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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억 현상금 슈크리주마 어디 숨었나

9·11 테러 가담한 미국 시민권자 … FBI 3년 추적했지만 그림자도 못 찾아

  • 전원경 작가 winniejeon@yahoo.co.kr

48억 현상금 슈크리주마 어디 숨었나

48억 현상금 슈크리주마 어디 숨었나
9월11일은 2001년 미국 뉴욕에서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난 지 5주년 되는 날이다. 2000명이 넘는 무고한 인명이 희생된 전대미문의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 선언은 이라크전으로 이어져 9·11 테러 희생자 이상의 희생을 낳는 비극의 악순환을 불러왔다. ‘9·11 5주년’을 맞아서 쏟아져 나온 미국 언론의 특집기사들 역시 이 비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그 와중에 ‘LA 타임스’에 실린 한 특집기사는 9·11 테러에 깊숙이 관련된, 그러나 아직도 행방이 오리무중인 한 알 카에다 요원의 비화를 다뤄 눈길을 끈다. ‘아드난 굴샤르 무함마드 엘 슈크리주마’라는 긴 이름의 이 요원은 FBI(미국 연방수사국)가 3년 전부터 ‘남아메리카인’라는 암호명으로 쫓고 있는 인물.

그러나 그는 3년째 FBI의 집중적인 추적을 따돌리고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최근에는 미국을 떠나 파키스탄 서북부의 산악지대인 와지리스탄에 숨어 있다는 소식이 들릴 뿐이다.

9·11 때 알 카에다 요원들에게 컴퓨터로 지령

왜 FBI는 올해 31세인 이 무슬림 청년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알 카에다 요원들과 달리 슈크리주마는 미국 시민권자인 데다가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다. 가난하고 학벌도 없으며 불법 체류자인 여타 알 카에다 요원들과는 달리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인 셈. 9·11 테러 당시 그가 맡은 소임은 사우스 플로리다에서 자살 테러에 나선 19명의 알 카에다 요원들에게 컴퓨터로 지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테러리스트 19명 중 15명은 테러 직전 슈크리주마의 집이 있는 사우스 플로리다에 모여서 최후 회합을 하기도 했다.



브로워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화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슈크리주마는 컴퓨터 테크니션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컴퓨터 전문가다. FBI는 젊고 엘리트인 데다 미국의 언어와 관습에 익숙한 슈크리주마가 앞으로 제2, 제3의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슈크리주마는 1975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일설에 의하면 가이아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셰이크 굴샤르 엘 슈크리주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이아나에 파견한 이슬람 전도사였다. 가이아나에서 일하던 셰이크는 1993년에 터진 1차 세계무역센터 테러와 연관이 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다. 이 테러로 인해 종신형을 선고받은 아브델 라흐만이라는 이집트인이 셰이크의 이름을 댔던 것이다.

그러자 셰이크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공무원 직위도 사퇴해버렸다. 1995년, 셰이크는 아내와 여섯 아이들을 데리고 사우스 플로리다로 이민을 떠났다. 플로리다에서 셰이크는 작은 이슬람교 모임을 이끄는 평범한 이민자로 살아가다가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셰이크의 여섯 아이 중 장남이 바로 아드난 슈크리주마다.

아드난 슈크리주마는 천식 때문에 늘 집 안에만 머물던 아이였다. 그는 지역의 커뮤니티 칼리지(초급대학)를 다니던 1999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왔다고 한다. 까다롭고 이기적이던 슈크리주마는 중동에 다녀온 직후 부쩍 성숙한 분위기로 변했고 말이 없어졌다. 그는 자신이 중동에서 무슨 일을 하며 머물렀는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테러 후 잠적, FBI는 2003년에야 연루 확인

FBI는 2001년 초, 슈크리주마를 테러 혐의자 명단에 잠깐 올려놓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가 터진 후에도 FBI는 이 조용한 컴퓨터 테크니션과 알 카에다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

FBI가 슈크리주마가 문제의 고정간첩 ‘남아메리카인’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9·11테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2003년이 되어서였다. 관타나모 형무소에 수감된 테러 혐의자들이 “알 카에다가 미국 내에 1급 요원을 잠입시켰고, 그가 9·11 테러를 지휘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요원은 ‘미국 이민 2세 무슬림’이며, 미국 언어와 관습에 능통해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 ‘자파 알 타이야르’라는 가명을 쓴다고 했다.

2003년 3월 초, 파키스탄에서 무함마드라는 알 카에다 핵심인물이 체포되었다. 그의 컴퓨터와 통신기록은 알 카에다가 미국 내에 있는 ‘서구화된 요원’과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았음을 알려주었다. 무함마드의 소지품 중에는 이 요원의 사진도 한 장 있었다. 사진 속의 인물이 바로 슈크리주마였다.

2003년 3월20일(공교롭게도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폭격을 시작한 날이다), 50명이 넘는 FBI 요원들과 기자, 방송 카메라들이 사우스 플로리다에 있는 슈크리주마의 집을 덮쳤다. 그러나 집에 있는 사람은 슈크리주마의 어머니 아메드뿐이었다. 아메드는 아들이 집을 나간 지 2년이 넘었으며, 9·11 테러 이후 딱 한 번 전화를 걸어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FBI는 9·11 당시 자살테러의 주범이던 무함마드의 사진을 내밀며 “아들 친구들 중에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메드는 “기억이 희미하다”며 아들이 평소 “나이트클럽에도 한번 가본 일이 없는 착한 아이였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FBI는 슈크리주마가 현재 파키스탄의 와지리스탄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한다. 오사마 빈 라덴도 은신해 있는 이 지역에서 ‘미국인’ 슈크리주마는 알 카에다 최고 수뇌부의 한 사람으로 활동 중이라는 것이다. FBI에 체포된 알 카에다 요원들에 따르면, 슈크리주마가 계획하고 있는 미래의 테러 작전 중에는 미국 대도시 아파트에 폭탄을 장치하거나 나이트 클럽에 독극물을 무차별 살포하는 작전, 또는 뉴욕 증권거래소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작전 등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FBI는 파키스탄 일대에 ‘슈크리주마를 잡은 사람에게 500만 달러(약 48억원)의 현상금을 지급한다’는 글귀와 슈크리주마의 사진을 실은 성냥갑을 배포하기까지 했다. FBI 특별요원 앤드루 렌첸은 “지난 3년 동안 슈크리주마를 쫓으면서 그에 대한 꿈도 수없이 꿨다”며 “나 자신은 슈크리주마의 엄마 못지않게 그에 대해 샅샅이 알고 있는데, 정작 그의 모습은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지경”이라며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주간동아 553호 (p44~45)

전원경 작가 winniejeo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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