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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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특명! 잠수함 승조원 구조하라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 훈련 … 수동형 DSRV(심해잠수구조정) 1척 한국 역할·위상 확인 계기

  • 제주=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4-05-13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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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해 특명!  잠수함 승조원 구조하라

    한국의 청해진함(작은 사진)은 함미에 있는 크레인으로 DSRV를 내린다. 이때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에 대기해 있던 특수요원들이 밧줄을 벗겨낸다. 미스틱을 지고 항해하는 미국의 라호야 잠수함.

    잠수함도 배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사고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을 수 있다. 일반 배라면 수많은 문과 창문을 통해 바닷물이 밀려들겠지만, 잠수함은 ‘해치’라고 하는 작은 문만 닫으면 완전 밀봉되는지라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잠수함이 침몰할 경우 어떻게 승조원을 구조해낼 것인가.

    5월8일 제주도 동쪽 30해리(약 55km)의 남해상에서는 옅은 해무(海霧)를 뚫고 대형 군함들이 몰려드는 장관이 연출됐다. 그러나 진짜 장관은 빛이 도달하지 않는 깊은 물속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 일본 호주에서 온 잠수함이 침몰한 잠수함 역할을 맡고, 한국과 미국 일본 해군이 이 잠수함에서 승조원을 구해내는 ‘2004(제3회)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 훈련’이 벌어진 것. 말이 훈련이지 사실상의 국가 경연대회가 벌어진 셈이다.

    참가국 간 연합 작전 능력 배양

    수심 100여m의 해저에 가상 침몰한 호주의 랜킨(Rankin) 잠수함은 한국의 잠수함 구조함인 청해진함이, 한국의 최무선 잠수함은 일본의 잠수함 구조함인 치요다(千代田)함이, 일본의 사치시오(幸潮) 잠수함은 미국의 LA급 핵추진 잠수함인 라호야(La Jolla) 잠수함이 각각 맡아 승조원을 구조하기로 돼 있었다. 국적을 달리해 승조원을 구조하기로 한 것은 참가국 간의 연합작전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오전 10시쯤 한국 청해진함이 ‘심해잠수구조정’으로 번역되는 DSRV(Deep Submergence Rescue Vehicle)를 내렸다. DSRV는 ‘그림’에서처럼 아래쪽에 해치가 있는데, 이 해치는 ‘스커트(치마)’라고 하는 원통의 철 구조물을 달고 있다. DSRV는 칠흑 같은 어둠의 바닷속으로 음파를 쏘는 소나(sonar)를 이용해 바다 밑에 가라앉은 잠수함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잠수함의 해치를 찾아내 스커트로 덮은 다음 강력한 압축공기를 쏴 스커트 속의 바닷물을 밀어낸다.



    이렇게 되면 스커트 안은 진공이 되고 스커트 밖에서는 엄청난 수압이 가해져, DSRV와 사고 잠수함은 ‘단단한 입맞춤’을 하게 된다. 이 ‘치마 속 키스’는 너무 강력해 만약 구조함이 크레인을 이용해 DSRV를 들어올리면 잠수함까지 따라 올라올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수면 가까이 올라오면 수압이 약해져 한순간에 분리되므로 절대로 한 꾸러미로 DSRV와 잠수함을 들어올리지는 않는다.

    잠수함의 해치 주변은 원형의 평면으로 되어 있다. DSRV가 사고 잠수함과 ‘뽀뽀’를 시도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스커트를 이 평면에 정확히 갖다대는 것이다. 문제는 DSRV가 지독한 ‘근시(近視)’라는 점이다. DSRV 조종사는 소나와 희미한 불빛에 의존한 카메라로 단 한 번에 스커트를 해치 주변 평면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때 실수로 스커트가 잠수함의 다른 부분과 부딪치면 이 스커트로는 진공을 만들 수 없다. 스커트가 해치의 주변 평면을 긁어도 역시 진공을 만드는 데 애로가 발생한다.

    2000년 싱가포르에서 제1회 훈련을 했을 때 한국의 DSRV는 ‘수동형’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 잠수함과 접합해 승조원을 구조해냈다. 그러나 이날 호주의 랜킨 잠수함 측은 한국 DSRV와의 접합을 거부했다.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그들은 한국 DSRV가 랜킨함에 올라타는 과정에서 스커트로 랜킨함의 해치면을 긁을 가능성을 염려한 것 같았다. 이에 따라 한국의 DSRV는 랜킨함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했다.

    심해 특명!  잠수함 승조원 구조하라

    일본 치요다함에는 바다로 뚫린 풀장 모양의 구멍이 있다(맨 왼쪽). 이 구멍을 통해 DSRV를 내리고 올린다(가운데 아래와 오른쪽). 치요다함의 DSRV에서 내리는 한국 잠수함 승조원들(가운데 위).

    비슷한 시각 일본의 치요다함도 DSRV를 내렸다. 한국의 청해진함은 함미(艦尾)에서 크레인으로 DSRV를 들어 바다로 내리면, 고무보트를 타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특수요원들이 크레인과 연결된 밧줄을 벗겨줌으로써 DSRV는 자유롭게 물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방식이다 보니 한국의 DSRV는 파고 2m 이하의 잔잔한 날에만 잠수함 구조작전을 펼칠 수 있고 파도가 심한 날엔 작업을 하지 못한다.

    치요다함은 달랐다. 이 배는 한가운데에 풀장과 비슷한 직사각형의 큰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 밑으로는 넘실대는 바다가 들어와 있다. 치요다함은 DSRV를 플랫폼에 실어 이 사각구멍을 통해 수심 30m까지 내려준다. 따라서 4000t에 이르는 치요다함까지 흔들어버리는 악천후(파고 4m 이상)가 아니면, 일본은 잠수함 구조작전을 펼칠 수 있다.

    美 해군 ‘미스틱’ 놀라운 능력 발휘

    일본의 DSRV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소나와 희미한 불빛에 의존한 카메라로 최무선함을 찾아가는 근시안이다. 그러나 일본의 DSRV에는 최무선함의 해치를 정확히 찾아내는 전자장비가 탑재돼 있다. ‘자동형’이기 때문에 이 DSRV는 실수 없이 최무선함에 접합해 두 명의 한국 승조원을 탑승시켰다. 그리고 수심 30m까지 상승한 뒤 다시 전자장비를 이용해 치요다함의 플랫폼에 올라탔다. 치요다함은 승강시설을 이용해 플랫폼을 갑판까지 바로 끌어올렸다.

    심해 특명!  잠수함 승조원 구조하라
    이 훈련을 지켜보기 위해 한국 일본 미국 호주 외에도 중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인도 캐나다 등의 해군이 참관단(옵서버)을 보냈다. 이들은 먼저 청해진함에서 한국 솜씨를 관람한 후 치요다함으로 옮겨탔기에 치요다함의 DSRV에서 한국 잠수함 승조원이 내리는 순간 환호와 함께 큰 박수를 쳤다. ‘일본이 이번 행사를 주최한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한·일간의 실력차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더욱 놀라운 기술을 보여준 것은 미국. 미 해군은 미 공군의 C-5 수송기를 이용해 샌디에이고항에 있는 ‘미스틱(Mystic)’이라는 이름의 DSRV를 한국으로 가져온 뒤 핵추진 잠수함인 라호야의 등 위에 부착시키고, 5월6일 진해항을 출항했다. 이런 상태로 훈련 수역에 도착한 라호야 잠수함은 바로 잠항에 들어가 수심 60여m에서 미스틱을 분리시켰다. 미스틱은 전자장비를 이용해 일본의 사치시오 잠수함과 접합해 두 명의 승조원을 태운 후 수심 60m쯤으로 올라와 다시 라호야함에 접합했다.

    미국 잠수함은 아예 물속에서 모든 구조를 마무리지은 것이다. 따라서 잠수함 세력이 약한 미국의 적대국은, 설사 미국 잠수함이 그들 연안에서 침몰한 사실을 알았더라도 미 해군이 이들을 구조해가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압도적인 기술 우위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이 서태평양 연안국 해군과 잠수함 구조훈련을 벌인 이유는 그들의 필요성 때문이다. 미국은 단 한 척의 DSRV를 갖고 있다. 따라서 두 군데서 잠수함 사고가 발생한다면 일본이나 한국 같은 구조 능력을 가진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일본은 치요다함과 치하야(千早)함 두 척의 잠수함 구조함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 척이 수리 중인 상태에서 두 개의 사고가 일어난다면 한국이나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수동형인 한 척의 DSRV만 갖고 있는 한국의 처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은 잠수함 구조함이 없고, 중국은 한국보다 훨씬 처지는 구조 능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 톱 10급의 잠수함 구조 능력을 갖고 있지만 동북아에는 1, 2위를 다투는 미국 일본 등 초강대국이 몰려 있어 항상 후순위다. 난이도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이번 서태평양 잠수함 구조 및 탈출 훈련은 대양 해군을 지향하는 한국 해군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것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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