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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家 돈은 피보다 진하다?

형제간 재산싸움 점입가경 … 2·4남, 장남 상대로 업무상 배임 혐의 형사고소

한진家 돈은 피보다 진하다?

한진家 돈은 피보다 진하다?

형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한진가(家)의 형제간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 2세들 사이의 감정싸움이 급기야는 재산싸움으로 비화돼 민사소송과 형사고소가 이뤄지는 등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고 조중훈 회장의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이 지난해 말 장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을 상대로 유산 분배와 관련해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실은 알려졌지만, 두 사람이 조양호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형사고소한 사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밝혀졌다.

조남호 회장 측은 조양호 회장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한 끝까지 몰아붙인다는 입장이다. 업무상 배임 혐의 고소는 일종의 ‘잽’에 불과하다는 것. 특히 조남호 회장은 민사소송에서 조양호 회장 측의 유언 조작 의혹을 제기한 상태로, 조양호 회장 측이 ‘반성’하지 않으면 유언 조작 혐의로도 형사고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두산그룹에 이어 재벌가 ‘형제의 난’이 또다시 시작된 셈이다.

유언 조작 의혹 문제 삼아 이미 민사소송 제기

싸움의 양상은 차남 조남호 회장과 4남 조정호 회장이 연합전선을 구축해 장남 조양호 회장을 공격하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조남호 회장 측이 ‘창’이 되고, 조양호 회장 측이 ‘방패’가 되어 맞서고 있는 상황. 3남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조양호 회장 편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에 대해선 조수호 회장이 ‘알짜배기’ 한진해운을 상속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조남호 회장 측이 조양호 회장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것은 지난해 가을 무렵. 대한항공 면세품 독점 납품업체 브릭트레이딩사(社)가 스스로 납품권을 포기하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대한항공에 보낸 것은 조양호 회장과 조 회장의 측근인 원종승 한진그룹 구조조정본부장(전무)의 지시에 따른 일이라며, 조양호 회장과 원 전무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것.



서울지검은 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유산 분배 과정에서 브릭트레이딩은 장남 몫으로 결정됐기 때문에 대한항공 종물(從物)인 브릭트레이딩사를 정리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조양호 회장 측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 것. 그러나 조남호 회장 측이 이에 반발해 서울고검에 항고했고, 서울고검은 2월 말 서울지검에 보완 수사 명령을 내렸다. 서울지검은 현재 이 사건을 형사6부(부장 한승철)에 배당해 재수사하고 있다.

현재 서울지검 분위기는 ‘곤혹스러운’ 듯하다. ‘단순’고소사건임에도 서울지검 형사6부 관계자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 이는 검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검찰이 집안문제에 끼어들어 한쪽 편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탓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검찰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 판단하기 이른 상황. 조양호 회장 측은 서울지검이 당초 무혐의 처분을 내렸을 때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서울고검이 재기 수사 명령을 내리자 아연 긴장하는 분위기. 조남호 회장 측은 “서울고검이 재기 수사 명령을 내리면서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회장을 대질조사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시간은 조남호 회장 편”이라면서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분쟁의 결말이야 어찌 됐든 ‘형제의 난’ 와중에 한진가의 치부가 일부 드러났다. 이번에 그 존재가 알려진 브릭트레이딩은 조양호 회장의 형제 4명이 지분 24%씩을 갖고 있던 일종의 위장 계열사. 이 회사는 스스로 납품권을 포기한 이후 현재 휴업 상태다. 조양호 회장 측은 “대한항공이 반드시 브릭트레이딩에서 면세품을 납품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남호 회장 측을 자극한 것은 조양호 회장 측이 2003년 2월 삼희무역을 설립, 브릭트레이딩 대신 대한항공에 면세품을 독점 납품하고 있다는 점. 삼희무역의 서류상 대표는 원종승 전무, 공동 사업자는 조양호 회장 가족이다. 조남호 회장 측은 “고 조중훈 회장이 4형제가 연말에 순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해 쓰라고 설립해준 브릭트레이딩을 ‘죽인’ 다음 삼희무역을 세운 행위는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면서 “결국 연간 20억원 정도의 순익을 독식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흥분했다.

조남호 회장 측은 형사고소와 별개로 지난해 말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제기한 상태. 조남호 회장 측은 당시 “유산 분배 과정에서 애초에 약속한 대로 피고가 지배주주로 있는 비상장법인 정석기업 주식 일부를 내놓으라”며 주식 명의 개서 이행과 3억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 측은 정석기업 주식은 고 조중훈 전 회장의 차명 자산이 아니라, 고인의 친동생 조중건 전 회장과 처남 김성배 한진관광 고문의 개인 자산이 분명한 만큼 처분해서 분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정석기업 주식은 조양호 회장의 소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산인 만큼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남호 회장 측은 ‘유언 조작론’을 제기하고 있다. 조남호 회장 측 관계자는 “조중훈 회장은 2002년 11월17일에 작고했고, 그 전날인 16일 대한항공 직원 2명을 통해 유언장을 대필한 것으로 돼 있는데, 조중훈 회장은 돌아가시기 전 일주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였기 때문에 유언을 남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진그룹 관계자는 “고 조중훈 회장의 유언은 법적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형제간 법정 다툼은 감정싸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분석이다. 조양호 회장 측은 “동생들이 형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는 입장인 반면, 조남호 회장 측은 “형이 동생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조남호 회장의 주변 인사들은 “5월21일 결혼식을 올린 조양호 회장의 장남 원태 씨가 작은아버지들에게 청첩장을 보내지 않은 이유도 조양호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정석기업은 한진 지주회사인가

외형상 매출 249억원 …㈜한진 지분 14.14%로 최대주주


한진家 돈은 피보다 진하다?

서울 서소문 한진그룹 건물.

한진그룹 ‘형제의 난’ 과정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회사는 바로 정석기업. 이 회사는 표면상 빌딩 임대를 전문으로 하는 한진그룹 소규모 계열사에 불과하다. 서울 명동에 있는 해운센터빌딩 등 빌딩 3곳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본금 104억원에 지난해 매출액은 249억원, 순이익은 53억원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석기업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살펴보면 무시할 수 없는 회사임이 분명해진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주력회사인 ㈜한진 지분을 14.14%나 소유한 최대주주다. 이는 장남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지분율 5.91%의 2배가 넘는 규모다. ㈜한진은 대한항공 주식 9.43%를 보유한 것을 비롯해 한진그룹 계열사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한진의 대한항공 지분율은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지분율(9.63%)에 육박한다. 결국 정석기업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한진그룹의 경영권 향배가 결정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볼 때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이 정석기업 지분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조양호 회장 입장으로서는 정석기업을 뺏기면 한진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힘들게 된다. 조남호 회장 측이 이번 민사소송의 목적을 ‘조양호 회장을 압박해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려는 데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진家 돈은 피보다 진하다?

2002년 11월21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빌딩에서 열린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영결식에서 유족들이 고인의 영정을 들고 가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태도에 누구보다 흥분해 있는 사람은 조정호 회장이다. 조중훈 회장 생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는 조정호 회장의 아들이 현지 칼호텔에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지만 조종훈 회장이 작고한 뒤 출입이 봉쇄됐기 때문이다.

형제간 감정싸움이 법정다툼 발단?

이뿐이 아니다. 그동안 4형제가 운영하는 각 계열사는 자기 길을 택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 한진해운이 기존 보험 거래처인 메리츠화재(조정호 회장 소유)와의 재계약을 해지했고, 차남 소유인 한일CC 골프장에서는 대한항공 광고판이 모두 사라졌다. 또 조정호 회장 소유인 한불종합금융은 한진그룹 소유 해운센터빌딩에서 파이낸스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또 조정호 회장이 조중훈 회장이 작고한 뒤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던 중 수모를 당한 일도 있다는 전언이다. 조남호 회장 측 관계자는 “조중훈 회장 생전에는 4형제에게 1년에 5억원어치의 항공권을 무상으로 나누어줘 4형제의 해외사업을 지원했는데, 조정호 회장이 선친 타계 후 인천공항에 나가 출국 수속을 밟던 중 대한항공 직원들에게 수모를 당했다면 어떤 기분이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진정한’ 계열 분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조남호 회장 측 관계자는 “조중훈 회장 타계 후 한진그룹 관계자가 조남호 회장 계열로 분리된 한진중공업에 공문을 보내 ‘주요 사안에 대해 사전에 보고하고 협의하라’고 지시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진그룹 안팎에서는 ‘형제의 난’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형제간에 사이좋게 유산을 분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선친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 상대방을 탓하고 있어서 현재로선 극적인 화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주간동아 2006.07.04 542호 (p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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