 100~200위안(약 1만2000~2만4000원)만 주면 위조된 비아그라 및 씨알리스 한 상자를 구입할 수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를 비롯한 의약품 위조는 북한이 뚫은 새 수입원이다.

    중국 항구 북한산 모조품 국적 세탁 루트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팔리는 비아그라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유통되는 가짜다. 북한산 비아그라는 조선족과 탈북자의 거간으로 중국에 캠프를 차려놓은 국내 판매 조직에 넘겨진다고 한다. 북한산 비아그라는 정품 가격의 3분의 1에 팔리는 것도 있을 만큼 정교하게 위조된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부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는 진품과 비슷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중국 암시장은 북한 외화벌이 장마당
    북한산 가짜 비아그라는 옌타이, 웨이하이와 인천을 오가는 보따리상에 의해 소규모로 밀반입된다. 옌타이항에서 만난 한 보따리상은 “중국 술병에 비아그라를 가득 담아 한국에 들여가는 수법 등이 이용된다”고 귀띔했다. 보따리상 한 명이 운반하는 비아그라는 소량이지만, 인천항에서 수거책이 ‘보따리상들’에게 거둬들이는 양은 상당하다.

    옌타이와 웨이하이는 가짜 담배 밀수의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물량 면에서 가장 많은 중국산 가짜 담배와 동남아산 가짜 담배, 북한산 가짜 담배가 이곳에서 한국으로 ‘수출’된다.

    ‘가짜담배조직밀수단’은 총책, 수집책, 공급책, 선적운송책(이하 중국에서 활동), 물품분배책, 보관운송책, 판매책(이하 한국에서 활동)으로 이뤄져 있다. 공급책의 지도 아래 수집책(주로 조선족)이 가짜 담배를 수집해 선적운송책에게 넘긴다. 그사이 총책은 수입업체를 내세워 아동복, 농산물 등으로 수입 품목을 허위 신고한 뒤 ‘커튼 치기’ 방식으로 담배를 밀수한다(그림 2 참조).

    ‘알박기’라고도 불리는 커튼치기는 수입 품목으로 세관에 신고한 상품을 컨테이너의 양쪽과 윗부분에 싣고 중앙에 담배를 숨기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시가 4억원 상당의 가짜 담배를 컨테이너 하나에 실을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 반입된 담배는 폭력조직이 개입된 국내 판매망을 통해 전국에 유통된다. 보따리상을 통해 유통되는 가짜 담배 물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담배 밀수는 정확한 제보가 없으면 적발하기 쉽지 않다. 항만에선 컨테이너 100개당 2~3개밖에 뜯어볼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류가 마비된다. 담배 밀수가 황해에서 ‘배치기(바다에서 어선 등에 물건을 옮겨 싣는 것)’로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 담뱃값이 인상되면 가짜 담배 밀수에 대한 유혹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담배밖에 없는데요.”

    유흥업소에서 “담배를 달라”고 했을 때 자주 듣는 대답이다. 유흥주점에서 웨이터들이 갖고 오는 담배의 상당수가 가짜다. 특히 북한이 주로 위조하는 A담배는 북한산일 가능성이 높다. 담배 밀수 조직은 가짜 담배를 당구장, 건설현장, 유흥업소, 안마시술소 등에 유통시키고 있다. 당신이 술집에서 무심코 구입한 담배가 북한산이라면? 가짜 담배는 진품보다 건강에 더 해롭다.

    북한과 중국은 ‘짝퉁 시장’

    얽히고설킨 가짜, 원산지 확인 불가


    중국 암시장은 북한 외화벌이 장마당
    북한의 마약과 모조품은 중국을 ‘전진기지’로 삼아 활개치고 있다.

    마약은 북한 내 생산지에서 국경으로 이동→전진기지 격인 중국에 보관→한국 일본 등으로 수출의 3단계를 거쳐 유통된다. 북한산 가짜 담배와 위조 의약품도 중국에서 세탁돼 ‘중국산’으로 탈바꿈한 뒤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경우가 많다.

    4월6일 호주 법정에서 23년형을 선고받은 봉수호의 마약운반책은 아직까지도 국적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사건 담당 판사는 “범인이 한국어를 잘하는 중국인인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산 가짜 담배도 중국산과 구별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 이흥범 KT&G 베이징사무소장은 “공장을 직접 덮치지 않는 한 특정 가짜 담배가 북한산인지 중국산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위폐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꼬집어 압박하고 있을 뿐 위폐가 창궐하고 있는 곳은 사실 중국이다.

    중국에서 북한산 가짜와 중국산 짝퉁을 구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어차피 중국과 북한은 하나의 ‘가짜 시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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