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4

2007.07.17

엽기발랄! 유럽 의식주의 역사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7-07-16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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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기발랄! 유럽 의식주의 역사
    역사란 이 땅을 살았던 인간의 삶과 인간을 둘러싼 사건의 흐름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에는 권력과 사건 묘사, 즉 거시사가 대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 개인과 일상에 초점을 맞춘 미시사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서양의 미시사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저자는 책장만 넘기는 나열식 역사가 아니라 의식주가 생생히 살아 있는 서양 역사를 이야기한다.

    먼저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자. 소식(小食)을 한 그리스인들은 아침을 아주 적게, 점심도 비교적 간단하게 먹었다. 그러나 손님 대접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저녁에는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 회식은 남자들만 참석했다. 음식 시중을 드는 하녀와 고급 창녀인 헤타이라(Hetaira), 여성 악사를 제외한 여성들은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남자들은 비스듬히 누워 음악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저녁시간을 즐겼다. 물론 서민의 평범한 식사가 아니라 일부 상류층의 모습이다.

    “성적인 쾌락까지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리스 남자들은 ‘국가는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테네에는 값싼 매춘이 성행했다. 매춘은 아테네 남자들의 일상이고 매춘에 대한 수치심도 별로 없었다. 미소년을 상대로 남성 동성애도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고대 그리스는 또 개인생활 가치보다 전체 복지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국가가 가정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철학자 플라톤은 ‘지배층 남녀에게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 혼인축제를 열고 제비뽑기를 하라’고 제안했을 만큼 공익을 앞세웠다.

    강력한 제국 로마에는 모든 것이 풍부했다. 로마 귀족들은 제정 시기로 접어들면서 호화롭고 기름진 식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세련미와 대식(大食), 별난 음식을 추구한 그들은 정오부터 시작해 저녁때까지 잘 차린 음식을 몇 시간씩 즐겼다. 또 매일 연회 때마다 먹기 경연대회를 벌여 대식가에게 상금을 주었다. 이 때문에 먹은 것을 토해내고 다시 먹는 사람도 생겨났다. 암퇘지 자궁과 젖퉁이는 귀족들이 가장 선호한 음식이었다.



    제국의 수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게 마련. 지방 사람들은 잘살기 위해 로마행 마차에 올랐다. 지방 도시에 사느니 차라리 로마에서 죽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렇게 로마로 몰려드는 서민들을 위해 요즘의 아파트 같은 집합주택이 건축됐다. 어떤 것은 10층까지 올라갔다. 수도 과밀화는 온갖 사회문제를 불러왔다.

    중세 하면 교회와 기사, 분위기 있는 성(城)이 떠오른다. 성에서의 생활이 우아하고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불편하고 비위생적이었다. 흙이나 돌, 나무로 된 바닥에 짚이나 풀을 깔고 생활했다.

    사형은 중세에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 광장이나 거리는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엄격한 신분질서에 따라 사형 방식도 달랐다. 귀족은 화려한 차림으로 죽음을 맞았지만 평민은 셔츠 차림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인들은 민족의상을 즐겨 입었다. 그러나 외국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패션과 유행에 눈뜨게 된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유럽 대부분은 유행의 물결이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했다.

    한국사도 교실에서 외면받는 현실에서 서양 역사는 아직 머나먼 남의 일이다. 하지만 책갈피 곳곳에 사람 냄새 나는 서양 역사는 재미있다. 무조건 외워야 하는 역사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역사가 좋다.

    김복래 지음/ 안티쿠스 펴냄/ 352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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