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6

2006.12.26

이미지 상호 충돌, 낯선 시각 체험

  • 이병희 미술평론가‘bulb-pattern’‘rainbowmouse’

    입력2006-12-26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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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상호 충돌, 낯선 시각 체험

    'bulb-pattern'

    안수연이 차용하는 이미지의 소재는 전구, 축구공, 국기, 미키마우스 같은 만화 캐릭터, 집이나 성 형태, 리본이나 종이 접기 등이다. 이런 것들은 어떤 상징성이나 의미를 갖는 소재가 아니라, 디자인의 일부이거나 어디에나 무차별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요소다. 작가는 이것들을 단순한 몇 가지 모티브로 나열, 반복, 병렬해 포토샵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선과 색깔로 제시한다. 이것들은 비재현적이고 인공적이며, 심지어 기능적인 기호로 보인다. 이런 디지털 이미지, 그래픽 이미지들은 일상적이고 팝적인 소재가 갖는 범용성과 미니멀적인 일시성, 순열적으로 재생산되는 복제성 등을 내포하고 있다.

    평면적인 디지털 일러스트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은 어떤 기호나 장식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자세히 보면 미묘한 입체감을 갖고 있다. 안수연은 각각의 이미지 일부를 파내기도 하고 색을 덧입히기도 하며, 미묘한 명암을 넣거나 볼록하게 해 삼차원의 느낌을 첨가한다. 컴퓨터 아트 기법을 동원해 반복, 증식되는 동영상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기호와 같은 이미지들은 고유한 맥락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무의미하고 비개성적인 모티브들에 상징을 부여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상치 못한 느낌들을 체험함으로써 생기는 관람자 입장에서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상호 충돌, 낯선 시각 체험

    \'rainbowmouse\'

    안수연의 이미지들은 단순하지만, 평면성/ 삼차원성, 유일한 것/ 평범한 것, 인공적인 것/ 사실적인 것 등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런 충돌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 사이의 상호 부정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낯설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만들어낸다. 무의미하고 무차별적인 기호의 상용성·범용성·복제성이 일시성·현장성·우연성·고유성으로, 심지어 불합리성·부조리함·경고·모순 등과 같은 일종의 불안의 느낌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느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치명적인 무엇인가로 출현할 때 생긴다. 그것은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사랑 혹은 트라우마가 출현하는 것처럼 매우 순간적이고 예상치 못한 것이다. 마치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에서 주인공 남자가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주인공 여자의 뜯어진 스타킹 구멍이었던 것처럼, 안수연의 이미지들은 상호 충돌을 일으키고 의외의 컨텍스트를 만들어내며 관객에게 미묘하고 낯선 시각 체험을 제공한다. 1월11일까지, 가인갤러리, 02-394-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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