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4

2006.07.18

분절된 이미지들의 연속성

  • 김준기 미술비평가

    입력2006-07-14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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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절된 이미지들의 연속성
    펜이나 연필, 붓 등 비교적 단순한 도구로 그은 선으로 한 화면 내에서 시각적 재현체계를 완성하는 행위를 일컬어 드로잉이라고 한다. 페인팅이나 조각을 완성하기 위한 습작을 ‘에스키스’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드로잉은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다.

    성민화는 그림을 그린다. 조소를 전공했으며, 설치작업을 해오던 그가 언젠가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은 드로잉으로 불린다. 성민화는 드로잉을 가지고 자기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두텁게 덧칠한 물감 덩어리의 유화나 견고한 물질 덩어리를 제시하는 조각, 형태와 색채로 가득한 사진 이미지들에 비해 가볍고 말랑말랑한 선묘만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미덕이다.

    1층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바닥의 정미소 전시장 바로 위에 10m 길이의 동네 풍경을 내걸었다. 관객은 벽에 걸린 이미지와 바닥에 비친 이미지를 동시에 들여다본다. 1m 높이의 원본 풍경을 디지털 프린트로 확대해 1층과 2층에 걸쳐서 보여주기도 한다. 하늘색 계통으로 색을 바꾼 풍경도 있고, 흰색과 회색 두 가지 색이 교차하는 80여 장의 작은 이미지로 분절된 긴 그림도 있다.

    성민화는 베를린에 사는 작가다. 그는 자신이 머무르는 곳을 중심으로 그 안과 밖을 그린다. 그는 작가가 중심인 작업으로부터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는 작업으로 전환했다. 그는 풍경을 그리는 데 있어서 적극적인 의미의 사건을 배제한다. 다만 사건이 지배하는 공간으로서의 장면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위와 사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식의 그림 그리기는 그가 미뤄둔 사항이다. 입체 설치작업을 하던 시절부터 그는 행위의 결과를 드러내기보다는 관객이 개입하고 참여하는 장치들을 제공하곤 했다. 관객이 체험과 행위를 보탬으로써 그의 작품을 완결하고자 했던 예의 태도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공간을 지배하는 행위자의 이미지를 담는 대신 행위 공간인 무대만을 제시한다. 텅 빈 공간을 제시하고 있는 성 작가의 평면무대 위에서 관객은 눈으로 행위를 보탠다.

    성민화의 화면은 필연적으로 분절과 부재의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 단일한 시각체계로 포섭할 수 없는 분절된 이미지들의 연쇄인 그의 그림은 행위자 없이 비어 있는 공간과 시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7월23일까지, 갤러리 정미소, 02-743-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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