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6

2009.10.13

서당에서는 천자문만 달달 읽었을까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10-07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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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당에서는 천자문만 달달 읽었을까

    김풍기 지음/ 푸르메 펴냄/ 373쪽/ 1만5000원

    필자는 한 포털사이트에 1981년부터 2009년까지 베스트셀러의 흐름을 한 해씩 소개하는 ‘베스트셀러 30년’을 연재 중이다. 지금은 1987년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 정리로도 당시 ‘한 권의 책’이 독자와 얼마나 깊숙이 관계 맺고 있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다시 읽어보는 베스트셀러들은 너무 쉽게 술술 읽히고 한 시대 독자들의 욕망을 미뤄 짐작해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출간된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는 조선시대에 유통되던 책에 스민 옛 사람의 자취와 책의 제작과정을 살펴보고, 나아가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판본과 그 책이 지닌 의미를 재정리한다.

    저자는 ‘책은 언제나 시대와 독자의 해석을 기다리며 존재하는 하나의 텍스트였지만, 동시에 해석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수시로 변화시키며 사유의 역사를 만들어온 주체’라고 정의 내린다. 그렇다면 그런 정의에 합당한 책은 어떤 책일까.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에는 모두 26권이 등장한다. 그 중 소설과 시문이 각각 6권으로 절반에 가깝다. 우리 역사에서 소설은 그리 많지 않다. 교과서에서 배운 최초의 소설은 김시습이 구우의 ‘전등신화’를 읽고 쓴 ‘금오신화’다.

    다음은 허균의 ‘홍길동전’이다. 김시습과 허균 사이에는 150여 년이라는 긴 시간적 공백이 있지만, 그동안에 유통된 소설은 없는 줄 알았다. 저자는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의 단편소설집 ‘기재기이’를 소개한다. 그리고 근래에 채수의 ‘설공찬전’도 발굴됐음을 알린다. 또 ‘왕랑반혼전’ ‘원생몽류록’ ‘화사’ 등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문학사가 달라지는 것이다.



    교과서도 마땅히 바뀌어야 할 것이다(이미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이런 사실에서 조선시대 지식인들도 삶의 고비마다 자신의 감회를 허구적인 이야기에 가탁하며 울적한 심회도 풀고 자신의 생각도 우회적으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연산군도 소설을 즐겨 읽었고 송시열도 ‘금오신화’를 읽고 싶었으나 구할 수 없었다고 하니,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이 발굴될지 모를 일이다.

    인간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을 채우고자 허구적인 이야기를 찾는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창작하고 소비하던 소설들을 많이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놀라울 정도로 저속하고 외설적인’ 내용 때문인지, 7년간의 임진왜란으로 소실돼서인지는 알 수 없다. 주자학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사대부와 관료들이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로 불교와 도교의 신이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서유기’나,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를 모아놓은 ‘태평한화골계전’ 같은 설화에 왕성한 관심을 표출했다는 것을 보면 인간은 결코 ‘이야기’에서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나라에서 송나라까지 진귀한 시와 문장을 모은 ‘고문진보’와 중국 최초의 시문선집으로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문선’, 당나라와 송나라의 율시만 선별해 수록한 ‘영규율수’, 율곡 이이가 한나라부터 송나라까지 중국 한시 가운데 읽을 만한 것을 모은 ‘정언묘선’ 등의 시문집을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교과서처럼 여기며 암송했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에 등장한 나머지 절반의 책은 서당에서 주로 읽힌 책 5권, 종교서적 2권,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책 7권이다.

    포악한 독재자가 거북해하는 책이면서 절대권력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는 ‘맹자’,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큰 화를 입은 기묘사화로 오랫동안 금서로 묶였던 송나라 성리학자 주희의 ‘소학’, 웬만한 한문 공부로는 해독하기 힘든 ‘천자문’, 1362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기록하면서 왕은 왕으로서의 덕을 가지고 경전을 공부하고 백성들의 삶을 돌보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자치통감’ 등이 서당에서 주로 읽혔다고 한다.

    모두 지식인의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역할을 강조한 책이다. 조선 중기 이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사유를 담은 중국 책들을 사오는 것이 트렌드였다. 이 책의 5부까지 읽고 나면 중국의 ‘양명좌파’로 지칭되는 이탁오의 ‘분서’를 읽은 허균이 과격한 사유와 행동을 하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책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사유와 일상생활의 족적을 추적해볼 수도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필자가 발행하고 있는 출판전문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1년간 연재된 것이다. 평소 필자가 펴냈거나 관련된 책의 소개는 되도록 피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쉬운 글로 풀어내는 저자의 글솜씨가 탁월해 누군가에게는 꼭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그런 금기마저 무시하고 소개한다. 이 점 널리 용서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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