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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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오수 야구장에선 복덩이, 한국살이는 범생이

6년째 한국서 뛰며 에이스급 활약 … 한글 배우는 등 우리 문화 적응 노력도 각별

  •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입력2007-06-25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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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오수 야구장에선 복덩이, 한국살이는 범생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주요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에는 외국인선수 제도가 있다.

    일본에선 외국인 선수를 스켓토(助っ人)라고 한다.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선 대부분 용병(傭兵)이란 말을 쓴다. 팀의 일원이라기보다 ‘돈을 받고 그 대가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용병이나 스켓토란 말에는 한 식구가 아니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실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를 데려와도 기대 이하의 기량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트로이 오리어리(전 삼성), 알 마틴(전 LG) 등은 세계 최고의 무대라는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이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에서 자리잡지 못해 보따리를 싸야 했다. 한국 문화와 언어 장벽에 막혔기 때문이다. 스카우터들은 한결같이 “실력도 실력이지만 적응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는 半한국인

    그런 점에서 6년째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두산 투수 다니엘 리오스(35·미국·사진)는 특별한 점이 많은 선수다.



    그는 반(半)한국인이다. 동료 선수와 팬들은 그를 ‘용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두산의 에이스로 대접한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느 외국인 선수들은 구장으로 출퇴근할 때 택시를 타지만, 리오스는 아내 아들 딸과 함께 지하철을 탄다. 다음 날 선발투수라서 홀로 이동해야 할 땐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리오스의 통역을 담당하는 이창규 대리가 “지하철, 기차, 고속버스 등 한국의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아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달엔 한국 사람도 좀처럼 탈 기회가 없는 무궁화호까지 탔다. 마산 원정 중이던 리오스에게 구단 측은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무궁화호를 탄 뒤 KTX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굳이 기차를 선택했다. 비행기는 언제든 이용할 수 있지만 별로 탈 기회가 없는 무궁화호를 꼭 한번 타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는 게 구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KIA 시절에는 경기가 없는 날이면 자동차를 렌트해 아내와 함께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 그런 리오스에게 KIA 팬들은 ‘이오수’라는 한국식 이름을 붙여줬다. 리오스는 팬들에게 “저는 전라도 용병이랑께~”라며 화답했다. 리오스는 요즘도 자신을 소개할 때 “내 이름은 이오수입니다”라고 말한다.

    한국 생활이 벌써 6년째지만 한국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야구할 때 필요한 간단한 단어를 구사하는 정도다. 그러나 한글을 읽는 능력은 뛰어나다.

    리오스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KIA의 스프링캠프에서다. 그때 리오스는 더그아웃 한쪽에서 통역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한글로 선수들의 이름을 익히고 있었다. 다른 팀과 대결할 때는 그 선수의 이름을 한글로 쓰고, 그 옆에 장단점을 분석해뒀다. 그런 식으로 한글을 익혀 요즘은 신문에 난 자신의 기사를 술술 읽는다. 물론 100%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서 간혹 통역 담당자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경기장 밖에서 이렇게 주변과 동화하려 애쓰고 늘 신사처럼 행동하지만 마운드 위에선 투지의 화신으로 돌변한다.

    쿠바계 미국인답게 리오스는 다혈질이다. 그만큼 승부 근성도 강하다. 빠른 경기 운영과 공격적인 투구는 야수들에게 믿음을 심어준다. 심장이 튼튼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몸쪽 승부도 즐겨 한다. 덕분에 리오스는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몸에 맞는 볼 1위를 기록했다.

    MLB 실패 후 한국 진출 실력 발휘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그가 에이스인 까닭은 엄청난 이닝 소화 능력 때문이다. 리오스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졌다.

    지난해엔 무려 233이닝을 던졌다. 리오스가 나가는 날은 어쨌거나 7회는 버틴다는 믿음이 있다. 올해도 리오스는 8개 구단을 통틀어 최다인 94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며 다승(8승)과 평균자책(1.90) 1위를 달리고 있다(6월12일 현재).

    사실 리오스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일천하다. 1997년 뉴욕 양키스와 이듬해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뛰었지만 고작 7경기에 출장해 0승 1패에 평균 자책 9.31을 기록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거들도 곧잘 실패하고 돌아가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리오스는 6년째 에이스로 군림하고 있다.

    리오스는 “자기가 뛰는 리그를 존경해야만 그 나라의 야구 수준을 제대로 파악할 뿐 아니라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한국 사람을 존경한다. 그는 외국인 선수의 모범답안 같은 선수다.

    다니엘 리오스(Daniel Rios)



    · 출생 : 1972년 11월11일

    · 소속 : 두산 베어스

    · 포지션 : 투수

    · 학력 : 마이애미 대학교

    · 한국 데뷔 : 2002년 KIA 타이거즈 입단

    · 수상 : 2005년 프로야구

      정규리그 최다 탈삼진상

    · 경력 : 2005년 두산 베어스로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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