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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은 신약 개발 보고

세계 곳곳서 해양천연물 이용한 연구 활발 … 서울대도 2년간 신물질 500여 개 개발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바다 속은 신약 개발 보고

바다 속은 신약 개발 보고
2005년 3월 획기적인 ‘살찌지 않는 약물’이 개발돼 화제를 모았다. 지방을 분해할 뿐만 아니라 속근을 지근으로 바꿔 지구력을 높이는 ‘PPAR 델타’ 단백질을 활성화하는 새로운 물질이 개발된 것. 연구진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고지방 음식물만 먹인 쥐는 몸무게가 53% 늘어났지만, 이 약물과 함께 고지방 음식물을 먹인 쥐는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로써 새로운 비만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이 열렸다.

이 약물을 개발한 서울대 해양천연물신약연구단(www.cmdd.re.kr, 단장 강헌중 교수)은 약물의 ‘재료’를 바다 속에서 구했다. 정확한 위치는 ‘보안상’ 비밀이지만 남해의 어느 지점에서 채취한 해면(海綿)에서 특정 물질을 분리, 단백질 결합구조를 분석한 뒤 좀더 변형시킴으로써 이 약물을 개발한 것이다.

해양천연물이 신약 개발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복용하는 많은 약은 식물이나 흙 속에 사는 미생물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육상천연물은 신약 개발 물질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오랜 기간의 연구로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의 95%가 이미 알려진 물질이어서 특허를 획득해 높은 수익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진국들 해양천연물 신약 3종 개발

하지만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약 80%가 바다에 살고 있고, 이 중 1% 미만이 이용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과학자들의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 바다 생물은 ‘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공기에 둘러싸인 육지 생물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는다. 그만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물질 개발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으로 해양천연물 채취가 쉬워졌다. 요즘에는 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지 않고도 수천 미터 아래에 있는 흙을 담아 올릴 수 있다. 기계를 바닷물에 퐁당 빠뜨리면 스스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흙을 채취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바다 속은 신약 개발 보고

해양천연물 채집에 나선 해양천연물신약연구단 소속 연구원.

해양천연물을 이용한 신약 개발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2005년 말 기준으로 현재 시판되고 있는 해양천연물 신약은 항암제, 항바이러스제, 진통제 3종이며 신약 허가를 기다리는 항암제1종, 임상시험 중인 약물 11종, 전임상시험 중인 약물 16종 등이 있다.

미국 유타대학 올리버 교수에 의해 개발된 ‘프리알트(Prialt)’는 모르핀조차 듣지 않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 쓰는 강력한 효과의 진통제. 지난해 시판되기 시작했는데, 시판 6개월 만에 6000만 달러(약 567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이 이 신약의 유럽 판권을 사들이면서 지불한 금액만 해도 1억 달러(약 945억원)다. 이 신약의 재료가 된 것은 바다달팽이의 일종인 청자고둥의 독(毒)이다.

해수부, 10년간 1000억원 지원 계획

우리나라도 신약 개발을 위한 해양천연물 연구에 나섰다. 해양수산부는 ‘마린바이오21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 10월부터 서울대 해양천연물신약연구단을 지원하고 있다. 2013년까지 10년 동안 1000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연구단은 해양천연물로 대사성 질환, 면역·퇴행성 질환, 감염 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 2013년까지 전임상시험을 통과한 신약 물질 8개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연구단에는 모두 10개 대학, 20명의 교수와 150여 명의 석·박사 인력이 참여하고 있다. 해양생물학, 해양천연물화학, 유기합성, 면역학, 독성학, 약학, 의학 등 바다에서 해양천연물을 채취해 신약을 개발하기까지 필요한 전문인력이 유기적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부교수인 강헌중 단장은 “2004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서른 번 정도 현장에 나갔다”고 했다. 강 단장을 비롯해 군산·부경·부산대의 해양생물 연구원들은 배를 빌려 타고 영해 경계선 가까이까지 나가 직접 바다 속 40m 아래로 잠수, 해양생물을 채집한다. 채집 대상은 다양하다. 해조류, 해면, 산호, 불가사리, 우렁쉥이, 갯민숭달팽이, 성게, 해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연구단은 2년 동안 해양천연물로부터 500여 가지의 새로운 물질을 개발했다. 모두 38건의 국내외 특허를 출원 또는 등록했으며, 28건의 국내외 논문을 발표했다. 2007년에는 신약 개발을 위한 전임상시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표선수’로 골라놓은 것은 당뇨와 동맥경화, 고혈압 치료물질이다.

또한 연구단은 2007년부터 미국 측 연구자들과 함께 전 세계 해양을 대상으로 바다 속 수천 미터 아래에 있는 흙 속 미생물의 샘플을 채취, 연구할 계획이다. 강 단장은 “1cc의 물에 100만 개의 박테리아가 있다면 바다 진흙 속에는 10억 개의 박테리아가 있다”며 해양천연물의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특히 의약품 분야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2005년도 100대 처방약 중 단 2개만이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으로 전체 약값의 3%에 지나지 않는다는 최근 보도는 우리나라의 ‘해외 의약품 의존도’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처방약 시장의 규모가 500조원에 달한다는 점도 신약 개발의 ‘국가적’ 필요성을 고무시킨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의 나라. 전 세계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명함을 달고 팔리는 최초의 신약은 바다에서 나오게 될까. 미래가 궁금하다.



주간동아 558호 (p46~47)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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