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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 입고 독서삼매경 빠져볼까

휴가 때 읽을 만한 책 10選 … 공포·기행·영화 등 입맛 따라 골라골라!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수영복 입고 독서삼매경 빠져볼까

수영복 입고 독서삼매경 빠져볼까
1년 전 이 무렵, 러시아연방의 알타이공화국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헬기 안에서 한여름인데도 군데군데 허연 얼음이 박혀 있는 고도 3600m의 벨루하산을 내려다보며 오싹함과 짜릿함을 번갈아 체험했다.

헬기를 관광버스처럼 타고 내린 이 전대미문의 알타이 여행에 동반한 책은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 (들녘)였다. 책을 주제로 한 팬터지 소설이라는 게 눈길을 끌어 사다 놓았지만 막상 독서 순위에서 함참 밀려 있어, 휴가기간이 아니면 읽을 기회가 없겠다 싶었다. 사드커버에 2권짜리라는 점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일단 여행가방에 찔러넣았다. 그런데 이 녀석 덕분에 지루한 헬기 여행이 한결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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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를 처음 탈 때는 비행기를 처음 타본 아이들처럼 환호성을 질렀지만 딱 5분이 지나자 모두 할 말을 잊고 멀뚱멀뚱해졌다. 헬기의 소음은 예상보다 훨씬 커서 옆 사람과 얘기를 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고,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귀마개를 해야했다. 불편한 좌석 때문에 잠시 눈을 부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헬기는 버스와 달리 진동이 없었다. 헬기 바닥의 짐들 사이에 몸을 끼우고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빠져들었다. 1년 만에 그 책을 다시 펼치니 발터 뫼르스가 직접 그렸다는 기이한 삽화들 사이로 차간부르가즈이 강가 언덕을 오를 떄 따라서 책 사이에 끼워둔 말린 에델바이스가 나왔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함께 지난 여름이 오롯이 떠올랐다.

올해는 바이칼호 탐사와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이 예정돼 있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는 어떤 녀석으로 할까 몇 번씩 책장을 훑어보며 책들과 눈을 마주친다.

”얘들아, 다 데려가고 싶지만 많아야 두세 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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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애완동물 공동묘지|스티븐 킹 (황금가지, 전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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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 비행기는 탑승 전 대기시간이 고역이다. 게다가 쇼핑 기피증이 있는 나는 출국심사대를 통과하자마자 커피를 사들고 탑승 게이트 쪽의 한적한 자리를 찾아 앉곤 한다. 이 때를 위한 책이 필요하다. 가방을 꾸릴 때 부치는 짐과 휴대용 짐을 구분하는데 가벼운 읽을거리는 반드시 휴대용 배낭에 넣는다. 공포소설의 대가인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휴대용 배낭에 넣기 좋다. 2권짜리에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대신 가볍다. 이 책은 자칭 텍스트 중독자인 동료가 추천했다. 그는 이 작품을 진짜 좋아해서 새로운 번역서가 나올 때마다 사사 본다고 한다. 가장 깔끔한 번역으로 황금가지에서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로 펴낸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추천했다.

의사인 루이스 크리드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한적한 시골마을로 이사 온다. 이웃 노인 저드는 루이스에게 죽은 동물을 묻으면 살아 돌아온다는 인디언 공동묘지를 알려준다. 추수감사절,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간 사이 딸이 너무나 사랑하던 고양이 처치가 차에 치여 죽자, 루이스는 처치를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는다. 흙냄새를 풍기며 고양이 처치가 살아 돌아온 뒤 루이스의 집은 죽음의 공포에 뒤덮인다. 그 이상의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발설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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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에서 사색기행|다치바나 다카시(청어람미디어)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동아일보사)

사실 여행지에서 읽는 책이 아니라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읽어야 할 책이다. 하지만 며칠간의 휴가를 위해 평소에 비해 곱절의 일을 해놓고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책까지 읽어가며 준비를 하라는 건 무리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장소로 기차 안을 골랐다.

‘사색기행-나는 이런 여행을 해왔다’는 다양한 지적 편력과 저술활동 덕분에 일본에서 ‘지(知)의 거장’으로 통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여행 에세이다. 무인도에서 보낸 엿새간의 이야기부터 유럽 맛 기행, 기독교 예술여행, 유럽 반핵 무전여행, 팔레스타인 보고, 뉴욕 연구 등 6부로 나누어 자신의 여행 편력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책의 본질은 필자가 어디서 무엇을 봤느냐가 아니라 왜 여행을 하느냐에 대한 성찰에 있다. 다치바나는 여행의 목적은 ‘일상성의 탈출’이며, 여행의 패턴화는 여행의 자살이라고 말한다. 일상성이라는 패턴을 벗어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119쪽에 이르는 이 책의 서론 부분만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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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두 친구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기록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된 지 4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독자들이 꾸준히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하고 궁금할 때가 있다. 브라이슨이 새로 이사한 집 앞의 길이 바로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충동적으로 종주를 결심하는 것처럼, 누구나 가슴속에는 훌훌 떠나는 그 순간을 품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국 동부를 관통하는 2100마일의 등산로로 우리의 백두대간에 해당한다. 종주라 함은 원시림과 호수, 언제 곰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산과 길을 6개월 이상 걷는 일을 의미한다. 40대 후반의 고등학교 동창생 두 친구, 게다가 카츠는 비만과 알코올의존증 증세까지 있었다. 처음부터 실패할 것이 뻔한 도전이었고 실제로 이들은 실패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있다. 브라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가공 처리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책의 앞부분은 유쾌함으로 배꼽을 잡지만, 중간 이후부터는 환경에 대한 역설 등 꽤 진지한 구석이 많은 에세이다. 재미만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실망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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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축복받은 집|줌파 라히리(동아일보사) 공중그네|오쿠다 히데오(은행나무)

틈만 나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박혀서 며칠 푹 쉬고 오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떠나기 전 읽을 책을 한 권씩 챙기는 것도 일이다. 꼬마 둘, 어른 셋(할머니 포함)의 취향이 각각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코타키나발루에서 남편은 ‘다빈치 코드’를 읽었다. 김빠진 맥주처럼 철 지난 베스트셀러를 읽으면서 “뭐, 이 정도 내용 가지고 야단법석이냐”며 연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건 또 뭐람. 친정어머니는 박완서 외 여성작가 17인이 쓴 소설집 ‘촛불 밝힌 식탁’을 집었다. 대하소설 마니아인 어머니는 “단편은 시시하다”고 하더니 어느새 “작가들마다 다른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고 한마디 하신다.

다음 여행 때 어머니에게 ‘축복받은 집’을 권해볼 생각이다.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줌파 라히리는 인도 벵갈인의 피를 물려받았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단편은 인도계 미국인의 삶을 잘 포착하고 있다. 즉, 이민자들의 문화충격과 정체성 문제를 과격하지 않게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간다. 퓰리처상, 펜 헤밍웨이상 수상작, ‘뉴요커’ 올해의 소설 선정작이라는 데 미리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작가 김연수 씨의 평대로 ‘이야기 중독자를 위한 휴대용 구급약’ 같은 소설집이다. 잘 쓴 산문집을 읽듯 편안한 문체에 쉽게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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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안 읽었다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도 휴가지에 썩 어울리는 책이다.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의 엽기적인 치료법에 킥킥 터지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공중그네 묘기에서 번번이 떨어져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베테랑 곡예사가 이라부 신경정신과를 찾아온다. 그러나 이라부는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공중그네 묘기를 배워보고 싶다며 곡예사에게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한다. 이라부의 치료는 이런 식이다. 낙천적인 이라부와 만나는 동안 어느새 환자 스스로 돌파구를 찾는다. 서점에서 ‘공중그네’를 구입하면 역시 이라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인더풀’을 끼워주는 1+1 행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읽는 것은 한 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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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이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의 몽타주|(마음산책)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 |윤석철(위즈덤하우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방해받는 게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토막 독서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는 한 호흡으로 내리읽어야 맛이 나는 장편소설이나 앞뒤가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인문서는 곤란하다. 짧지만 감칠맛 나는 글이 제격인데, ‘박찬욱의 오마주’와 ‘박찬욱의 몽타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마주는 평론집이고, 몽타주는 산문집이다. 개인적으로는 박찬욱식 글쓰기가 잘 드러나는 몽타주 쪽이 더 흥미롭지만, 영화 읽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오마주에 한 표를 던질 것 같다. ‘오마주’에서는 B무비나 장르영화 등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독특한 시선을 따라갈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히트작 감독이기 전에 무명시절 그는 먹고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글쟁이였다. 어쨌든 이 남자의 글맛, 정말 좋다.

서울대 경영학과 윤석철 교수 하면 생존부등식부터 떠오른다. ‘제품의 가치(V)>제품의 가격(P)>제품의 코스트(C)’. 즉 제품의 가치는 가격보다 커야 하고, 가격은 코스트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 생존부등식의 핵심 내용이다. 윤 교수는 이런 경영학적 원리를 참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살이에도 이 원리를 적용한다. 직장은 개인에게 지급하는 봉급보다 그를 고용하여 얻는 가치가 더 크다고 느껴야 고용을 하며, 개인은 봉급이 생계비보다 커야 살아갈 수 있다. 세상 사는 이치가 이처럼 주고받음에 있다는 것이다. 학부에서 독문학을 하다 물리학으로 진로를 바꾸고 미국 유학시절 전기공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독특한 학문적 이력이 잘 나타나는 책이 ‘경영·경제·인생 강좌 45편’이다.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풍부한 사례로 쉽게 설명했다. 하지만 만만하게 볼 책은 아니다. 틈틈이 밑줄 쳐가며 읽어야 할 대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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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하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이마고)큐|루터 블리셋(새물결)

온전히 일요일 하루가 내게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결혼 이후 그런 행운은 좀처럼 오지 않지만 생각만 해도 설렌다. 자, 내일이 그런 하루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아니, 무엇을 읽을까? 읽어주기를 기다리며 먼지가 쌓여가는 책들 중에 꼭 한 권을 골라야 한다면 말이다. 얼마 전 그런 행운이 찾아왔다. 꼬마들은 친척집으로 보내고 남편은 운동하러 나가고 부모님도 외출 중. 할 일 없는 일요일, 햇살은 부드럽고 산그늘은 시원해서 베란다에 의자를 내놓았다. 난간에 다리를 올리고 불온한 자세로 읽기 시작한 책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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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학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는 사람의 얼굴과 사물의 형태를 분간할 수 없게 된 음악교사, 과거는 기억하는데 현재는 기억할 수 없는 남자, 왼쪽을 보지 못하는 여자, 밤마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남자 등 기이한 신경장애 환자들의 임상사례를 모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썼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색스는 ‘삼염색체백색증에 걸린 21세 여성’이라는 문구 대신 그녀의 병력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인간의 머리와 마음의 문제에 접근한다. 특히 이 이야기 안에서 인간의 원형을 발견하는 것은 기묘한 체험이 될 것이다. 색스는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나라를 여행한 사람들이다. 만일 그들이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우리로서는 그런 불가사의한 나라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팬터지 소설이 또 어디 있으랴. 한나절 푹 빠져서 읽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름휴가 때 가져가려고 아껴둔 책이 루터 블리셋의 소설 ‘큐(Q)’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을 배경으로 한 디지털 시대의 역사 스릴러 팩션이라고 한다. 이건 책의 띠지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주인공 ‘나’와 적대적 인물인 ‘큐’, 그리고 카라파 추기경(실존인물) 세 남자를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이것은 출판사의 책 소개 글에서 옮겨왔다. 결국 읽지 않은 이상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997쪽에 1만9500원짜리 소설. 보기에도 질리지만 이번 여름이 아니면 영영 읽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골랐다. 제발 재미있기를!

여기 소개된 10권의 책은 명작도 아니고 꼭 읽어야 할 고전도 아니다. 그냥 순간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제목을 적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 휴가 때는 나만의 독서목록을 작성하는 쪽이 더 유용할 것이다. 앗, 편지도 아닌데 추신이 생겼다. 1년 전 알타이 기행 때 서(西)시베리아 벌판을 버스로 달리는데 몇 시간씩 차창 밖 풍경이 바뀌지 않는 지루한 틈에 우리를 즐겁게 해준 책이 있었다. ‘고우영의 십팔사략’. 그 만화가 없었다면 여행은 훨씬 고단했을 것이다.



주간동아 544호 (p52~54)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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