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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조기유학,藥인가 毒인가

부모 욕심 ‘묻지마 조기유학’ 씻기 힘든 상처 남길라

몸 고생, 마음 고생, 가족 이별 ‘3중고’ … 명문대 진학 10% 남짓, 낙제 후 귀국 학생 비일비재

  • 밴쿠버·로스앤젤레스=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부모 욕심 ‘묻지마 조기유학’ 씻기 힘든 상처 남길라

부모 욕심 ‘묻지마 조기유학’ 씻기 힘든 상처 남길라
‘기러기 아빠’가 또 사고를 쳤다. 한 기러기 아빠가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가족에 대한 서운함과 소원(疎遠)이 쌓이면서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다.

한국식 교육열이 만들어낸 ‘기러기 가족’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가족 형태다. 가족의 이산(離散)이 적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옴에도 부모들은 자녀에게 ‘외국물’을 먹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교육은 소비인가, 투자인가? 조기유학은 가정의 행복을 담보로 한 ‘과감한 투자’이면서 수익이 불명확한 ‘묻지마 소비’다. 정작 문제는 ‘바다 건너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無知)에서 비롯된다.

바다 건너 상황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게 문제

“아이비리그요? 그건 엄마들의 희망사항일 뿐이죠.”



지난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로 조기유학 온 기러기 엄마 김모(44) 씨는 귀국을 고민 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한국에서 성적이 중·상위권이던 김 씨의 아들은 아직도 ESL(제2의 언어로서 영어교육) 수업을 듣고 있다. 정규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기엔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미국에 계속 있자니 아이의 미래가 뻔해요.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기엔 공백이 너무 크고…. 이곳에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사춘기 이후의 아이를 데리고 조기유학을 온 기러기 엄마 중엔 김 씨처럼 ‘죽도 밥도 안 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한 유학업체 대표는 “한국에서 최상위권이었거나 영어가 유창한 학생을 제외하면 중학교 3학년 이후에 유학 와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언론에 이따금 보도되는 미국 명문대에 진학한 유학생들의 성공기가 조기유학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지만, 이는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영어의 기초가 없는 데다 외국생활 경험도 없는 학생이 사춘기 이후 유학을 올 경우 위험부담이 매우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조기유학생은 10% 정도 될 거예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낙제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이 비일비재해요. ‘칼리지’에서 호텔경영학 같은 거 전공했다는 친구들을 한국에서도 많이 보셨죠? 칼리지는 등록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로스앤젤레스에서 유학사업을 하는 박모 씨)

미국에만 가면 좋은 환경에서 쉽게 영어를 배우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바람은 ‘무지’에서 비롯한 착각일 뿐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창조적인 사고와 전인적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면서 영어로 수업을 듣고 친구를 사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 욕심 ‘묻지마 조기유학’ 씻기 힘든 상처 남길라

한 조기유학생이 방과 후 교실에 남아 공부하고 있다.

미국 학생들도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일찍부터 준비한다. 또 학군이 좋은 부자동네 학교에 다니는 게 좋은 대학을 가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는 과외가 없고 사교육비가 들지 않는다는 것도 한국 학부모들의 착각이다. 학원비, 튜터비 등은 한국에서보다 더 비싸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나도 피부가 화이트(White)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화들짝 놀랐어요. 학교 행사에 가면 엄마 처지에서도 인종차별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아요.”(광역 밴쿠버 서리에 거주하는 한 기러기 엄마)

학부모가 간과하기 쉬운 게 인종차별 문제다. 인종차별 탓에 빗나간 청소년의 사례는 적지 않다. 사춘기 이후 유학 온 학생이 다른 문화권의 친구를 사귀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학생들만 모이는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된다. 미국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면 반대로 한국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는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지냅니다. 그런데 세컨더리(중·고등학교)부터는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중국인은 중국인끼리 모이죠. 대학을 가서도 마찬가지예요.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적다 보니 주눅이 들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쁜 짓도 하고 그러죠.”(중학교 1학년 때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와 현재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 다니는 김진우 씨)

로스앤젤레스의 미주한인마약퇴치센터엔 이따금 마약에 중독된 조기유학생이 치료를 받기 위해 들어온다. 매춘부와 마리화나를 구할 수 있는 밴쿠버의 헤이스팅스 거리를 기웃거리는 조기유학생도 없지 않다. 외국생활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면서 싹튼 조기유학생의 일탈은 기러기 엄마와의 불화로 이어진다.

“몸 고생, 마음 고생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견딜 수 있어요. 문제는 적지 않은 아이들이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거죠. 초등학생 때 유학 와서 사춘기를 이곳에서 보낸 아이들은 서구문화의 세례를 받아서인지 엄마와 적잖이 갈등을 일으켜요. 엄마를 영어도 못하는 바보로 여기고 무시하는 거죠.”(밴쿠버에서 가디언으로 일하는 김모 씨)

부모 중 한 명이 동반하지 않는 ‘나 홀로 유학’은 일종의 도박이다. 부모의 통제에서 자유롭다는 해방감 때문에 청소년들은 일탈의 유혹에 빠진다. ‘나 홀로 유학’은 ‘홈스테이 아빠’의 아이를 임신했다거나 마약에 빠졌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부작용이 적지 않다.

현지 학생보다 2~3배 노력해야 좋은 점수 받아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보딩스쿨(기숙사학교)로 유학 온 김재일(19·가명) 군의 사례를 보자. 한국에서는 성적이 중위권이던 김 군은 기부금을 내고 이 학교에 입학했다. 기부금을 낸 것은 학교가 요구하는 성적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김 군은 늦게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그렇듯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김 군은 결석하기 일쑤였고 알코올의존증에 시달렸다. 학교에서 쫓겨나 전학을 갔지만 새 학교에서도 대부분의 과목에서 낙제했다. 20세 이후에는 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어서 김 군은 고등학교 졸업장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부모 욕심 ‘묻지마 조기유학’ 씻기 힘든 상처 남길라
“보딩스쿨에 맡겼다고 자녀가 저절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부모들이 떠올리는 미국 기숙사는 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엄격하게 아이들을 관리하는 곳도 있지만, 학생 통제가 잘 안 되는 기숙사가 많습니다. 기숙사 안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건 예삿일이에요.”(소태호 동아유학주니어 캘리포니아 지사장)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기유학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1~3년의 ‘영어 연수’가 조기유학의 주류로 떠오른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게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에 더 유리하다. 1~3년의 조기유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한 뒤 특목고 유학반에서 공부시키겠다는 부모가 늘고 있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미국 고등학교는 GPA(내신성적)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래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미국 학생보다 2~3배 노력을 해야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의 일부 고등학교가 A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점수를 낮추는 편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의 70점이 A학점으로 둔갑해 미국 대학에 제출되는 것이다.

‘단기 유학’은 리스크가 적은 데다 성공 확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최근 인기를 끄는 ‘관리형 단기 유학’은 유학원이 학생들을 관리하면서 귀국 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 공부를 가르치는 시스템. 하지만 문제는 일부 유학원의 허술한 프로그램 운영과 상술로 피해를 본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 연수’가 새로운 유학 트렌드

미국 동부에서 학교를 1년 동안 다닌 뒤 8월에 귀국한 송수연(15·가명) 양은 한국인 교포가 운영하는 관리형 기숙사에서 10명의 한국 학생과 함께 생활했다. 유학원은 출국 전 ‘현지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한국 교과목도 마스터할 수 있다’고 선전했으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명문대 출신 수학강사, 영어강사가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는데, 딸아이 얘기를 들어보면 강의 내용이 형편없었어요. 기숙사라는 것도 알고 보니 가정집을 빌려 한국 아이들을 단체로 합숙시키는 거더군요. 영어는 조금 늘었지만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았어요.”(송 양의 아버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 초·중학생 자녀를 혼자 1~3년간 단기연수를 보내는 관리형 유학은 다(多)문화를 경험하고 기러기 형태의 유학보다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미성숙한 학생들이 정서적 불안과 스트레스에 직면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다.

“관리형 유학은 어떤 유학 업체를 고르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선행학습 운운하며 과장 광고를 하는 곳보다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노하우를 쌓은 검증된 업체를 선택해야 합니다.”(토피아아이비클럽 박종석 이사장)

지금도 상당수의 부모가 생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외국 교육기관에 자식농사를 맡기고 있다. 그 부작용이 적지 않음에도 조기유학 열풍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조기유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조기유학은 자녀의 미래를 담보로 한 ‘과감한 투자’다. 정작 문제는 바다 건너를 몰라도 너무 모르면서 ‘묻지마 소비’에 나선 부모가 많다는 점이다.

가디언 유학원 구별법

18세 미만 학생 법적 보호자 … 선택 전 현장 답사는 필수


부모 욕심 ‘묻지마 조기유학’ 씻기 힘든 상처 남길라

학교생활에 대해 조언을 듣고 있는 한 조기유학생.

“‘나 홀로 유학’은 가디언과 홈스테이가 성패를 결정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가디언으로 일하는 K씨)

가디언이란 미국, 캐나다 등에 만 18세 미만 학생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 유학 올 경우 의무적으로 지정하게 돼 있는 법적 보호자다. 홈스테이를 알선하는 등 초기 정착을 돕고,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학부모 자격으로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가디언의 일반적 임무다.

가디언은 역할 범위에 따라 지불 비용도 다르다. 유학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명의만 빌려주는 ‘서류상 가디언’도 있다.

가디언은 캐나다 교민사회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학생 한 명을 관리하는 데 보통 1년간 5000캐나다달러(CAD, 약 430만원)를 받는다. 일부 교민은 아예 가디언을 직업으로 삼고 수십 명의 한국 조기유학생을 관리하고 있다. 많은 학생을 관리하는 가디언에게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 가디언은 학생 1명당 월 500CAD씩 받으면서 24명을 동시에 관리하기도 했어요. 부모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죠”(K씨)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학교가 가디언에게 커미션을 받고 학생을 유치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일부 가디언의 비양심적 행위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부모의 현장 답사는 필수다. “부모 같은 마음으로 돌봐주겠다”면서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사람보다는 역할과 책임 한계를 정확히 설명해주는 가디언을 선택하는 게 좋다.

홈스테이를 고를 때도 가디언이나 유학원에 일임하기보다는 직접 홈스테이 가정을 방문해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홈스테이는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생계형보다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다(多)문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외국 학생을 받는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유학원이 제공하는 ‘관리형 서비스’에 대한 환상도 위험하다. 주먹구구식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다년간 학생을 송출하면서 노하우를 쌓은 검증된 유학원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그 유학원을 통해 공부하는 학생이나 부모를 2명 이상 소개해달라고 요구하도록 한다.

현지의 군소 유학원과 한국의 업체가 제휴를 맺고 사업을 벌이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 현지 업체가 유학원의 ‘지사’인지 ‘파트너‘인지를 따져보라는 얘기다. 그리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에서 어떻게 영어 실력을 유지하고 한국 공부에 적응할 것인지에 대해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를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간동아 558호 (p22~25)

밴쿠버·로스앤젤레스=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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