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6

2006.10.17

한국 미술계 앤디 워홀에 흠뻑 빠지다

150억대 ‘오렌지빛 마릴린’ 나들이 이어 내년 초까지 전시회 잇따라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10-16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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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미술계 앤디 워홀에 흠뻑 빠지다

    ‘마흔다섯 개의 금빛 마릴린’, 1979, 캔버스에 실크스크린. 삼성 리움미술관이 소장품으로 공개 중인 대작(205×307cm)이다.

    1987년, 미국인 화상 리처드 폴스키는 자신의 화랑에서 ‘앤디 워홀 소품전 : 1962~1982’을 연다. 전시 직전 그는 “앤디 워홀이 죽었으니, 당장 작품 가격을 세 배로 올려놓으라”는 동료들의 축하(?) 전화를 받고 넋을 잃는다.

    폴스키는 이때부터 2002년까지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해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오간다. 이때의 ‘피 말리는’ 경험담이 최근 번역돼 나온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앤디 워홀을 손안에 넣기 위해 저자가 접촉한 화상, 딜러, 컬렉터, 그리고 관련 전시와 경매가 세계 현대미술 시장의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앤디 워홀은 가장 미국적이고, 따라서 가장 현대적이었던 개념의 미술을 통해 유럽에 태생적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미국 예술계를 단번에 구원한 스타였다. 앤디 워홀이 58세의 젊은 나이에 수술 합병증으로 갑자기 죽은 지 20년이 됐지만 미국은 물론, 유럽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작가들에게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막대하다.

    쌈지길 전시는 축제 형식으로 진행

    한국 미술계 앤디 워홀에 흠뻑 빠지다

    은색 가발에 터틀넥 스웨터, 큰 안경은 앤디 워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중국 작가 중 한 명인 왕광이는 “문화혁명과 앤디 워홀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 미술계의 주류가 된 ‘코리안 팝’ 작품들 중에도 ‘민망할 정도로 워홀스러운’ 것이 많다. 민중미술이 쇠퇴한 90년대 중반 이후 젊은 작가들과 대중 사이에서 앤디 워홀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진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 미술관 정형민 관장은 “아직도 앤디 워홀의 수프캔처럼 우유팩을 따라 그리는 학생들이 있다. 앤디 워홀은 현대미술의 클래식”이라고 말한다.



    앤디 워홀이 일러스트레이터·영화배우·감독 등 상업적인 분야에서 활동한 것, 신비스런 느낌을 가진 당대 다른 작가들에 반발해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 부르며 사람들을 고용해 미술작품을 ‘생산’한 것 등 그의 예술적 태도 자체가 현대미술 작가들의 ‘모델’이다. 젊은 작가 중 자신의 활동을 ‘앤디 워홀이 그랬듯이’라고 설명하는 이도 적지 않다. 목적과 고민이 다른 한국의 여러 미술 기획자들이 앤디 워홀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자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국 미술계 앤디 워홀에 흠뻑 빠지다

    1.‘오렌지빛 마릴린’, 1962, 캔버스에 실크스크린. 크리스티 코리아 공개.<br>

    가장 먼저 앤디 워홀을 소개한 곳은 경매회사인 한국 크리스티다. 9월 한국 크리스티는 대표작 ‘오렌지빛 마릴린’(경매 추정가 150억원)과 ‘골드 재키’ ‘꽃’ 등을 쇼케이스 형식으로 공개했다.

    “11월 중순 미국에서 열리는 경매를 앞두고 한국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주요 작품들이 늘 홍콩과 일본까지만 순회하고 돌아갔는데, 처음으로 앤디 워홀이 서울까지 오게 된 거죠. 컬렉터뿐 아니라 ‘오렌지빛 마릴린’을 보려는 일반인들이 많네요.”(배혜정, 한국 크리스티 대표)

    이어 10월25일부터 내년 1월25일까지 서울 인사동 쌈지길 전관에서는 ‘Wake up Andy Warhol’전이 열린다.

    “비슷비슷한 ‘코리안 팝’전이 계속 열리면서 오히려 정체된 듯한 분위기를 앤디 워홀로 정면 돌파해보자는 취지예요. 아크릴과 판화, 사진과 아트상품 등 앤디 워홀이 사용한 모든 매체를 통해 그의 아이디어를 보여주게 될 겁니다.”(양옥금, 쌈지길 큐레이터)

    한국 미술계 앤디 워홀에 흠뻑 빠지다

    ‘빨간 구두’, 1955, 종이에 오프셋인쇄.앤디 워홀이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의 일러스트레이션.

    쌈지길 전시는 일종의 앤디 워홀 축제가 될 듯하다. 앤디 워홀이 생전에 자신과 똑같이 분장한 ‘가짜’를 대학 강의에 내보냈던 에피소드에 착안, 10명의 앤디 워홀이 전시장에 나타나고 홍순명, 이순주, 김을 같은 한국 작가들이 앤디 워홀 컨셉트의 작품을 내놓는다. 또 모회사인 쌈지가 ‘앤디 워홀 라인’ 패션을 런칭할 예정이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12월1일~2007년 1월31일까지 열리는 앤디 워홀전은 화려한 앤디 워홀의 이면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교육적’ 기획이다. 뉴욕시립대학과 대학 교류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신발 일러스트레이션과 ‘전기의자’ 판화, 영화 등 65점이 공개된다.

    리움 ‘앤디 워홀’전은 최대의 블록버스터

    “워홀이 스타 이미지가 강해 그의 삶에 늘 존재했던 어두운 면이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상업 디자이너로서의 활동, 총격 사건 등을 통해 그의 삶과 시대를 입체적으로 짜맞춰 본다면 ‘팝아트’의 존재 이유, ‘코리안 팝’의 문제점 등에 대한 해답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정신영, 서울대 미술관 큐레이터)

    2007년 최대의 블록버스터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시도 ‘앤디 워홀’이다. 3월 초 삼성의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앤디 워홀’전은 워홀이 죽은 뒤 고향에 설립된 피츠버그 미술관이 기획한 전시를 가져오는 것. 피츠버그 미술관은 유명한 초상화들-워홀이 주문 생산했었다-과 헬륨을 넣은 풍선들인 ‘은색 구름’, 워홀이 생전에 온갖 사소한 것들을 담아 만든 ‘타임캡슐’ 등 대표작들을 다량으로 소장한 곳이어서 놓치기 아까운 전시가 될 듯하다.

    앤디 워홀이 현대미술계의 스타가 된 것은 당시 미국 대중문화에 편승했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소비 자본주의의 병리적 증후군과 예술 지상주의와 대담하게 맞섰다. 그 역시 화상들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착취당했고, 그림이 신문에 난 사진과 똑같다며 환불 요구를 받기도 했으며, 마스 로스코 같은 추상주의 작가에게 노골적으로 경멸당했다. 잇따라 열리는 앤디 워홀전이 소재주의에 빠진 듯한 ‘코리안 팝’에 어떤 시사를 던진다면, 이는 ‘마릴린’이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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