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6

2009.10.13

결혼, 제로섬 게임의 법칙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09-30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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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 ‘공급’ ‘니즈(needs)’ ‘계산기’ ‘(유산) 20억원’…. 결혼 트렌드 취재를 위해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며 가장 빈번하게 들은 말입니다. 경제학 수업시간에나 등장할 이 단어들이 국내 결혼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은 이유는 뭘까요. 취재 중 만난 한 결혼정보업체 대표는 최근 다른 업체 커플매니저에게서 받았다며 흥미로운 e메일 하나를 보여줬습니다.

    ‘39세, 키 174cm, 준수한 외모까지 갖춘 치과의사와 ‘보통 수준’의 외모에 군(郡) 소재지 출신인 31세 초등학교 여교사 A씨의 결혼을 성공시켰는데 성혼 사례비로 1000만원을 약속했던 A씨가 지불을 거부, 소송까지 가게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A씨가 내건 희망조건 ‘의사, 예단 없는 결혼, 혼수액 3000만원 미만’을 다 맞춰주었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정도까지 본인보다 훨씬 나은 상대를 찾아줬는데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것이 매니저의 주장입니다.

    이 얘기를 들려준 결혼정보업체 대표는 “사례비를 노린 커플매니저가 상대방 남성을 설득하기 위해 A씨를 얼마나 ‘부풀리기’ 했을지 짐작 간다”며 “이런 사례들을 보면 솔직히 결혼은 ‘제로섬 게임’(참가자들의 이득과 손실의 총합은 결국 0이 된다는 뜻)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양팔저울 양편에 올라 한 치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완벽한 평형점을 찾으려 애쓰는 현실.

    점잖은 체 뒷짐 지고 ‘신성한 결혼이 이래서야 되겠냐’고 외치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정보업체 ‘메리티스’ 권량 대표는 “현실을 인정하고 차라리 국가가 나서 결혼에 대한 객관적 통계, ‘결혼 인덱스’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자신의 나이와 연봉, 학력, 결혼 경험, 종교 등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전국에서 내 조건에 맞는 결혼 상대자가 몇 명인지 알 수 있고, 각종 통계를 통해 나의 ‘위치’ 또한 객관적으로 알 수 있으리라는 설명입니다.

    결혼, 제로섬 게임의 법칙
    이 모든 풍경은 물론 조건을 가장 중시하는 중매결혼 시장에서 자주 생겨나는 일들입니다. ‘에스노블’ 이윤희 대표는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순수한 마음’을 지닌 어릴 때 연애로 만나야 쉽게 성공한다고 주위에 조언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없을수록 서둘러야 하는 서글픈 결혼의 현실. 괜찮은 결혼 상대를 선점하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 ‘스피드’라면, 우리 민족은 역시 ‘빨리빨리’와 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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