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임신 증거 전혀 없어 미궁에 빠질 뻔”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 담당 천현길 강력계장 “‘3년 전에 출산’ 엽기적 상상이 수사 실마리”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임신 증거 전혀 없어 미궁에 빠질 뻔”

“임신 증거 전혀 없어 미궁에 빠질 뻔”

방배서 천현길 강력계장.

10월11일 베로니크 쿠르조(39)가 마침내 프랑스 경찰에 검거됐다. 그는 1999년 프랑스에서, 2002년과 2003년 한국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각각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지난 여름 내내 쿠르조 부부는 한국 경찰의 수사 결과를 부인해왔지만, 베로니크의 자백으로 한국 경찰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프랑스 언론들은 “그동안 우리가 한국의 수사 결과에 의혹을 가졌다”며 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10월17일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 수사의 중심에 섰던 방배경찰서 강력계 천현길 계장을 만나 수사 뒷이야기를 들었다. 천 계장은 경찰대 13기로 1997년 경찰에 입문, 99년부터 수사경찰관으로 일해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경찰은 베로니크가 진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고 하는데….

“침입 흔적이 전혀 없었고, 육안으로 볼 때 죽은 영아들은 백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경찰들에겐 ‘감(感)’이라는 게 있습니다.(웃음)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베로니크의 친자식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간호장교 출신 아내 조언 듣고 발상 전환”



하지만 경찰은 곧 난관에 부딪혔다. 사건 발생 5일 후 베로니크가 2003년 11월에 자궁 적출수술을 받았다는 병원 기록을 찾은 것. 즉, 베로니크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다. 서초구를 비롯해 강남구, 동작구에 있는 모든 산부인과 병원을 뒤졌지만 베로니크가 진료를 받은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천 계장에게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준 사람은 간호장교 출신인 그의 아내.

“자정 넘어 귀가해서도 항상 아내와 수사 회의를 했습니다. 베로니크는 급성패혈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두 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내는 급성패혈증은 염증 때문에 생기는데, 염증은 유산이나 출산에 의해 유발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까지 설명을 듣자 ‘영아들이 태어난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나도 엽기적인 ‘상상’이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장 루이 쿠르조가 공범일까.

“우리는 남편은 아내의 범행을 몰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했습니다. 그가 경찰에 신고한 7월23일부터 사흘 후 프랑스로 출국할 때까지 저희와 거의 함께 지냈는데, 그의 태도에서 ‘고난도 연기’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손가락을 벌벌 떨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많이 놀란 듯했습니다. 그날 바로 유전자 채취를 요청했는데 망설이지 않고 선뜻 응했습니다.”

경찰은 베로니크가 임신한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를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회사 동료들, 쿠르조 부부와 친하게 지낸 프랑스인 P 씨 부부, 필리핀 가정부 등을 직접 조사하고 서래마을 프랑스인들을 탐문 조사했지만, 어느 누구도 베로니크가 임신한 모습을 본 적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두 번이나 출산했다면 반드시 목격자가 있지 않을까.

“아무도 몰랐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쿠르조 집에서 압수 수색한 컴퓨터에서 가족 사진이 수백 장 나왔는데, 임신 상태로 보이는 베로니크의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습니다. 마지막 출산 시점으로 추정되는 2003년 10~11월경 사진도 있었는데, 임신한 모습은 아닌 걸로 보였습니다. 그냥 ‘뚱뚱한 아줌마’ 정도의 모습이었죠. 여자 몸무게가 70kg이 넘으면 임신해도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쿠르조 부부의 사이는 어떠했던 것으로 보이나.

“탐문수사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았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좋지 않았다’고 하는 등 일관된 진술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2002년부터 친한 이웃으로 지내온 P 씨 부부도 ‘부부 사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P 씨 부부는 8월 프랑스에서 쿠르조 부부를 만난 것으로 아는데….

“8월 말 P 씨 부부가 귀국해 조사를 받았는데, 쿠르조 부부는 이들에게 자신들은 영아들의 부모가 아니며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들도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2002년과 2003년에 출산했다면, 지난해 새집으로 이사했을 때 영아들의 시신도 옮겨왔다는 말이 된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상식의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는 사건입니다.(웃음) 영아들이 무거운 것도 아니고, 이사 거리가 먼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방에 넣어 옮기기가 매우 수월한 조건이었죠. 전에 살던 빌라도 확인했는데, 그 집에도 베란다에 냉동고가 있었습니다. 주로 식당에서 쓰는 커다란 철제 냉동고였습니다.”(서래마을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대부분 집 안에 가구가 갖춰져 있다.)

현재 영아들의 시신은 국과수에서 보관하고 있다. 변사체는 일반 병원 시신보관실에 맡겨놓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다. 그러나 냉동이 아닌 냉장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부패할 수밖에 없다. 사건이 장기화하면서 시신이 썩을 우려가 있자 경찰은 70만원짜리 냉동고를 구입해 그 안에 영아들을 넣은 뒤 국과수에서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천 계장은 “훗날 프랑스에서 시신 양도를 요청했을 때 부패된 상태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렇게 했다”며 “얼마 후 프랑스 대사관에서 ‘나중을 대비해 시신을 잘 보관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잘 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베로니크가 구속됐다. 소감은?

“형사 입장에서는 우리 손으로 수갑을 채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잘 마무리되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그 덕분에 긴장을 잃지 않고 수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천 계장 또한 두 아이의 아버지다. 9월에 태어난 둘째의 탯줄을 직접 자를 때 웅크린 채 숨진 프랑스 영아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한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영아들이 무척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 아이들의 발을 만져주며 ‘너희 원한은 내가 풀어줄 테니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었다”며 소회에 찬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식 살해 범죄 왜 일어날까

생활고 비관·정신적 문제가 주원인


“임신 증거 전혀 없어 미궁에 빠질 뻔”

2003년 12월 두 자녀를 한강에 내던진 남성이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어떻게 자신이 낳은 자식을 죽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의 범인으로 베로니크 쿠르조가 지목되자 이 같은 놀라움 섞인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모의 자식 살해는 인류 역사상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범죄학계에서는 ‘어린이 살해자의 4분의 3은 부모’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주요 자식 살해 사건을 보자. ‘자신의 애인을 싫어하는 딸을 독극물 먹여 숨지게 한 여성 검거’(2005년 11월), ‘계모가 남편의 전처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해’(2006년 4월), ‘공중화장실에서 불륜으로 가진 아이를 낳은 30대 여성 검거’(2006년 7월) 등 10여 건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부모는 왜 자식을 살해할까? 살인 행위를 ‘문제 해결을 위한 심리적 기제 중 하나’로 보는 진화심리학에서는 부모의 자식 살해 이유를 크게 5가지로 본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결혼 상태에 있지 않아 안정적인 보육이 불가능할 때 △자식이 아프거나 장애를 안고 있을 때 △이미 자식이 많아 새로운 아이에게 투자하는 것이 다른 자식들을 키우는 데 너무 부담이 될 때 △친자식이 아닐 때 △새로운 배우자를 찾는 데 아이가 방해가 될 때 등이다. 위에서 열거한 사례들은 이러한 이유들에 부합된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식 살해의 원인이 앞으로 더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6월 아들을 죽여 상자 속에 넣은 뒤 집 안에서 보관해온 20대 부부가 검거된 사건이나 서래마을 사건의 경우 위의 이유에서 범죄 동기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베로니크 쿠르조처럼 부모가 자녀를 연쇄적으로 살해한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고된 바가 거의 없다. 서래마을 사건과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연쇄적인 자식 살해 사건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매리 노(Marie Noe) 사건이다. 매리 노는 1949년부터 68년까지 19년 동안 8명의 자녀를 ‘유아돌연사망증후군’을 가장해 질식사 시켰다는 혐의로 99년에 검거됐다. 살해된 자녀들은 생후 13일에서 14개월에 불과했다. 그는 검거 후에도 범행 이유에 대해 함구해 현재 미국에서는 그의 살해동기와 범죄심리 등에 대해 연구 중이다.

국내의 범죄 전문가들은 베로니크가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연쇄적으로 자녀 살해를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경계성 인격장애’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우울증으로 인한 범죄라면 죄책감을 느꼈을 텐데 연달아 살해했다는 점에서 만성우울증으로 보기 어려우며, 아무나 자기 목적대로 이용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정신병질자)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경계성 인격장애는 평소에는 극단적인 성격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다”며 “임신과 출산에 대해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느껴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기간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한 점은 달리 처리할 방법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일말의 자책감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558호 (p38~40)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93

제 1293호

2021.06.11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