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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암말 샤워 소리가 두려워!”

수십억 몸값 씨수말의 쾌락과 고통 사이 … 두 달 넘게 매일 2회씩 교배, 도중 목숨 잃기도

  • 제주=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씨암말 샤워 소리가 두려워!”

“씨암말 샤워 소리가 두려워!”

2004년과 2005년 씨수말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컨셉트윈’.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자리한 한국마사회 제주경주마목장(이하 제주목장). 올해 18세의 종마(씨수말) ‘피어슬리’는 이곳 씨수말 중 최고령이다. 하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동안 이곳에서 51마리의 씨암말을 상대했다. 피어슬리는 그 덕분에 올해도 제주목장에서 ‘현역 씨수말’ 대우를 온전히 받고 있다.

씨수말은 일반 말과는 달리 매우 특별하게 관리된다. 씨수말 한 마리당 2000~3000평 규모의 방목장(paddock) 하나가 배정된다. 그 넓은 초지를 씨수말 한 마리가 독차지하는 것. 비가 오거나 궂은 날을 대비해 고급목재로 지어진 마사도 준비돼 있다. 마사에는 씨수말마다 방이 마련돼 있고 방 앞에 이름표까지 붙어 있다. 청결은 기본이다.

“씨수말들은 서로 싸우다가 상처를 낼 수도 있기 때문에 한 우리에 넣지 않고 따로따로 넣어요. 교배가 끝나면 다음 해 교배 때까지 아무 하는 일 없이 먹고 자고 쉬면서 몸을 만들게 하죠. 사람으로 치면 한량이나 다름없어요.” 제주목장 관리사의 이야기다.

드넓은 방목장 독차지하고 강장제도 복용

하지만 씨수말들에게 이런 호강이 평생 약속돼 있지는 않다. 씨수말의 평균 정년은 20세. 다른 말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그 순간 현역에서 밀려나 ‘관상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씨수말의 세계에도 치열한 생존경쟁이 존재한다. 피어슬리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마사회에서 제공한 씨수말 관련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국내의 씨수말은 모두 외국에서 들여왔다. 미국이 주 수입처다.

마사회가 국내에 씨수말을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87년경부터. 마사회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각각 한 마리씩 기증받아 들여왔는데, 혈통이나 경주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해 씨수말로서의 제 기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웠다.

마사회는 90년대 들어와서도 값비싼 씨수말을 들여오지 못했다. 경마대회에서 3착 정도 하는 1억~2억원대의 싼 현역 경주마나 은퇴한 말 중에서 골라 씨수말로 수입했다. 마사회가 이때 수입한 말 중 하나가 피어슬리인데, 예상보다 훌륭한 씨수말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경마계를 주름잡고 있는 ‘새강자’ ‘고려방’ ‘만석꾼’ ‘새벽동자’ 등이 바로 피어슬리의 자마(子馬)들이다.

좋은 혈통과 경주 능력까지 갖춘 대회 우승마가 수입된 것은 90년대 중반 접어들면서다. 수입금액이 적게는 4억원, 많게는 7억원까지 늘어났다. 그러다 2004년에는 ‘엑스플로잇(28억원)’, ‘커멘더블(21억원)’ 등 20억원대 이상의 최고급 경주마가 수입된 데 이어 2005년에는 ‘볼포니’가 38억원에 수입돼 역대 최고 몸값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올해 10월20일 20억원대의 ‘비카’와 함께 40억원에 이르는 ‘메니피’가 수입되면서 1년도 채 안 돼 깨졌다.

“씨암말 샤워 소리가 두려워!”

사망한 씨수말을 기리기 위해 세운 ‘마혼비’.

이번에 수입한 2마리를 제외하고 현역으로 활동 중인 마사회 소유의 씨수말은 10월 현재 25마리다. 이들 씨수말은 매년 3월에 시작해 6월 말이나 늦으면 7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교배한다. 말의 임신기간이 340일인데, 출산 후 한 달 정도 지난 바로 이 시기가 가임기간이기 때문이다.

마사회 측에 따르면 한 씨수말이 상대하는 씨암말은 평균 40마리 정도다. 씨암말 한 마리당 평균 교배횟수는 2회로 전체 교배횟수가 80회 정도 된다. 하지만 씨수말에 따라 상대하는 씨암말 수는 물론 교배횟수의 편차가 크다. 한 해 전 연말에 ‘자마가 경마에 출전해 벌어들인 총 상금 금액’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씨수말 순위’에 따라 마주의 선호도에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순위가 씨수말들에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씨암말 마주들의 상당수가 씨수말 순위에서 1, 2위를 차지한 말과 교배하기 위해 줄을 선다. 그 결과 한 씨수말이 60~70마리 이상의 씨암말과 교배하는 경우도 있다.

2004년과 2005년 씨수말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컨셉트윈’은 올해 75마리의 씨암말과 무려 162회나 교배를 했다. 2개월 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2회, 많을 때는 3회씩 교배했다는 이야기다.

2000년과 2001년 씨수말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디디미’는 지난해 66마리의 씨암말과 관계를 맺었다.

수십억원대 몸값을 자랑하는 엑스플로잇과 볼포니, 커멘더블 등은 자마가 아직 경마에 출전하지 못해 씨수말 순위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몸값만큼 마주들에게서 인기를 모았다. 엑스플로잇과 볼포니가 올해 교배한 씨암말 수는 67마리, 커멘더블이 59마리를 기록했다. 세 씨수말 모두 최소한 120~140회 교배한 셈이다.

마사회 관계자에 따르면 씨수말이 교배할 때는 사료량을 10~20% 늘린다. 1회 평균 교배시간은 2~3분에 불과하지만 씨수말이 사용하는 정력과 이에 따라 느끼는 피로감이 크기 때문이다. 배합사료 내용도 조금 달라진다. 번식활동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D와 E, 정자 생성에 좋은 셀레늄 등이 배합사료에 첨가된다는 것. 또 홍삼가루나 마늘가루 등 강장제도 별도로 씨수말에게 제공된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제주목장 관리사는 “아무리 정력이 센 씨수말이라고 해도 6월 말이나 7월 초쯤 되면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교배소 방향으로 끌고 가면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지못한 듯 끌려와서 마치 기계처럼 억지로 교배를 마친다”고 말했다.

子馬 경마 성적 안 좋으면 곧장 퇴물 신세

하지만 국내 씨수말은 외국의 씨수말에 비하면 행복한 편이다. 2000년도를 전후해 일본 최고의 씨수말이던 ‘선데이 사일런스’는 매년 200마리 이상, 최고 270마리의 씨암말과 교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과도한 교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씨수말은 결국 질병으로 2002년에 죽었다. 당시 나이는 16세로 요절한 셈이다.

“씨암말 샤워 소리가 두려워!”

몸값이 40억원에 이르는 ‘메니피’.

미국에서도 씨수말이 한 해 200마리 이상의 씨암말을 상대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살아 있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씨수말은 경마에 출전하는 자마의 수가 줄어들거나, 자마의 성적이 좋지 않아 씨수말 순위에서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자연스레 은퇴의 길을 걷게 된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예비용 씨수말’이나 ‘관상용 씨수말’로 분류된다. ‘관상용 씨수말’은 말 그대로 그냥 보여주는 데 쓰는 말이란 뜻이다.

현역 씨수말에서 관상용으로 전환되면 처우부터 확연히 달라진다. 관상용은 방목장 중에서도 가장 외지고 척박한 곳으로 옮겨진다. 특히 초지가 부족할 때는 현역 씨수말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먼지가 가득한 맨땅 위에서 지내야 한다.

관리의 손길로부터도 멀어진다. 씨암말과의 교배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늙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외롭게 지내야 한다. 유배나 다름없다. 다만 하루 세 끼는 현역 씨수말과 똑같은 먹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마사회 관계자는 “관상용으로 전락하더라도 수명이 2년 정도에 불과한 경주용 말이나 약재용 말에 비하면 정말 축복받은 말이다. 죽은 뒤 묘까지 만들어주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평생 씨를 퍼뜨리는 데 기력을 소진하고 앙상한 뼈와 푸석한 가죽만 남은 씨수말의 종말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수십억원대 몸값을 자랑하는 젊은 씨수말의 자마들이 경마에 출전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2008년 이후. 그 자마들의 성적이 곧 수십억원대 씨수말들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다. 그때 성적이 형편없는 씨수말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



주간동아 558호 (p42~43)

제주=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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