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된 폭음은 고관절에 염증을 일으켜 파괴하는 장본인.
결국 걷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악화되었을 때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진찰받고 골반 부위 X레이 촬영을 다시 한 결과 김씨의 병명은 ‘우측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로 밝혀졌다. 그리고 고관절 MRI를 촬영한 후 최종 결과는 양측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로 증상이 없었던 왼쪽 다리까지 병에 걸린 것이다.
국내에선 해마다 3000명 이상의 대퇴골두 무혈성괴사 환자가 보고되고 있다. 특히 아시아의 30, 40대 남성에게서 발생하는 무혈성괴사의 경우 80% 이상이 그 원인이 과음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퇴골두 무혈성괴사’. 용어가 다소 어렵지만 이름을 풀어보면 이해가 가능하다. 대퇴골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뼈인 허벅지 부위의 뼈를 가리키고, 그 대퇴골의 머리 부분을 ‘대퇴골두(大腿骨頭)’라 부른다. ‘괴사(壞死)’란 몸의 어떤 부분의 조직이나 세포가 죽어서 그 기능을 잃는 것을 말하는데,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는 이 대퇴골두로 가는 혈액이 차단돼 대퇴골두가 죽어가는 질환. ‘무혈성’이라는 말은 혈액의 유출이 없다는 말이다. 여러 원인으로 대퇴골두의 부분 또는 전체에 걸쳐서 혈액순환장애가 일어나 골괴사가 진행되고, 결국 고관절이 파괴돼 2차 골관절염을 일으키면 극심한 진통이 뒤따른다.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란 원인이 나타나지 않은 10~20%의 환자를 제외하고 과음, 스테로이드제제 남용, 통풍, 당뇨병 등의 후유증 및 외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원인은 지나친 음주와 약물복용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은 40, 50대 남자에게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나며 사회적으로 한창 활동해야 하는 시기에 주로 발병해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에 많은 장애를 불러오고 있다.
양반다리 때 사타구니 통증 극심
특히 음주는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의 주된 원인. 상습적인 폭음은 혈액 내 지방질 농도를 상승시키고 이로 인해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지방덩어리로 변해 대퇴골두에 괴사가 발생한다. 주목할 점은 이 병의 특징이 한동안 많이 불편하고 아프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해져 돌아다니게 되면서 병이 점점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대퇴골두 무혈성괴사가 발생하면 다리를 벌릴 때 사타구니가 당긴다. 이 병은 엉덩이보다 사타구니 쪽의 통증이 더 심하다. 즉 방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려면 사타구니와 넓적다리 옆부분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특히 다리를 무릎 안쪽으로 돌리려면 자지러질 만큼 아프다는 환자가 많다. 즉 걷다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갑자기 바꾸려면 넓적다리 앞쪽과 무릎 앞쪽이 매우 아픈 것. 이를 보고 주변에서는 다리를 전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넓적다리와 무릎의 통증 때문에 무릎질환으로 오인하거나 엉덩이 또는 허리에 통증이 와서 디스크와 같은 척추질환으로 잘못 알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예가 많다.
일단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에 걸렸다고 술이 당장 통증을 악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타구니가 아프고 양반다리로 앉는 것이 불편하다면 진찰을 받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과음은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뿐만 아니라 간질환 등 전신적 폐해가 심각하므로 무조건 피하는 것이 좋다.
대퇴골두 무혈성괴사에는 수술적 방법 이외에 적절한 치료 방법이 없다. 수술적 방법은 원래의 관절을 유지하는 방법과 인공관절로 대치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질병의 정도, 즉 대퇴골두의 함몰 정도로 판단하는데 빨리 발견하면 할수록 인공관절을 하지 않고 원래 관절을 유지할 수 있다.
인공관절 수술은 약물이나 보존 요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의 관절질환을 수술로 치료하는 방법으로, 수술 뒤에는 통증이 사라지고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생활할 수 있다. 마치 충치가 있을 때 썩은 부분을 잘 제거해 그 위에 금이나 백금을 씌워주는 것처럼, 관절 겉면에 특수 금속으로 만든 얇은 막을 씌워주고 씌운 뼈와 뼈 사이에 특수 플라스틱이나 세라믹을 삽입해 관절면을 매끈매끈하게 움직이게 하는 수술이라 할 수 있다. 혜민병원 관절센터 김영용 박사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뒤 하루 반 정도가 지나면 화장실 출입이 가능하고 보행연습을 시작해 합병증이 없는 경우 수술 후 7일에서 10일 정도 지나면 퇴원해 집에서 요양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인공관절 수술은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뿐만 아니라 중증 퇴행성관절염으로 걷지 못하는 노인들의 보행장애를 개선하는 데도 효과적인 수술. 모든 관절염에 다 시행할 수 있는데 특히 고통이 심한 무릎관절에 많이 시술하며, 당뇨나 고혈압·심장병·신장염 등의 내과적 질환을 앓고 있어도 수술이 가능하다.
수술 이외 적절한 치료방법 없어
인공관절 수술은 회복이 빠르고 통증 없이 빠른 시간 내에 걸을 수 있는 좋은 치료 방법이지만 50살 미만 환자의 경우 10여년 간격으로 재수술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50살 미만 환자는 가급적 원래의 관절을 유지하는 방법을 시도하는데 그중 가장 신뢰할 만한 방법이 ‘생비골 이식술’이다. 이 수술은 비교적 괴사 범위가 넓거나 함몰된 부위가 있더라도 질병의 진행과 인공관절 치환술의 시기를 늦추는 방법이다. 생비골 이식술은 종아리의 비골이라 불리는 작은 뼈와 여기에 붙어 있는 혈관을 같이 이식하는 것으로, 혈관을 이식하는 까닭에 미세수술의 기술이 성공의 관건이다. 관절척추수술 전문병원인 KS병원의 김석준 원장은 “생비골 이식술은 인공관절 대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알려진 4기에서도 50%의 성공률을 보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관절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며 “수술 뒤 약 3개월간 목발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10년마다 재수술을 받지 않아도 돼 50살 이전의 환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병이 다 그렇지만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는 예방이 첫째다. 과음(특히 소주)을 피하고 부신피질호르몬제를 함부로 먹지 말아야 하며 고관절 부위에 방사선 조사 등을 하지 않는 게 좋다. 남성들에게 주로 나타나지만 요즘은 여성들의 음주량도 만만치 않아 여성들도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