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가정부의 대부분은 50, 60대 조선족 여성들. 30, 40대 젊은 한국인 주부들과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상당하다.
“집주인 내외가 열 가지도 넘는 반찬을 꺼내놓고 식사를 하는데, 젓가락질 한 번 가지 않은 반찬도 몽땅 내다버리라는 거야. 멀쩡한 음식을 아깝게 왜 버리느냐고. 깔끔을 떨어도 너무 심하다 싶었지. 그래서 나중에 내가 먹을 생각으로 비닐랩을 씌워서 냉장고에 넣어놨어. 그게 아기 엄마 눈에 띄어서 크게 혼났지. 살림 지저분하게 한다고.”(50대 조선족 장모 씨)
‘유난 vs 무신경’ 가장 큰 트러블
국내에 머물고 있는 조선족 여성들은 맞벌이 주부들의 ‘구원투수’다. 한국인 가정집에 입주해 매달 120만~140만원의 월급을 받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 마크’해주기 때문. 이러한 ‘가사서비스’는 음식점 다음으로 조선족 여성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6년 2월 말 현재 정식 취업허가서를 발급받은 1만193명의 조선족 여성 중 음식점에 취업한 사람이 8213명(80.5%)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가사서비스 종사자로 1271명(12.4%)이다. 불법체류자가 합법적인 근로자의 2.5배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대략 3000~3500명의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인 주부의 살림을 대신 해주고 있는 셈. 조선족 가정부는 대부분 50, 60대인데 이들은 노동 강도가 센 음식점에서 일하기가 힘에 부치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입주 가정부를 선호한다.
30, 40대 젊은 한국인 주부와 50, 60대조선족 아주머니가 한집에 살면서 겪는 애환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인 주부들은 “조선족 아주머니를 고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인 입주 가정부가 조선족보다 월 10만원 정도를 더 받을 뿐, 둘의 급여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한국인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우모 주부는 “아무래도 한국인 아주머니가 프로정신이 강하고 말도 잘 통해 선호하지만, 대부분 출퇴근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입주하는 사람을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토로했다.
조선족 아주머니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개업의인 이모 주부는 “조선족 아주머니들은 한국에 친척이 별로 없어 집안 대소사 때문에 결근하는 일이 적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시어머니’처럼 굴지 않아 편하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한국인 주부들은 조선족 아주머니들의 ‘무신경함’을, 조선족 아주머니들은 한국인 주부들의 ‘유난’을 서로의 단점으로 지적한다. 이모 주부는 “수리공이 집으로 찾아오기로 한 날 조선족 아주머니가 작은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큰아이를 집에 혼자 방치해놓은 적이 있어 ‘이럴 거면 당장 나가라’고 크게 화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얼빈이 고향인 조선족 정모(61) 할머니는 “곧 아기를 출산하는 집에 채용된 적이 있는데, 아기 엄마가 혹시 내가 아기에게 전염병을 옮길까 걱정해 사흘이나 병원을 왔다갔다하며 각종 검사를 받게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정 할머니는 “아기 옷가지를 하루 한 번씩 푹푹 삶으라고 해서 무척 고생했는데, 너무 깨끗하게 키워도 아기 건강에 안 좋은 법”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구로구의 한 교회에 모인 조선족여성들.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 등에는 ‘조선족 가정부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유치원·학원 등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면서, 동네를 산책하다 서로 자연스럽게 안면을 익히기 때문. 김모 주부는 “외로운 분들이니까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 일이지만 때로는 골칫거리가 되곤 한다”고 전했다.
“각자 집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까 안 좋은 말이 이리저리 옮겨지는 거죠. 한번은 우리 아주머니가 ‘쫛쫛네 아빠는 치질이 심한가 봐요. 팬티에 피가 잔뜩 묻어나온대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당장 그 집에 전화를 걸어 ‘이유는 묻지 말고, 그 집 아주머니 아무래도 안 되겠으니 내보내라’고 했어요.”
직장여성 최모 씨는 “아주머니들끼리 서로의 대우 조건을 비교하고는 집에 와서 불만을 터뜨리니 은근히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명절 때 보너스를 5만원 드렸는데, 다른 집 아주머니들은 모두 10만원씩 받았다며 싫은 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동네 엄마들끼리 담합해서 똑같이 주고 있어요.”
조선족 아주머니들은 한국인 주부가 무신경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지난해 7월 입국해 벌써 다섯 집의 살림을 맡아봤다는 송모(59) 씨는 경기 신도시의 한 가정집에 입주했던 첫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서너 번 ‘파트너’ 바꾼 뒤 생활 터득
“입주한 첫날 네 식구의 저녁상을 차리는데 나도 모르게 제 것까지 다섯 쌍의 숟갈과 젓가락을 상에 올려놨어요. 사모님이 ‘아줌마 건 치우세요’ 하는데, 어찌나 창피한지 얼굴이 새빨개졌어요. 거실에서 자기 식구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주방에 있으라면서 주방문을 닫고 나가더라고요. 주인집 식구들 식사 끝날 때까지 두 시간 동안 기다렸어요. 배가 고파서 몰래 문틈으로 엿보니까 아이들은 밥 먹다 말고 TV 보고, 사모님은 전화 통화하고…. ‘아이고, 저 사람들 밥 다 먹어야 내가 먹을 텐데’ 하며 애간장 녹였죠. 속으로 눈물깨나 삼켰네요.”
조선족 주모(64) 씨는 “한국에 와서 세 번 놀랐다”고 했다.
“화장실이 그리 깨끗한 거 보고 놀랐고,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참으로 예의 바르게 노인 보면 재깍 자리 비켜주는 거 보고 놀랐지. 그 다음 놀란 건 젊은 아기 엄마들이 극성 떠는 거야. 소파에 앉아서 여기 닦아라 저기 닦아라 명령하고, 머리카락 한 올 나오면 다시 방바닥 다 닦게 하고. 건강 챙긴다고 아침마다 콩을 갈아 마시는데, 콩 껍질 까는 건 내 몫이지. 시댁 콩, 친정 콩까지 다 까라고 하는 건 정말 얄밉더라.”
조선족 가정부를 알선해주는 서울 강남의 모 도우미업체 대표는 “집주인과 티격태격 싸우다가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인 주부든, 조선족 아주머니든 보통 서너 번 ‘파트너’를 바꾼 뒤에야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 주부-조선족 가정부가 함께 오래 사는 비결은, 여느 인간관계가 그렇듯 역시 ‘양보’다. 한 조선족 아주머니와 7년 넘게 한집에 살고 있는 서울 삼성동의 최모 주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그냥 넘어가거나 차분하게 설명해주면서 정을 쌓아갔다”고 말했다.
“실크블라우스를 잘못 빨아서 망치거나 된장찌개에 생강 넣고, 미역국에 파 넣는 등의 실수를 하셨어요. 화를 내기보다는 이러저러하게 하는 거라고 설명해드렸어요. 아주머니도 저희 식구를 한 가족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를 괴롭히는 동네 꼬마를 자기가 직접 나서서 혼내줄 정도예요. 올여름에 중국으로 들어가신다는데, 헤어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눈물이 나요.”
최근 재입국한 조선족 장모 아주머니는 “3년 동안 한 집 살림을 맡아주면서 돈을 많이 모아 중국 고향에서 빵 공장을 하나 샀다”며 “이번에도 입주 가정부로 취직해 돈을 모아 아들 집을 사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90대 노부부를 모셨는데, 그 집 자제분들이 참 잘해줘서 참 행복했어. 과일 깎아서 같이 먹자고 하고, 명절 때는 몇 만원 쥐어주기도 하고. 집이 비는 날에는 친구들 초대해서 놀도록 해주기도 했어. 그 집 할머니가 밤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는 걸 내가 다 받아주니까 그게 참 고마웠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