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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지났는데 사퇴는 무슨…”?

김덕룡 의원 은퇴 번복 은연중 시사 … 한나라 의원들은 全大 앞두고 잇단 ‘러브 콜’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소나기 지났는데 사퇴는 무슨…”?

“소나기 지났는데 사퇴는 무슨…”?

2001년 7월 김덕룡 의원(가운데)이 청계산을 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은 요즘 새벽 4시면 어김없이 경기도 과천 청계산으로 향한다. 이른 새벽 인적이 없는 산길을 김 의원은 걷고 또 걷는다. 장마철인 요즘도 산을 탄다. 가끔 강원도와 충청도에 있는 산도 찾는다. 김 의원의 한 측근은 “최근 3개월 동안 오른 산봉우리가 100개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6월2일 김 의원은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전남 구례에서 출발해 진주 방향으로 오르는 2박3일의 산행은 예순(41년생)을 넘긴 그에게 다소 무리인 코스. 그러나 새벽 4시부터 해질녘까지 거의 쉬지 않고 걸어 산행을 마쳤다. 김 의원은 왜 산행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 측근은 부인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구청장 공천 희망자에게 돈을 받은 혐의(공직선거법상 금품수수)로 구속(5월12일)된 부인(김열자)의 행위에 대한 참회의 산행으로 이해해달라.”

김 의원은 당초 부인의 수뢰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김 씨는 정치인의 아내였지만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부인 구형하던 날 사퇴 공언



김 의원은 10여 차례 이상 크고 작은 선거에 나섰지만 김 씨가 선거캠프나 유세장에 얼굴을 내민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안방정치가 횡행하던 80년대와 90년대, 많은 정치인과 기자들이 안방 밀담을 나눴지만 김 씨는 끝내 안방문을 열지 않았다. 10여 년 전 김 씨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는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평가를 통해서도 김 씨의 독특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997년 이른바 ‘용들의 부인’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부인들은 대부분 남편에 대해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김 씨는 달랐다. ‘남편이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고 묻자 ‘글쎄, 이번에 나온다고 하는데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답하더라.”

병원장인 김 씨는 정치를 허무한 직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랬기에 정치를 더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어떻게 4억여 원이 넘는 거액을 받을 수 있었을까.

김 의원의 참모 K 씨의 설명이다.

“공천권을 노린 한모 씨의 로비는 8차례 이상 이뤄졌다. 예를 들면 2005년 11월 김 의원 아들의 결혼식에 한 씨는 1억원씩을 넣은 보따리 5개를 축의금이라며 가지고 왔다. 김 의원 동생에게 30만 달러를 주려다 실패하기도 했고, 김 의원의 부인에게 5만 달러를 건네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교도소 담을 걷는 사이 부인들도 알게 모르게 한 길을 간 셈이다.

부인의 수뢰 사실을 확인한 김 의원은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오면 의원직 사퇴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

정치를 접은 김 의원은 산행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부인이 구속된 5월12일 이후에는 거의 매일 부인을 면회했다. 김 씨는 김 의원을 보면 자주 운다고 한다. ‘나 때문에 정치생명을 망쳤다’는 회한과 죄책감 때문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산행과 부인 면회로 일관하던 김 의원의 마음을 흔든 것은 한나라당 7·11 전당대회였다. 그가 쥐고 있던 호남지역과 범(汎)민주계 지분 10% 정도가 화근이었다.

“소나기 지났는데 사퇴는 무슨…”?

4월13일 국회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김덕룡 의원(오른쪽)이 박근혜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규택, 이경재, 정의화, 김영선, 이혜훈, 정진섭 의원을 비롯 강재섭 의원과 이재오 원내대표 등이 김 의원을 찾아 지원을 요청했다. 한 측근은 “4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김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사퇴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김 의원은 전당대회의 막후 킹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6월15일 한 측근이 “김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며 물꼬를 텄다. 같은 날 검찰은 김 씨에게 징역 3년에 몰수 4억3901만원, 추징금 2000만원을 구형했다. 약속대로라면 의원직 사퇴 선언을 해야 하는 날, 김 의원 측은 반대로 달린 셈이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산행을 통해 참회하는 모습도, 부인을 면회하는 모습도 모두 가식과 위선이라는 지적이 뒤따랐고, 김 의원 측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김 의원 측은 “정치를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들의 해명대로라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당초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과연 사실일까.

누리꾼들 “한 번 한 말 지켜라”

국회에서 근무하는 김 의원의 한 측근은 “의원직 사퇴 여부에 대한 판단은 참모가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애매한 답변이다. 그러면서 그는 “의원직 사퇴를 말리는 사람들이 많다.”(김 의원이) 아직도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있다”며 의원직 사퇴 입장에 변화가 있음을 은연중 시사했다.

정치인의 은퇴 선언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이 불리하면 은퇴의 뜻을 밝혔다가 여론이 가라앉으면 슬며시 자리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어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돌아선 최연희 의원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김 의원도 이런 유혹의 덫에 빠져들었다는 느낌이다.

누리꾼들은 김 의원에게 “한 번 한 말은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덕목(德目)”이라고 충고한다. 김 의원을 유혹하는 한나라당의 오만함도 꾸짖는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런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눈치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 표가 아쉬운 몇몇 정치인들은 김 의원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김 의원 측 역시 그들의 유혹이 싫지 않은 표정이다.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국민과 언론은 김 의원을 지켜본다. 김 의원은 무릎 꿇고 사는 길을 선택할까, 아니면 서서 죽는 길로 나아갈까.



주간동아 2006.07.04 542호 (p16~17)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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