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이후, 각 정당의 미디어 담당자들은 ‘아침식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바로 인터넷 매체들의 ‘사츠마와리(察回·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일)’다. 사안에 따라 즉각 반응하는 게 인터넷 여론의 특징이라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밤에 역사가 이뤄지는 ‘조간신문’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L씨의 동선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당 홈페이지인 e-파티(www.eparty.or.kr)의 주요 게시판을 확인하고, 오마이뉴스-서프라이즈-라이브이스-브레이크뉴스 차례로 꼼꼼하게 순례한다. 필명이 알려진 유명 논객들의 따끈따끈한 글은 필독 대상이다. 대통령도 읽는다는 글을 빼놓았다가는 당에서 얘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신문사 닷컴(동아닷컴 조선닷컴 등)의 주요 기사와 댓글은 대충 확인한다. 이 와중에 인상 깊은 글은 따로 보관하기도 하고, 직접 e-파티로 퍼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L씨는 “미안한 일이지만 종이신문 칼럼을 읽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고 고백한다.
반면 한나라당 A씨의 동선은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우선 주요 인터넷 매체들은 ‘적군(?)’ 사이트로 간주돼 순위가 뒤로 밀린다. ‘독립신문’류의 보수 매체는 심지어 목록에서 빠져 있다. 386 논객의 파상 공격을 방어하는 길은 이념적 반격이 아니라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믿음이 섰기 때문이다.
주요 언론사 독자 게시판서 정치 논쟁 정보 유통
주요 포털의 뉴스 사이트는 편리하긴 하지만 여론을 파악하기 곤란해서 제외한다.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시판은 주요 신문사 닷컴들의 자유게시판. 이른바 ‘아군’ 개념인 보수논객이나 일반 서민들의 목소리가 주로 이들 게시판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기사 댓글과 독자게시판의 여론 흐름을 꼼꼼히 파악하곤 그제야 인터넷 매체들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시작한다. A씨는 “우리가 큰 여론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저쪽(열린우리당)에 비해 골수팬이 부족해 심리적으로 열세에 놓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인터넷은 ‘신문-잡지-라디오-TV’에 이은 제5의 매체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정치 분야에서만큼은 이미 제1의 매체로 대접받고 있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변화한 현상이다. 모든 정치 논쟁과 정보 유통은 이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오래된 얘기지만 각 정당은 적잖은 당력을 사이버 정치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늦게 적응한 한나라당마저 지난 대선 직후 25억원을 투입해 당원 데이터베이스(DB)와 정당시스템 구축, 그리고 자체 인터넷방송국 운영을 추진하고 나섰다. 전직 e-파티 기획자인 Y씨는 “어차피 정치란 프로파간다(정치구호)를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라는 미디어 전쟁으로 돌변한 상황이기 때문에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기에 좋은 인터넷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이라면 자연스럽게 인터넷도 관리 대상으로 떠오른다.
2002년 대선과 지난 탄핵사건, 4·15총선을 거치며 네티즌들을 뜨겁게 달군 주제 하나가 ‘과연 한나라당 또는 열린우리당에 알바(직업적 게시판 관리인)가 존재하는가’란 논쟁이다. 국론이 양분되다 싶을 정도로 격렬한 논쟁이 흑색선전과 유언비어로 확전됐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청은 수사 인력을 총동원해 상습적 게시판 ‘훌리건’에 대한 추적 작업에 나섰다. 민주당 살생부 파동에서부터 국정원 요원 선거개입설, 청와대의 H그룹 300억 수수설 등이 대상이었다. 수사 결과는 ‘알바는 없는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결론이었지만 심증적인 의혹까지 완전하게 털어내진 못했다.
정치 대중화 가로막는 패거리 문화
그렇다면 어째서 사이버 정치판이 ‘음모론’이 횡행하는 살벌한 정치 환경으로 변모했을까. 전문가들은 이미 정치뉴스 시장이 경제뉴스와 비슷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른바 대중정치가 시작됐다는 방증이라는 주장이다. 주식시장에서 어떤 정보가 유포되는가에 따라 주가가 출렁거리듯, 정치인 역시 정보에 따라 인기가 결정되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인기에 따라서 명예와 권력이 좌우되기 때문에 사이버 여론몰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른바 ‘팩트-루머성 정보-분석정보(계량적 정보)’의 세 가지 정보 가운데 아마추어들이 주로 활동하는 사이버 정치 시장에서는 루머성 정보만이 ‘재미’를 동반하며 힘을 얻게 됐다. 더구나 ‘댓글’과 ‘펌글’ 문화가 정착된 사이버 세상의 여론 흐름은 순식간에 반전되기도 한다. 이 같은 추세는 공론장이 부족했던 한국의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오랜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4·15총선 당시 한나라당 사이버팀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알바는 없지만, ‘댓글’의 힘은 절대적으로 신뢰한다”고 털어놨다.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인하지 못한 이른바 기획은 여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노사모’와 ‘박사모’에서 아무리 치밀한 기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뒤따라오는 열혈 네티즌들의 호응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조직적인 알바가 없다는 사이버 정치에서 주인공들은 과연 누구일까. 정계에서는 다음의 네 가지 부류를 지목한다. 바로 △각 정당 사이트 기획 관리자 △정치인 보좌진과 지지자 △인터넷 논객과 정치매체 △정치에 몰입한 열혈 네티즌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 각 참여자들은 이념이나 소신에 따라 편을 갈라 서로 상대편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때론 이 같은 행태들이 음모나 기획으로 오해받는 것이다.
최근 열린우리당 인터넷 홈페이지는 온라인 정치공간의 또 다른 문제점을 보여준다. 속칭 ‘유빠(개혁당 소속으로 대개 유시민 의원 지지자)’로 불리는 일부 당원들이 매일같이 게시판을 점령하여 온라인 여론전을 펼치기 때문. 이들은 게시판에 상주하며 논쟁을 장악하고,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에 대해서는 강한 압박을 가한다. 급기야 당의장의 글까지 광고ㆍ비난성 글로 처리되어 ‘해우소’라는 곳으로 옮겨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자율적 공론장으로서 새로운 정치판을 펼치자는 것이 인터넷 정치의 비전이었지만 ‘주인 없는 땅’을 독차지하기 위한 패거리 문화가 정치의 대중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과연 사이버 정치 시대의 전사들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이들은 정치 공론장의 선구자들일까, 아니면 방해자들일까. 게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열린우리당 L씨의 동선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당 홈페이지인 e-파티(www.eparty.or.kr)의 주요 게시판을 확인하고, 오마이뉴스-서프라이즈-라이브이스-브레이크뉴스 차례로 꼼꼼하게 순례한다. 필명이 알려진 유명 논객들의 따끈따끈한 글은 필독 대상이다. 대통령도 읽는다는 글을 빼놓았다가는 당에서 얘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신문사 닷컴(동아닷컴 조선닷컴 등)의 주요 기사와 댓글은 대충 확인한다. 이 와중에 인상 깊은 글은 따로 보관하기도 하고, 직접 e-파티로 퍼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L씨는 “미안한 일이지만 종이신문 칼럼을 읽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고 고백한다.
반면 한나라당 A씨의 동선은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우선 주요 인터넷 매체들은 ‘적군(?)’ 사이트로 간주돼 순위가 뒤로 밀린다. ‘독립신문’류의 보수 매체는 심지어 목록에서 빠져 있다. 386 논객의 파상 공격을 방어하는 길은 이념적 반격이 아니라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믿음이 섰기 때문이다.
주요 언론사 독자 게시판서 정치 논쟁 정보 유통
주요 포털의 뉴스 사이트는 편리하긴 하지만 여론을 파악하기 곤란해서 제외한다.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시판은 주요 신문사 닷컴들의 자유게시판. 이른바 ‘아군’ 개념인 보수논객이나 일반 서민들의 목소리가 주로 이들 게시판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기사 댓글과 독자게시판의 여론 흐름을 꼼꼼히 파악하곤 그제야 인터넷 매체들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시작한다. A씨는 “우리가 큰 여론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저쪽(열린우리당)에 비해 골수팬이 부족해 심리적으로 열세에 놓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인터넷은 ‘신문-잡지-라디오-TV’에 이은 제5의 매체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정치 분야에서만큼은 이미 제1의 매체로 대접받고 있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변화한 현상이다. 모든 정치 논쟁과 정보 유통은 이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오래된 얘기지만 각 정당은 적잖은 당력을 사이버 정치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늦게 적응한 한나라당마저 지난 대선 직후 25억원을 투입해 당원 데이터베이스(DB)와 정당시스템 구축, 그리고 자체 인터넷방송국 운영을 추진하고 나섰다. 전직 e-파티 기획자인 Y씨는 “어차피 정치란 프로파간다(정치구호)를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라는 미디어 전쟁으로 돌변한 상황이기 때문에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기에 좋은 인터넷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이라면 자연스럽게 인터넷도 관리 대상으로 떠오른다.
2002년 대선 직후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치 대중화 가로막는 패거리 문화
그렇다면 어째서 사이버 정치판이 ‘음모론’이 횡행하는 살벌한 정치 환경으로 변모했을까. 전문가들은 이미 정치뉴스 시장이 경제뉴스와 비슷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른바 대중정치가 시작됐다는 방증이라는 주장이다. 주식시장에서 어떤 정보가 유포되는가에 따라 주가가 출렁거리듯, 정치인 역시 정보에 따라 인기가 결정되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인기에 따라서 명예와 권력이 좌우되기 때문에 사이버 여론몰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른바 ‘팩트-루머성 정보-분석정보(계량적 정보)’의 세 가지 정보 가운데 아마추어들이 주로 활동하는 사이버 정치 시장에서는 루머성 정보만이 ‘재미’를 동반하며 힘을 얻게 됐다. 더구나 ‘댓글’과 ‘펌글’ 문화가 정착된 사이버 세상의 여론 흐름은 순식간에 반전되기도 한다. 이 같은 추세는 공론장이 부족했던 한국의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오랜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4·15총선 당시 한나라당 사이버팀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알바는 없지만, ‘댓글’의 힘은 절대적으로 신뢰한다”고 털어놨다.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인하지 못한 이른바 기획은 여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노사모’와 ‘박사모’에서 아무리 치밀한 기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뒤따라오는 열혈 네티즌들의 호응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국정원 직원 선거 개입설이 도화선이 됐다.
최근 열린우리당 인터넷 홈페이지는 온라인 정치공간의 또 다른 문제점을 보여준다. 속칭 ‘유빠(개혁당 소속으로 대개 유시민 의원 지지자)’로 불리는 일부 당원들이 매일같이 게시판을 점령하여 온라인 여론전을 펼치기 때문. 이들은 게시판에 상주하며 논쟁을 장악하고,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에 대해서는 강한 압박을 가한다. 급기야 당의장의 글까지 광고ㆍ비난성 글로 처리되어 ‘해우소’라는 곳으로 옮겨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자율적 공론장으로서 새로운 정치판을 펼치자는 것이 인터넷 정치의 비전이었지만 ‘주인 없는 땅’을 독차지하기 위한 패거리 문화가 정치의 대중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과연 사이버 정치 시대의 전사들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이들은 정치 공론장의 선구자들일까, 아니면 방해자들일까. 게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