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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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덕에 일복 터졌어요”

서울시청 직원, 응원도구 판매상, 교통경찰 … 바빠도 흥겨운 3인 1색의 ‘색다른 6월’

  • 입력2006-06-28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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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그 화려한 잔치의 이면엔 묵묵히, 그러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잔치의 흥을 돋워 ‘대박’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이도 있다. 그들에겐 자신의 생업 또한 ‘작은 월드컵’이다.
    “월드컵 덕에 일복 터졌어요”
    전국 곳곳에서 거리응원이 펼쳐지지만, 서울광장은 ‘꽃 중의 꽃’이다. 서울시는 지난봄, 공모를 통해 월드컵 기간의 광장 이용권을 SKT컨소시엄에 넘겼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청 직원 30여 명도 비상근무에 들어간다. 응원 열기를 돋우기 위한 이벤트 무대 등 각종 시설물 비치로 인해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거나 안전에 문제가 있지 않는지, 잔디가 지나치게 손상되지 않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서울시청 총무과 청사운영팀 이창우(48) 주임도 한국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밤샘근무를 한다. 이번 월드컵 거리응원은 경기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방송사에서 쇼를 진행해 분위기를 띄우는 게 특징. 이 주임은 쇼를 위한 무대설치 작업이 시작되는 경기 사흘 전부터 긴장된다고 말한다. 경기 당일, 시시각각 변하는 광장의 모습을 보면 ‘매일같이 출근하는 내 일터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무서워요. 그 엄청난 숫자를 예측할 수 없거든요.”

    내빈석이나 VIP석이 따로 없는 서울광장에선 부지런한 사람만이 명당을 차지한다. 이 주임의 얘기. “전광판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광장 정중앙에 자리를 잡기 위해 경기 시작 만 하루 전인 이른 아침부터 나타나는 사람이 있어요. 부모가 종일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저녁 무렵 자녀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귀가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띕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시청 직원들은 청사 안에서 한숨 돌린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거리응원은 감독이나 코치의 지시 없이도 질서 있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대(對)토고전이 밤 10시, 대(對)프랑스전과 스위스전이 새벽 4시. 피로와 졸음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시각이지만 청사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떠나갈 듯한 외침과 뜨거운 열기 때문에 시청 직원들은 잠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다. “직원들끼리 창밖을 보며 이런 얘기를 해요. ‘뭐가 저렇게도 좋을까?’ 젊은이들이 환하게 웃는 그 모습에서 보람을 찾죠.”



    경기가 종반으로 접어들면 선수들만큼이나 시청 직원들도 긴장한다. 8만~10만여 명의 응원 인파가 한꺼번에 자리를 뜰 때 벌어질 수 있는 안전사고 때문. 응원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광장에선 청소작업이 신속히 이뤄진다. SKT컨소시엄 측에 청소까지 책임지는 조건으로 광장 이용권을 내줬지만, 아침 출근길 교통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시청 직원들도 동원된다. 더욱이 잔디광장은 도로와 달리 청소차를 이용할 수 없어 사람 손으로 일일이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청소용역업체 직원들과 시청 직원들이 허리 한 번 펼 겨를 없이 분주히 움직이면 4000여 평의 잔디밭은 두어 시간 만에 말끔해진다.

    “7억원이 들었다는 무대가 금세 해체되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광장이 푸른 제 모습을 드러내면 허무하기까지 해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흥분된 상태로 있을 수는 없죠. 시민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경기를 관람하고 응원전을 즐길 수 있도록 보호하고, 다시 재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소리없이 일합니다. 그게 우리의 자부심이죠.”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월드컵 덕에 일복 터졌어요”
    야광 악마뿔, 짝짝이, 태극기, 나팔, 막대풍선…. 2006 독일월드컵이 2002 한일월드컵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다양해진 응원도구다. 삼삼오오 모여드는 응원 인파의 손에는 어김없이 이 중 한두 개가 들려 있다. 이 때문에 월드컵 ‘깜짝 특수’를 노리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4월 영업을 시작한 이벤트스토어(www.eventstore.co.kr)도 그중 하나다. 당초 5월5일 어린이날을 겨냥한 선물숍으로 문을 열었지만, 금세 방향을 틀어 응원도구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평가전 때부터 매출이 오르면서 직원 수도 2명에서 5명으로 늘었다. 김명진(28) 대리는 그 와중에 이 회사에 들어왔으니 그야말로 월드컵 덕을 톡톡히 본 셈.

    “평가전이 치러질 때부터 토고전까지는 일일 주문량이 60~70건이었는데, 토고전에서 이긴 뒤로는 2배 이상 늘었어요. 프랑스전이 끝난 다음엔 3배로 뛰었고요.”

    이벤트스토어에서 판매한 응원도구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악마뿔로 불리는 야광 머리띠. 중국에서 전량 수입된 이 머리띠는 본래 미국 할로윈데이 파티용품으로 제작된 것. 이 뿔이 ‘붉은 악마’를 연상시킨다고 판단한 수입업자들이 월드컵 시작 전 중국에서 다량으로 들여왔는데, ‘대히트’를 친 것이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회이다 보니 사람들이 경기 자체보다 추억 만들기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해요. 응원도구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멋있고 고급스러운 것을 찾거든요. 2002년엔 ‘Red Devils’가 적힌 붉은 티셔츠면 아무 거나 입었는데, 요즘은 축구협회 라이선스를 받은 공식 티셔츠를 찾아요.”

    이벤트스토어가 월드컵 직전 독특한 응원복을 자체 제작하려던 계획을 접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20대 후반과 30대는 남들과 같은 티셔츠를 입음으로써 동질감을 느끼고, 10대와 20대는 평범한 티셔츠를 구입한 다음 리폼해서 개성을 살리기 때문이란다.

    고객이 경기 하루 전날까지는 주문 상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직원들은 연일 밤샘을 하느라 초췌한 모습이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 경기 결과에 민생고가 걸린 만큼 응원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고.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월드컵 덕에 일복 터졌어요”
    월드컵 기간엔 ‘일탈’이 곧 ‘일상’, 붉은색이면 어떤 기괴한 차림도 용서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포옹해도 뺨 맞을 걱정 없다. 일상이 지루한 이들은 사표를 내고 독일로 날아갔다. 무엇을 해도 월드컵이란 면죄부만 내밀면 그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행복, 또 행복해한다.

    그런데 월드컵 기간에 행복은커녕 신경이 곤두서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교통계 김행호(49) 계장도 그중 한 명이다. 붉은 티셔츠도, 경기 관전도, “대~한민국”의 외침도 그와는 먼 얘기.

    “한국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긴장합니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인파가 몰리니 미리 대비해야 하죠. 경기가 끝난 후도 마찬가지예요. 적절히 길을 막고 뚫어서 교통을 원활히 하는 게 제 임무거든요.”

    대(對)토고전과 프랑스전이 열렸던 6월13일과 19일, 김 계장은 새벽부터 서울시청 옥상과 서울광장을 분주히 오갔다. 그는 옥상에서 도로 상황을 점검하고, 간간이 현장에서 교통경찰과 의경을 지휘했다. 거리응원의 메카 서울광장에 있어도 축구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건 당연지사.

    “골 들어갈 때나 잠깐 화면을 보지, 경기에 전혀 신경을 못 써요. 대부분 재방송으로 봤죠. 혼자 보니 재미가 덜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응원은 다른 사람들이 하고, 저는 기분 좋게 응원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교통정리를 하면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묻자, 김 계장은 “300명이 갑자기 횡단보도를 ‘점거’한 일”이라고 답했다. 프랑스전에서 박지성 선수가 동점골을 넣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전광판을 보기 위해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것.

    월드컵 열기로 한껏 달아오른 거리지만 접수된 교통사고 건수는 평소보다 적다. 남대문경찰서 교통계에 접수된 교통사고는 13, 19일을 합쳐 단 4건. 김 계장은 “축제 분위기 때문에 마찰이 있어도 용서하는 분위기여서 그런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찰도 단속보다 계도를 우선으로 한다고.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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