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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화가 故 박항섭을 아십니까

9월12~24일까지 추모展…한국 설화적 심성 탁월한 표현, 불꽃같은 예술혼 재발견 기회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표현주의 화가 故 박항섭을 아십니까

표현주의 화가 故 박항섭을 아십니까

거구를 돋보이게 했던 오렌지색 스웨터와 파이프 담배는 작가 박항섭의 트레이드마크였다(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9월10일까지 열린 ‘한국미술 100년’전에서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전후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소개된 박항섭(1923~1979)의 ‘추모전’이 9월12~24일 갤러리현대 두가헌 갤러리에서 열린다.

박항섭은 서양화가였지만, 고구려 벽화(그는 북에 고향을 둔 월남작가다) 같은 색과 인물들의 포즈, 풍부한 이야기 구조 등으로 한국의 ‘설화’적 심성을 탁월하게 표현한 작가로 평가된다.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수학한 뒤 ‘생활미술’이라는 책을 내는 등 고향에서 미술 창작과 교육에 힘쓰던 박항섭은 1·4후퇴 때 부인과 함께 남하했다. 가족을 북에 두고 온 죄책감과 향수는 그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관통한다. 그래서 그의 여러 회화에는 북방의 고분 같은 색과 마티에르, 그리움 및 속죄의 눈빛이 담겨 있다.

죄책감과 향수가 그림세계 관통

‘언제나 남보다 한 뼘쯤 높이 선’ 거구인 덕에 외모에서부터 신화적인 풍모(이석우,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로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던 그는 장욱진, 권옥연 등과 함께 ‘국전 전성 시대’(이경성, ‘내가 그린 점 하늘끝에 갔을까’)의 대표 화가로 떠올랐다.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아 추상이 한국 미술계의 주류가 됐을 때도 그는 구상을 포기하지 않고 ‘구상전’(1967년)을 조직, 한국적 표현주의로 부를 만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물고기나 새 같은 토속적 소재들 외에 서커스나 마술사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원형적인 삶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는데, ‘구상전’ 조직 이후엔 검고 가는 윤곽선으로 화면 구성에 주력했다. 한편으로 추상 회화의 특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서사성이 강해졌다는 점은 그가 한국적 회화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표현주의 화가 故 박항섭을 아십니까

얼굴, 1975. 박항섭의 독특한 인물 표정이 잘 드러난 작품.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다기보다 벽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좌).정, 1975.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인물이 드로잉 같은 검은 선으로 표현돼 있다. 거칠지만 영원한 인상을 준다(우).

그 시기 예술가들이 종종 그러했듯 그는 예술에 살고, 예술에 사는 낭만주의자이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에게 종교는 그림이었다. 예술인이 생활인이 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스스로 미술 교사직을 그만두었으며, 예술가들이 속이지 않아야 할 것을 속이고 팔지 않아도 되는 것을 파는 일에 대해 ‘창녀적’이라는 말로 비판했다.

두 개의 전시를 앞두고 쉴 새 없이 작업에 몰두하던 1979년 그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4일 만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생전에 지인들에게 맏형 같은 정을 듬뿍 나누어주었던 그의 장례식은 한국 화단 최초의 ‘화우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작품은 생명력과 한국적 표현 방식을 가졌음에도 1979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10주기 추모전 이후 현대미술계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유달리 애정이 깊었던 부인 이효애 여사가 유작들을 상업 화랑들에 내놓지 않는 바람에 공개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열리는 전시는 이 씨가 남편의 뒤를 따르자 유족과 지인들이 20주기를 갖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기획한 뒤늦은 추모전이다. 이번 전시가 한국적 표현화가로서 박항섭에 대한 재발견의 기회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을 바라는 듯, 금촌 기독교 공원묘지의 언덕에 서 있는 박항섭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내 넉넉한 손으로 그려낸 사과와 물고기 / 싱싱하게 살아나 / 뭍과 바다에 음악으로 넘쳐라.’



주간동아 553호 (p54~5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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