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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른 잔치 끝내고 벼린 칼 시대의 급소 찌르다

‘돼지들에게’로 이수문학상 받은 최영미 시인 “시 속에 등장하는 돼지와 여우는 보편적 지식인”

  • 이남희 동아일보 여성동아 기자 irun@donga.com

서른 잔치 끝내고 벼린 칼 시대의 급소 찌르다

서른 잔치 끝내고 벼린 칼 시대의 급소 찌르다
“저는 그 흔한 개근상 한 번 타지 못할 만큼 상복이 없는 사람이라 처음엔 수상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폭풍의 80년대를 방황으로 지새우고, 서른이 넘은 늦깎이로 문단에 나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지 15년 만에 처음 받는 상이라 더욱 감사하고 기뻐요.”

6월15일 오후 한국언론재단 20층 연회장에서 열린 제13회 이수문학상 시상식. 수상 소감을 밝히는 시인 최영미(45)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상식에 참석한 은사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도, 부모와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잊을 만큼 그는 잔뜩 긴장돼 있었다. 7년 만에 출간한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로 생애 첫 문학상을 수상한 감격 때문이다.

최영미 씨는 1994년 발간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만, 정작 상과는 거리가 먼 작가였다. ‘문단 정치’에는 도통 소질이 없는 데다, 일부 비평가들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돼지들에게’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문학평론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수문학상 심사위원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문학평론가)는 “최영미의 시집은 한국 사회의 위선과 허위, 안일의 급소를 예리하게 찌르며 다시 한 번 시대의 양심으로서 시인의 존재 이유를 구현한다”고 평가했다.

최 씨는 작품마다 논란을 몰고 다니는 작가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발표된 뒤 일각에서는 잔치가 ‘운동’을 의미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는 끝났다’는 말은 90년대를 관통하는 유행어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념이 사라진 90년대의 환멸을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퍼스널 컴퓨터’ 중)처럼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내 그는 독자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최 씨도 “(어떻게 그런 말들을 썼는지) 그때는 정말 겁이 없었다”고 회상할 정도다.

지난해에는 첫 소설 ‘흉터와 무늬’의 자전소설 여부를 놓고 문단이 한바탕 시끄러웠다. 몇몇 지식인을 작정하고 공격한 듯한 ‘돼지들에게’는 문단에서 아예 ‘매머드급 핵폭탄’으로 분류됐다. 사람들은 시집 속에 등장한 ‘돼지’와 ‘여우’가 문단 안팎의 특정 지식인을 연상시킨다고 했지만, 그는 “시는 시로만 읽어달라”고 답할 뿐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돼지와 여우는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주무르는 지식인의 보편적인 모델이죠. ‘돼지의 변신’을 쓰기 전에는 머릿속에서 생각한 ‘아무개’가 있었는데 시를 전개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를 넘어섰어요.”

“시는 열려 있어요. 다의적으로 읽힐 수 있죠. 저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오해를 만들지 않는 시는 좋은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려고 쓴 것은 좋은 시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제 작품은 늘 논란에 휘말리네요.”(웃음)

“오해 만들지 않는 시는 좋은 작품 아니라고 생각”

최영미 씨의 수상은 기자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보여준 대표작이라고 꼽힌 ‘대학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는 바로 기자와의 인연을 계기로 탄생했기 때문. 지난해 시사월간지 ‘신동아’에서 ‘내 인생의 선생님’ 연재를 담당한 기자는 최 씨에게 원고를 청탁하며 대학 때 찍은 사진을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이에 영감을 얻어 시를 단숨에 써 내려갔다. 시인 신경림 씨는 이 시에 대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쓴 진정성과 언어의 조탁이 돋보인다”고 언급했다.

서른 잔치 끝내고 벼린 칼 시대의 급소 찌르다
‘내 앨범에는 이십대가 없다/ 입학식과 졸업식만 있지 중간이 텅 비었다/ 셔터를 누르는 몇 초만이라도 편안히 멈추어/ 나를 응시할 계절이 없었으니-/ …/ 우리는 우리의 싱그러운 젊은 날들을,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청춘을 기념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 중)

“이 시가 평론가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이 될 줄 몰랐다”는 기자의 반응에 최 씨는 “나도 마찬가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아직도 문학이 무엇인지, 시가 무엇인지 몰라요. 그냥 나오는 대로 쓸 뿐이죠. 좋은 시가 뭔지 알았다면 오히려 시를 쓰지 못했을 거예요.”

한 문학평론가는 최 씨에 대해 “첫 시집이 너무 성공한 탓에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행한 시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울대 재학 중 학생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고, 학생 때 결혼을 했다가 바로 이혼한 극적인 삶은 그의 여성스러운 외모와 더불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큰 키, 단아한 얼굴…. 도발적인 첫 시집만큼, 혜성처럼 나타난 미모의 작가에 대한 관심도 각별했다. ‘여성성을 내세워 시의 상품가치를 높인다’는 편견 어린 시선이 최 씨를 괴롭혔지만, 그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글을 쓰는 데 몰두할 뿐이다.

“저의 좌충우돌한 삶, 대책 없는 인생이 제 시의 자양분이죠. 제 삶이 워낙 극적이어서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가 재미없게 느껴질 정도예요. 저는 상처를 받아야 시가 나와요. 시를 쓰려고 일부러 상처받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쓰고 나면 그 상처가 치유돼 행복해져요.”

‘돼지들에게’에 실린 축구 시 9편은 월드컵 시즌을 맞아 언론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다. 최 씨는 2002 한일월드컵 축구협회 보고서 편집자문위원을 지냈고, 각종 매체에 축구 관련 칼럼을 싣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애호가’. 그가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국체전에 나가 2관왕을 기록한 운동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4월에는 독일의 전국지 타게스차이퉁(TAZ)에 한국 대표로 축구와 월드컵에 관한 에세이를 기고했다. 축구전문지 ‘월드 사커’를 4년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니 그의 축구 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돼지’는 누구?

신경림 씨는 “남의 눈치 안 보고 할 말을 다 하는 용기야말로 최영미 시의 미덕”이라고 말했다. 최영미 씨는 ‘돼지들에게’를 통해 정파를 가리지 않고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일부 진보세력의 횡포와 탐욕도, 폭압적인 북한 정권도, 한국인의 꿈마저 지배하려는 미국 제국주의도 모두 공격 대상이 됐다. 그중에서도 ‘돼지’가 누구냐를 놓고 가장 논란이 된 시, ‘돼지의 변신’을 소개한다.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서른 잔치 끝내고 벼린 칼 시대의 급소 찌르다
최 씨는 자신의 축구 시에 대해 “단순히 시의 소재로 축구를 다루지 않았다. 축구를 통해 인생에 대해, 육체와 정신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축구로 정치 세태와 인생을 풍자하는 그의 재치는 웃음을 자아낸다. 특정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를 당사자인 ‘그’는 읽었을까.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눈을 지그시 감은 선수들이 지나가고, 어깨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 신사가 카메라에 잡힌다. 낡은 구두와 구겨진 바지 주름도 그의 야망을 감추지는 못한다.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며 어린 화동의 얼굴을 매만진다./ (중략)/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그가 영원한 축구인으로 남는다면, 그는 내가 존경하는 최초의 재벌 2세가 될 것이다.’(‘축구와 정치’ 중)

자타 공인 축구애호가 … 올가을 연애소설 집필 준비

최근 최 씨의 활동 무대는 비단 한국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가을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자유시 독자가 거의 없는 일본에서 이례적으로 재판을 찍으며 문학 한류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일본의 유력일간지 아사히신문은 문화면 톱기사로 ‘최영미 특집’을 보도했다. ‘한류, 시집에도 오는가’라는 제목으로 그의 시집과 작품세계를 소개한 것. 일본 기자는 “사회성이 높은 시는 딱딱하게 마련인데, 최영미의 시는 논리와 감성을 두루 갖췄다”며 그의 자유롭고 강렬한 표현을 높이 평가했다. 올해 4월24일자 아사히신문은 ‘한국의 베스트셀러 시인 일본에 왔다’는 제목으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일본 독자들의 반응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 씨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최근 일본 독자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어요.(웃음) 일본 독자들은 특히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실린 ‘과일과게에서’라는 시를 좋아한대요. 일본 문단이 제 시를 계기로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니 뿌듯하죠.”

최 씨는 이번 가을, 연애소설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흉터와 무늬’를 발표한 데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소설인 셈. 왜 시인이 소설 집필에 애착을 갖는 것일까.

“시로는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요. 고백하자면, 나는 시인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소설을 습작했어요. 시와 소설은 글의 밀도가 다르고 호흡이 달라, 작가로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야 했습니다. 시와 소설은 작업에 들어가는 노동의 종류가 달라요. 시가 정신적인 노동의 산물이라면, 소설은 육체적인 노동의 산물에 가깝죠.”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의 첫 만남은 기자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진 속 시인의 도도한 이미지, 시어 하나도 까다롭게 고르는 정교함과 날카로움 때문에 기자는 그에게 다가서기 힘들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예상을 뒤엎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꿈과 열정이 넘치고 수다를 즐기는 명랑한 소녀의 모습이기 때문. “내가 20대라면 축구 선수와 사랑에 빠질 거야”라고 말하던 그에게 “연애는 안 하냐”고 물었다. 그의 마지막 대답, 역시 최영미답다.

“오는 남자 안 막아요! 제 사생활이 궁금하다면 ‘문학사상’ 7월호에 실릴 제 연애시를 봐주세요, 호호.”



주간동아 2006.07.04 542호 (p60~62)

이남희 동아일보 여성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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