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장승의 아름다움에 반한 뒤 약 30년 동안 ‘장승 조각가’로 활동해온 신명덕(49) 씨가 여덟 번째 개인전 ‘씨앗-소통’ 전을 연다.
“도시 출신이라 장승이 친숙하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본 장승 사진 한 장이 인생을 바꿔놓았지요. 조각칼이 드나든 형태와 인물의 형상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장승을 연구했고, 직접 장승을 깎기 시작했다. 키가 5m에 이르는 대형 장승에서 엄지손가락 크기의 꼬마 장승까지 수만 개의 목장승들이 태어났다. 그의 장승은 한때 북한산 등 전국 각지에 세워졌고, 지난해에는 베를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주간 문화행사’에서 장승깎기를 시연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큰 소나무를 쓰는 대형 장승을 만들지 않는다. 살아 있는 소나무는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장승의 얼굴도 추상화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최근에 만든 타원과 사각 덩어리들은 그 소통의 ‘씨앗’이다.
“변하지 않는 건 나무와 자연에 대한 사랑입니다. 생계 때문에 조선소에서 일하며 철을 다뤄봤는데, 영 정이 가지 않았어요.”
전시는 4월25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올(02-720-0054)에서 열린다.
“도시 출신이라 장승이 친숙하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우연히 본 장승 사진 한 장이 인생을 바꿔놓았지요. 조각칼이 드나든 형태와 인물의 형상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장승을 연구했고, 직접 장승을 깎기 시작했다. 키가 5m에 이르는 대형 장승에서 엄지손가락 크기의 꼬마 장승까지 수만 개의 목장승들이 태어났다. 그의 장승은 한때 북한산 등 전국 각지에 세워졌고, 지난해에는 베를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주간 문화행사’에서 장승깎기를 시연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큰 소나무를 쓰는 대형 장승을 만들지 않는다. 살아 있는 소나무는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장승의 얼굴도 추상화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최근에 만든 타원과 사각 덩어리들은 그 소통의 ‘씨앗’이다.
“변하지 않는 건 나무와 자연에 대한 사랑입니다. 생계 때문에 조선소에서 일하며 철을 다뤄봤는데, 영 정이 가지 않았어요.”
전시는 4월25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올(02-720-0054)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