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팔리는 뚱뚱한 위조 ‘에쎄’. 진품(오른쪽)은 슬림형. 슬림형으로 위조된 ‘에쎄’는 없다.
저소득층·외국인 노동자들이 주요 고객
구로구 가리봉동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 매캐한 중국 양념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시장통에선 ‘BT평양’(북한산) ‘위드’(중국산) ‘패스’(라오스산) 등 듣도 보도 못한 담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500~1500원에 팔리는 이들 담배는 100원 안팎의 가격으로 밀수 혹은 수입된 것으로 이를 노상에서 판매하는 것은 현행법 위반이다.
KT&G는 가짜 담배 및 밀수 담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담뱃값이 연거푸 인상되면서 시세 차익(표1 참조)을 노린 불법 담배가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른 담뱃값을 부담스러워하는 저소득층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들 담배의 주요 고객이다. 이들 담배는 타르, 니코틴 함량이 일반 담배보다 최고 17배까지 높아 건강에 매우 해롭다. 가짜 및 밀수 담배는 동대문시장·탑골공원(오프라인)과 대형 포털(온라인·표2, 3 참조)을 통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중국 시장에서 팔리는 싸구려 담뱃잎.
다국적 담배 위조 조직은 ‘에쎄’ 위조를 시도하는 등 한국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베이징(北京)에선 우스꽝스럽게 생긴 ‘에쎄’가 팔린다. 슬림형인 ‘에쎄’(길이 100mm, 둘레 17mm)가 레귤러형(길이 84mm, 둘레 24.5mm)으로 위조돼 진열돼 있는 것. 다국적 담배 위조 조직은 중국 시장에 ‘가짜 에쎄’ 파일럿 상품을 출시해 수익성을 조사하기도 했다.
웨이하이(威海), 옌타이(煙台)를 오가는 보따리상을 통해 반입되는 가짜 담배 물량도 상상을 넘어선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은 하루 3000~5000명에 달한다”면서 “이들이 1인당 2보루씩만 들여와도 하루 1만 보루의 담배가 시중에 풀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담뱃값 인상되면 더 심각해질 듯
가짜·저가·밀수 담배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담뱃값 인상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담뱃값은 선진국과 비교해 높은 편이 아니지만, 소득수준(1인당 GNI)과 구매력지수(PPP)로 따져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을 상회한다(표4 참조). 따라서 담배의 주요 소비 계층인 저소득층은 1갑에 2500원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취재진이 중국에서 구입한 가짜 담배들.
정부는 순차적으로 5000원까지 담뱃값을 올려 흡연율을 떨어뜨릴 계획이다. 하지만 담배는 가격 탄력성이 비교적 낮아 담뱃값 인상이 국민 건강 증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흡연율을 낮추지 못하면서 가짜·저가·밀수 담배 거래를 부추길 수도 있는 것.
정보당국 관계자는 “담뱃값이 오르는 것과 정비례해 가짜 담배 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라면서 “담배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한 값에 붙는 세금이 1500원이 넘어 불법 담배가 창궐하면 세수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