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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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관계와 북핵문제

  • 안인해 / 고려대 국제대학원 국제정치학· 베이징대 객원교수

    입력2003-12-19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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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미관계와 북핵문제
    미국에서 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국빈에 준하는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양측은 현안인 북한핵과 대만 문제에 대해 상호 입장을 지지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중·미관계가 눈에 띄게 우호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이 두 가지 현안을 연계해 해결하려는 시각을 우리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한·중·일 간에 협의된 제안에 대해 북한의 반응이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2차 6자회담 개최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2004년 총통선거를 앞둔 대만의 천수이벤(陳水扁) 총통이 대만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하려는 움직임은 분명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지난 8월 6자회담은 중·미관계가 호의적인 데다 비핵화를 위한 공동의 목표가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로운 후진타오(胡錦濤) 체제가 출범한 중국과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은 중·미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북한핵과 대만 독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압력과 협력에 보조를 맞추는 인상이다. 이러한 상황의 중·미관계에서 북한핵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 들러리되는 상황 경계해야

    첫째,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 여부다. 김정일이 핵 보유가 정권 유지를 위한 생존전략이라면 포기가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핵 보유는 오히려 정권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핵이 없는 상태에서의 북한은 기아와 경제난에 허덕인 채 미개발의 제3세계 국가로 굳어져버릴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세계로부터 잊혀진 채 붕괴를 맞이할 수도 있다. 만일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강대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고자 핵 보유 의지를 그대로 가져간다면, 오히려 김정일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 북한의 ‘정권교체’에 대한 인식이다. 경제건설을 위한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임자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경제개혁 정책이 가능한 정치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중국은 마오쩌둥에서 덩샤오핑으로 권력승계가 이뤄지면서 이념투쟁에서 탈피하여 현대화를 통한 경제건설을 기치로 실사구시를 실현할 수 있었다. 북한의 경우에는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유훈정치 후광으로 김정일 군사위원장이 정권의 정점에 있다. 따라서 전임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경제건설의 비전을 제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한다면 부시 행정부 내부에서 공공연히 언급되는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온전히 배제할 수 없다. 중국에서도 최악의 경우 정권교체를 묵인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이야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미가 밀월관계일 때는 상호 합의에 의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양해가 이뤄질 수도 있다. 2002년 10월 장쩌민 주석과 부시 대통령의 중·미정상회담 이후 대만독립에 대해서는 미국이, 북한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양해가 중·미 사이에 있었다. 이번 원자바오 총리와 부시 대통령의 회담도 이러한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 갈등관계에 놓인다면 북한은 등거리 정책을 통해서 상호간의 견제를 바탕으로 유리한 협상을 이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양국이 상호 현안에 대해 양해하고 협상한다면 주변 강대국의 의지대로 한반도 문제가 풀려나갈 수도 있다.

    일찍이 조선은 가츠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이 조선을, 그 대신 일본은 미국의 관심 대상이던 필리핀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빅딜을 통해 식민지로 전락한 경험이 있다.

    남·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가 우리의 어깨 너머에서 주요 강대국들의 이해에 따라 좌우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북한은 핵 포기 결정을 내리기가 결코 싶지 않겠지만, 핵 보유가 체제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차 6자회담에 조속히 응해야 한다. 주변국들 중 어떤 국가도 북한의 핵 보유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1대 5의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벼랑 끝 외교로 핵 위협을 계속할 것인가, 핵 포기를 통한 국제공조의 마당으로 나올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위기에 처해 함몰할 것인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경제발전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를 북한은 선택해야 한다. 북한은 중·미관계가 호전되고 북한핵과 대만독립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을 오히려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핵 보유를 선언하든 핵 포기를 결정하든 그 어느 쪽도 체제 유지의 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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