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스포츠계에서 4년마다 열리는 축제다. 전 세계 스포츠인들은 4년 주기로 벌어지는 올림픽 축제에 대비해 ‘올인’을 한다. 국내 선발전, 아시아선수권대회는 물론 세계선수권대회까지 경험을 쌓기 위한 대회로 여길 정도다. 그래서 올림픽 무대는 이변이 많이 일어난다. 이변은 곧 스타의 퇴장과 새로운 스타의 출현을 의미한다. 과연 이번 아테네 대회에서는 어떤 스타플레이어가 쓴맛을 봤고, 어떤 선수가 새로운 별로 떠올랐을까.
국내 스타 가운데에는 ‘똘똘이 3총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유도의 이원희와 탁구의 유승민, 그리고 레슬링의 정지현이다. 세 선수 모두 한국선수단이 금메달을 절실히 원할 때 한 방씩 터뜨려주었다.
금메달 소식 뜸할 때마다 ‘똘똘이 3총사’ 한 건씩
유도의 이원희는 한국선수단이 개막 이후 첫 금메달을 기대했던 사격장에서 울고, 배드민턴 경기장에서 터지고 있을 때(개막 3일째)인 8월16일, 남자 유도 73kg급에서 첫 금메달을 땄다. 한판승의 사나이답게 부전승으로 2회전에 오른 첫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4경기를 모두 한판으로 이겼다. 한국선수단은 이원희의 금메달 소식을 신호탄으로 양궁 여자 개인전과 배드민턴 남자 복식, 그리고 양궁 남녀 단체전에서 줄줄이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 쾌속 행진을 하던 한국선수단은 8월21일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후 금맥이 끊어졌다. 8월22일 하루를 허송하게 보내던 한국선수단에 한 줄기 빛이 비췄다. 탁구 신동 유승민이 일을 낸 것이다. 유승민은 중국의 떠오르는 별 왕하오와 치른 남자 개인단식 결승전에서 4대 2로 이겨 감격의 금메달을 땄다. 유승민의 금메달은 중국이 자존심을 내세우던 탁구 종목, 그것도 남자 개인단식에서 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국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탁구 남녀 개인단식과 복식 4종목을 모두 석권해 두 대회 완전 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도 여자 개인단·복식과 남자 복식에서 이미 금메달을 따내 남자 단식만 석권하면 세 대회 내리 완전 우승에 성공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화룡점정의 마지막 점 하나를 남겨놓고 유승민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유승민의 금메달은 곧 중국의 신화통신은 물론 AP AFP 등 세계적인 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됐다. 신화통신은 이례적으로 유승민을 ‘새로운 챔피언’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 한국이 4강에 오르자 ‘홈 디시전’ 운운하며 비아냥댔던 보도 태도와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신화통신은 유승민이 금메달을 따고도 인터뷰에서 “아직 중국 탁구가 세계정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금메달을 딴 이후 50개(2004 아테네올림픽 포함)가 넘는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이번의 유승민 선수만큼 극적이고 의미 있는 금메달은 없었다. 탁구에 자존심을 걸고 있는 중국을,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제압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한국 탁구는 유승민의 단식보다 이철승 유승민의 복식에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이철승 유승민 조는 8강에서 러시아 조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여자 복식의 이은실 석은미 조도 결승전에서 중국에 완패했다. 탁구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스웨덴의 40살 백전노장 발트너가 중국의 마린과 독일의 티모볼을 꺾고 올라온 뒤 준결승전에서 유승민에게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제까지 유승민에게 마린은 7전 전승, 티모볼은 3전 전승을 올리고 있던 천적이었다. 발트너가 유승민의 천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본인은 전사한 것이다.
영원한 우승후보 나경민·김동문 혼복팀 또 눈물
유승민의 금메달 이후 한국선수단은 이틀 동안이나 메달 소식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똘똘이 3총사 가운데 막내인 정지현이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정지현은 체조 선수 출신답게 유연한 허리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전·현 세계챔피언들을 일방적으로 제압해나갔다. 특히 2000년 시드니올림픽 58kg급 결승전에서 정지현의 대선배 김인섭의 갈비뼈 부상 부위를 집중 공격해 금메달을 빼앗아갔던 불가리아의 나자리안에게도 3대 1로 이겨 선배의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새롭게 떠오른 스타는 아니지만, 대회 마지막 날 값진 금메달을 따낸 태권도의 문대성도 최고의 ‘별’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의 호쾌한 뒷발 돌려차기로 한국 스포츠는 세계 10위 내 진입이라는 아테네올림픽 출정 당시의 목표를 달성했고, ‘지루한 격투기’라는 비판을 받던 태권도가 화끈한 KO 게임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며 국제 무대에서의 위상을 회복했다.
외국선수 가운데에는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가 가장 눈에 띄었다. 펠프스는 자신의 주 종목인 접영 200m를 비롯해서 개인혼영 200, 400m 등에서 5관왕에 오른 뒤 금메달이 확실해 보이던 400m 혼계영 예선에 출전해 6관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혼계영 400m 결승전은 팀 동료를 위해 양보한다고 선언했다. 결국 양보를 했고, 미국은 이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펠프스는 규정(예선에 출전한 경우 결선에서 뛰지 않아도 금메달 수여)에 따라 관중석에 앉아 응원만 하고도 금메달을 따 6관왕에 성공했다. 그래서 펠프스는 수영장 안팎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칭찬을 들었다.
미국계 흑인들이 지배해온 올림픽 육상 단거리에 ‘황색 돌풍’을 일으킨 중국의 류시앙도 아테네에서 화려하게 뜬 새 별이다. 8월28일 열린 육상 남자 110m 허들에서 류시앙은 12초91의 기록으로 테렌스 트러멜(미국ㆍ13초18)을 큰 격차로 따돌리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금메달을 따냈다. 류시앙은 반응속도 0.139초를 기록하는 놀라운 스타트를 끊은 뒤 거침없이 질주해 육상 트랙 종목 사상 최초의 동양인 금메달 리스트가 됐다.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도 이변이 생겼다. 미국의 신예 저스틴 게이틀린은 ‘인간 탄환’을 가리는 이번 대회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 30m 지점부터 치고 나간 뒤 막판 스퍼트를 올리며 결승선을 통과, 금메달을 움켜쥐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프랜시스 아비크웰루(포르투갈·9초86) 모리스 그린(미국·9초87) 등을 사진판독 끝에 따돌린 명승부였다. 대회 전까지 ‘복병’ 정도로 여겨졌던 게이틀린은 팀 몽고메리(미국)의 세계기록(9초78)에는 못 미치지만 숀 크로퍼드(미국)의 올 시즌 최고기록(9초88)은 0.03초 단축시킨 좋은 기록으로 아테네 최고 영웅이 됐다.
여자 육상 100m에서 금메달을 딴 벨로루시의 율리야 네스테렌코도 아테네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는 매스컴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신출내기였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미국의 간판스타 로린 윌리엄스(9초96)와 자메이카의 대들보 베로니카 캠벨(9초97)을 따돌리고 9초93이라는 좋은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네스테렌코의 금메달은 미국이 올림픽을 보이콧한 80년 모스크바올림픽 이후 24년 만에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선수가 올림픽 육상 여자 100m에서 차지한 금메달이다.
그밖에 여자 역도 플러스 75kg급에서 중국의 당궁홍에 겨우 2.5kg이 뒤진 302.5kg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한 장미란과 여자 수영 400m 개인혼영에서 7위를 차지한 남유선 선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더욱 빛나 보였다.
배드민턴 혼합복식의 나경민 김동문 조는 이번 대회에 걸려 있는 301개의 금메달에 가장 근접한 선수였다. 그동안 크고 작은 국제대회 14연속 우승의 기록이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8강전에서 덴마크의 요나스 라스무센, 리케 올센 조에 0대 2로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패인은 지나친 긴장으로 분석됐다. 4년 전인 시드니올림픽에서도 8강에서 무너졌던 것을 되돌아보면, 세계적인 선수들도 올림픽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경민 김동문 조는 아테네올림픽이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에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날개 꺾인 김운용, 아테네올림픽의 진정한 패배자?
일본 유도의 자존심 이노우에 고세이는 60년대 203연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유도선수 야마시타 야스노리 선수 이후 최고의 유도선수로 인정받고 있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 한판승으로 이기는 확률이 80%가 넘는 화려한 이력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반더게스트에게 업어치기 한판으로 패해 패자전으로 밀린 이후 패자전에서도 힘없이 무너져 빈손으로 쓸쓸히 귀국 길에 올라야 했다.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가 예상보다 부진했던 이유는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영에서 최소한 2개의 메달을 딸 것으로 믿었던 포포프는 자유형 50m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21초64에 무려 1초 가까이 뒤지는 22초58의 기록으로 18위에 그쳐 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했고, 400m 혼계영에서도 미국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포포프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자유형 50m와 100m를 2연패했던 단거리 수영의 전설이다.
축구에서 유럽세의 몰락도 주목할 만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8강에 올랐는데, 8강팀 가운데 유럽팀은 이탈리아 한 팀뿐이었다. 나머지 8강은 아시아의 한국과 이라크, 남미의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북중미의 코스타리카, 아프리카의 말리,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호주 등이 차지했다.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은 첫 경기에서 복병 이라크에 2대 4로 패해 D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개최국 그리스도 첫 경기에서 한국과 간신히 2대 2로 비긴 뒤 말리에 0대 2, 멕시코에 2대 3으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유럽의 강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옛 유고시절 올림픽 금메달 1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땄던 올림픽 단골 수상 국가였다. 그런데 예선에서 3전 전패로 탈락했다.
유럽예선에서 1위를 차지했던 이탈리아는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파라과이에 0대 1로 패해 겨우 B조 2위로 8강에 올랐지만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해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테네올림픽의 진정한 패배자는 한때 스포츠계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힘을 과시하던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일 것이다. 올해 초 뇌물수수 및 공금유용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부위원장은 지난 30년 가까이 올림픽이 열릴 때면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가장 바빴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런데 두 평 남짓한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그것도 하루에 한 시간씩 TV를 보면서 지냈다. 물론 신문을 통해 올림픽 관련 소식을 빼놓지 않고 봤겠지만, 인생의 회한을 뼈저리게 절감했을 것이다.
마침 남자 체조 개인종합에서 양태영이 억울한 판정을 받아 금메달이 동메달로 바뀌는 등 한국선수들이 심판의 편파 판정에 불이익을 당할 때마다 “김 부위원장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당했을까”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김동성이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겼을 때 “솔트레이크올림픽은 성공한 올림픽” 운운하며 미국을 두둔한 전력을 감안하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던 김 부위원장이 있었더라면 오히려 더 불리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김 부위원장이 이번 아테네올림픽 때 자신의 일생 가운데 가장 불행한 나날을 보낸 것만은 확실하다.
국내 스타 가운데에는 ‘똘똘이 3총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유도의 이원희와 탁구의 유승민, 그리고 레슬링의 정지현이다. 세 선수 모두 한국선수단이 금메달을 절실히 원할 때 한 방씩 터뜨려주었다.
금메달 소식 뜸할 때마다 ‘똘똘이 3총사’ 한 건씩
유도의 이원희는 한국선수단이 개막 이후 첫 금메달을 기대했던 사격장에서 울고, 배드민턴 경기장에서 터지고 있을 때(개막 3일째)인 8월16일, 남자 유도 73kg급에서 첫 금메달을 땄다. 한판승의 사나이답게 부전승으로 2회전에 오른 첫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4경기를 모두 한판으로 이겼다. 한국선수단은 이원희의 금메달 소식을 신호탄으로 양궁 여자 개인전과 배드민턴 남자 복식, 그리고 양궁 남녀 단체전에서 줄줄이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 쾌속 행진을 하던 한국선수단은 8월21일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후 금맥이 끊어졌다. 8월22일 하루를 허송하게 보내던 한국선수단에 한 줄기 빛이 비췄다. 탁구 신동 유승민이 일을 낸 것이다. 유승민은 중국의 떠오르는 별 왕하오와 치른 남자 개인단식 결승전에서 4대 2로 이겨 감격의 금메달을 땄다. 유승민의 금메달은 중국이 자존심을 내세우던 탁구 종목, 그것도 남자 개인단식에서 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국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탁구 남녀 개인단식과 복식 4종목을 모두 석권해 두 대회 완전 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도 여자 개인단·복식과 남자 복식에서 이미 금메달을 따내 남자 단식만 석권하면 세 대회 내리 완전 우승에 성공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화룡점정의 마지막 점 하나를 남겨놓고 유승민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유승민의 금메달은 곧 중국의 신화통신은 물론 AP AFP 등 세계적인 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됐다. 신화통신은 이례적으로 유승민을 ‘새로운 챔피언’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 한국이 4강에 오르자 ‘홈 디시전’ 운운하며 비아냥댔던 보도 태도와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신화통신은 유승민이 금메달을 따고도 인터뷰에서 “아직 중국 탁구가 세계정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금메달을 딴 이후 50개(2004 아테네올림픽 포함)가 넘는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이번의 유승민 선수만큼 극적이고 의미 있는 금메달은 없었다. 탁구에 자존심을 걸고 있는 중국을,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에 제압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한국 탁구는 유승민의 단식보다 이철승 유승민의 복식에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이철승 유승민 조는 8강에서 러시아 조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여자 복식의 이은실 석은미 조도 결승전에서 중국에 완패했다. 탁구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스웨덴의 40살 백전노장 발트너가 중국의 마린과 독일의 티모볼을 꺾고 올라온 뒤 준결승전에서 유승민에게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제까지 유승민에게 마린은 7전 전승, 티모볼은 3전 전승을 올리고 있던 천적이었다. 발트너가 유승민의 천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본인은 전사한 것이다.
영원한 우승후보 나경민·김동문 혼복팀 또 눈물
유승민의 금메달 이후 한국선수단은 이틀 동안이나 메달 소식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똘똘이 3총사 가운데 막내인 정지현이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정지현은 체조 선수 출신답게 유연한 허리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전·현 세계챔피언들을 일방적으로 제압해나갔다. 특히 2000년 시드니올림픽 58kg급 결승전에서 정지현의 대선배 김인섭의 갈비뼈 부상 부위를 집중 공격해 금메달을 빼앗아갔던 불가리아의 나자리안에게도 3대 1로 이겨 선배의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새롭게 떠오른 스타는 아니지만, 대회 마지막 날 값진 금메달을 따낸 태권도의 문대성도 최고의 ‘별’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의 호쾌한 뒷발 돌려차기로 한국 스포츠는 세계 10위 내 진입이라는 아테네올림픽 출정 당시의 목표를 달성했고, ‘지루한 격투기’라는 비판을 받던 태권도가 화끈한 KO 게임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며 국제 무대에서의 위상을 회복했다.
외국선수 가운데에는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가 가장 눈에 띄었다. 펠프스는 자신의 주 종목인 접영 200m를 비롯해서 개인혼영 200, 400m 등에서 5관왕에 오른 뒤 금메달이 확실해 보이던 400m 혼계영 예선에 출전해 6관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혼계영 400m 결승전은 팀 동료를 위해 양보한다고 선언했다. 결국 양보를 했고, 미국은 이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펠프스는 규정(예선에 출전한 경우 결선에서 뛰지 않아도 금메달 수여)에 따라 관중석에 앉아 응원만 하고도 금메달을 따 6관왕에 성공했다. 그래서 펠프스는 수영장 안팎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칭찬을 들었다.
미국계 흑인들이 지배해온 올림픽 육상 단거리에 ‘황색 돌풍’을 일으킨 중국의 류시앙도 아테네에서 화려하게 뜬 새 별이다. 8월28일 열린 육상 남자 110m 허들에서 류시앙은 12초91의 기록으로 테렌스 트러멜(미국ㆍ13초18)을 큰 격차로 따돌리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금메달을 따냈다. 류시앙은 반응속도 0.139초를 기록하는 놀라운 스타트를 끊은 뒤 거침없이 질주해 육상 트랙 종목 사상 최초의 동양인 금메달 리스트가 됐다.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도 이변이 생겼다. 미국의 신예 저스틴 게이틀린은 ‘인간 탄환’을 가리는 이번 대회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 30m 지점부터 치고 나간 뒤 막판 스퍼트를 올리며 결승선을 통과, 금메달을 움켜쥐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프랜시스 아비크웰루(포르투갈·9초86) 모리스 그린(미국·9초87) 등을 사진판독 끝에 따돌린 명승부였다. 대회 전까지 ‘복병’ 정도로 여겨졌던 게이틀린은 팀 몽고메리(미국)의 세계기록(9초78)에는 못 미치지만 숀 크로퍼드(미국)의 올 시즌 최고기록(9초88)은 0.03초 단축시킨 좋은 기록으로 아테네 최고 영웅이 됐다.
여자 육상 100m에서 금메달을 딴 벨로루시의 율리야 네스테렌코도 아테네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는 매스컴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신출내기였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미국의 간판스타 로린 윌리엄스(9초96)와 자메이카의 대들보 베로니카 캠벨(9초97)을 따돌리고 9초93이라는 좋은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네스테렌코의 금메달은 미국이 올림픽을 보이콧한 80년 모스크바올림픽 이후 24년 만에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선수가 올림픽 육상 여자 100m에서 차지한 금메달이다.
그밖에 여자 역도 플러스 75kg급에서 중국의 당궁홍에 겨우 2.5kg이 뒤진 302.5kg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한 장미란과 여자 수영 400m 개인혼영에서 7위를 차지한 남유선 선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더욱 빛나 보였다.
배드민턴 혼합복식의 나경민 김동문 조는 이번 대회에 걸려 있는 301개의 금메달에 가장 근접한 선수였다. 그동안 크고 작은 국제대회 14연속 우승의 기록이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8강전에서 덴마크의 요나스 라스무센, 리케 올센 조에 0대 2로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패인은 지나친 긴장으로 분석됐다. 4년 전인 시드니올림픽에서도 8강에서 무너졌던 것을 되돌아보면, 세계적인 선수들도 올림픽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경민 김동문 조는 아테네올림픽이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에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날개 꺾인 김운용, 아테네올림픽의 진정한 패배자?
일본 유도의 자존심 이노우에 고세이는 60년대 203연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유도선수 야마시타 야스노리 선수 이후 최고의 유도선수로 인정받고 있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 한판승으로 이기는 확률이 80%가 넘는 화려한 이력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반더게스트에게 업어치기 한판으로 패해 패자전으로 밀린 이후 패자전에서도 힘없이 무너져 빈손으로 쓸쓸히 귀국 길에 올라야 했다.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가 예상보다 부진했던 이유는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영에서 최소한 2개의 메달을 딸 것으로 믿었던 포포프는 자유형 50m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21초64에 무려 1초 가까이 뒤지는 22초58의 기록으로 18위에 그쳐 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했고, 400m 혼계영에서도 미국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포포프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자유형 50m와 100m를 2연패했던 단거리 수영의 전설이다.
축구에서 유럽세의 몰락도 주목할 만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8강에 올랐는데, 8강팀 가운데 유럽팀은 이탈리아 한 팀뿐이었다. 나머지 8강은 아시아의 한국과 이라크, 남미의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북중미의 코스타리카, 아프리카의 말리,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호주 등이 차지했다.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은 첫 경기에서 복병 이라크에 2대 4로 패해 D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개최국 그리스도 첫 경기에서 한국과 간신히 2대 2로 비긴 뒤 말리에 0대 2, 멕시코에 2대 3으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유럽의 강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옛 유고시절 올림픽 금메달 1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땄던 올림픽 단골 수상 국가였다. 그런데 예선에서 3전 전패로 탈락했다.
유럽예선에서 1위를 차지했던 이탈리아는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파라과이에 0대 1로 패해 겨우 B조 2위로 8강에 올랐지만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해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테네올림픽의 진정한 패배자는 한때 스포츠계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힘을 과시하던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일 것이다. 올해 초 뇌물수수 및 공금유용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부위원장은 지난 30년 가까이 올림픽이 열릴 때면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가장 바빴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런데 두 평 남짓한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그것도 하루에 한 시간씩 TV를 보면서 지냈다. 물론 신문을 통해 올림픽 관련 소식을 빼놓지 않고 봤겠지만, 인생의 회한을 뼈저리게 절감했을 것이다.
마침 남자 체조 개인종합에서 양태영이 억울한 판정을 받아 금메달이 동메달로 바뀌는 등 한국선수들이 심판의 편파 판정에 불이익을 당할 때마다 “김 부위원장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당했을까”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김동성이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겼을 때 “솔트레이크올림픽은 성공한 올림픽” 운운하며 미국을 두둔한 전력을 감안하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던 김 부위원장이 있었더라면 오히려 더 불리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김 부위원장이 이번 아테네올림픽 때 자신의 일생 가운데 가장 불행한 나날을 보낸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