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8

2003.06.12

“또 바꿨니?” 휴대전화 사람 잡을라

멀쩡한 단말기 年 800만대 버리고 신형 구입 … 통화·부가기능 과소비에 요금 ‘눈덩이’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6-04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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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바꿨니?” 휴대전화 사람 잡을라

    휴대폰의 각종 부가서비스는 편리한 만큼 비싼 대가를 치러야 이용할 수 있다. 단말기 분납금을 포함한 14만원대의 요금과 분납금 없는 8만원대 요금 내역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한 휴대폰 카페에 지난달 요금고지서를 받고 눈물을 삼킨 이들이 모였다.

    A: 이달 요금이 14만원이나 나왔네!

    B: 난 18만원 _-_; 단말기 할부금에 준(JUNE·이동통신 멀티미디어 데이터 서비스) 요금, 정보이용료, 통화료, 가입비도 분납이에요.

    C: 나도 그렇게 나오면 어쩌지? 노래 많이 다운 받았는데. ㅠ.ㅠ.

    B: 살살 쓰세요.



    한 달치 휴대전화 요금이 14만원이나 나왔다는 이수정씨(가명·25·경기 광명시)가 자신의 사용내역서를 보여주었다. 기본요금 1만6500원, 준 프리요금 2만5000원(정액제), 프리할리데이(휴일 정액요금) 1만원, 발신번호 표시서비스 2000원, 단말기 분납금 4만4450원(12개월), 분납 가입비(5개월) 1만1000원. 한 달 내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1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일반통화료 1만6674원, 컬러링(통화연결음) 900원, 레터링(발신자 애칭표시) 900원, 폰메일(멀티미디어 메시지) 이용료 1만5150원, 데이터 정보료 8160원까지 합치면 14만여원.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 급여를 받고 있는 이씨 입장에서 매우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할부 … 정액제 … 월 10만원 ‘훌쩍’

    단말기 할부금을 다 갚고 나면 사정이 조금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때 되면 또 단말기를 바꿔서 1년 내내 할부금을 낸다고 했다. 이씨는 5년 전 처음 휴대폰을 장만해 지금까지 다섯 번 단말기를 교체했다. 1년에 한 번꼴이어서 단말기 할부금을 채 갚기도 전에 새 단말기를 사는 일도 있었다. 두 달 전 새로 장만한 뮤직폰은 앙증맞은 모양에다 MP3플레이어와 유사한 기능까지 있어 50만원이 넘는 거금을 선뜻 지불하고 구입하고 말았다. 전에 사용하던 기종도 40여만원이어서 “다시는 안 바꾼다”며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친구의 새 휴대폰을 보고 또다시 흔들리고 말았다.

    하지만 곧 후회가 밀려왔다. 음악파일 저장용량이 13곡 정도밖에 안 돼 한 곡당 600~700원씩 다운로드 비용을 지불하고 저장한 음악을 몇 번 듣지도 못하고 지우고 다시 새 곡을 다운로드 받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씨는 이런 식으로 사용하면 10만원은 우습게 나온다며 “사람 잡는 MOD(다운로드 전용 음악콘텐츠 서비스)”라고 했다.

    젊은층의 휴대폰 과소비가 심각한 수준이다. 신형으로 교체하기 위해 버려지는 멀쩡한 휴대폰이 연간 800만대가 넘는다. 어느새 흑백단말기는 매장에서 구경조차 할 수 없다. 통화와 간단한 문자 서비스만 원하는 사람도 10여만원씩 더 비싼 컬러 휴대폰을 구입해야 하고 가입 때는 무선인터넷 등 여러 가지 부가 서비스가 따라붙는다. 현재 젊은층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SK텔레콤 준, KTF 핌과 같은 멀티미디어 데이터 서비스를 받으려면 60만원대의 전용 단말기를 장만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4월 말 기준으로 준 가입자가 53만명, 핌 가입자도 39만명을 넘었다.

    “또 바꿨니?” 휴대전화 사람 잡을라

    “어떤 카드는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어떤 카드는 못 받아 헷갈리고 불쾌하다.”(대학생 김혜미) “내가 쓰지 않는 시간대에 할인해주면 뭐합니까?” (프리랜서 공영익)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들이 지불해야 할 통신요금. 휴대폰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축구경기나 드라마를 보려면 만만치 않은 정보이용료(콘텐츠 제공업체가 부과)와 데이터이용료(통신업체가 부과)를 지불해야 한다. 이 서비스는 콘텐츠의 양과 형식에 따라 부과되는 요금의 계산법이 복잡해 자신의 사용량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어느 준 사용자는 “VOD서비스가 신기해서 심심할 때마다 접속했더니 이번 달 요금이 42만원이나 나왔다”며 자신이 사용한 요금에 스스로 놀란다.

    이동통신 사용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세티즌닷컴’(cetizen.com)에서는 올봄 준, 핌 사용 주의보를 내렸다. 만약 하루에 10시간씩 10일 동안 핌으로 TV를 시청하면 1500만원의 요금이 나온다는 경고에 많은 네티즌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핌 단말기로 1분 동안 TV동영상을 시청할 경우 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다운로드 방식이면 1분에 3900원, 스트리밍 방식이면 2496원이다. 1만원에 4분 시청이 고작이다. 준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사실을 실감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SK텔레콤과 KTF가 홍보기간 동안 각각 준과 핌의 ‘무제한 정액요금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준은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2만5000원만 내면 데이터 통화를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 ‘준프리요금제’를 채택했다. ‘핌240’은 7월31일까지 월 2만4000원을 내면 3개월간 데이터 통화 무제한 이용이 가능하고 이후 12만4000패킷까지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다. 물론 한시적인 이벤트이며 음성통화료와 건별 정보이용료는 따로 부과되고 있다. 7월 이후 ‘무제한 정액요금제’의 마술이 사라졌을 때 과연 소비자들이 이 ‘돈 먹는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비싼 요금에 미리 겁을 먹고 다운로드 한번 받지 않은 채 고가의 전용단말기를 ‘놀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동영상 보는 재미에 빠진 젊은이들이 콘텐츠 이용을 자제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휴대폰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소비자보호원은 “휴대폰 요금이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통신 신용불량자의 양산을 우려하고 있다. 정보통신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올해 휴대폰 신용불량자는 57만4000여명, 그러나 신고되지 않은 체납자까지 포함하면 1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신 신용불량자 150만명 추정

    LG텔레콤은 4월1일부터 요금제를 전면 개편했다. 묶음요금제를 폐지하고 기본료와 통화료 외에 무선인터넷, 문자메시지 등 부가서비스를 고객의 필요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한 것. LG텔레콤측은 새로운 요금제가 “정직하고 단순하여 고객이 선택하기 쉽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새로운 요금제를 설계한 브랜드기획팀 송인걸 차장은 “고객들의 불만을 분석한 결과 요금제가 너무 복잡해서 정작 내게 맞는 것을 고르기 힘들고, 선택한 후에도 쓰지 않는 서비스들이 너무 많은 데다 내가 쓰지 않는 시간에 할인을 해서 속은 기분이 든다는 내용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1만원만 내면 일요일과 공휴일에 11시간 동안 무료로 쓸 수 있는 요금제를 선택했다 해도 그 서비스를 소진하려면 하루 종일 전화기를 들고 다녀야 한다. 문자메시지 100개 무료 서비스라 해도 실제 소진율은 20%에 불과한 현실이다. 이런 부분이 휴대폰 요금의 거품이 되고 있다.

    송차장은 “각종 부가서비스로 복잡하게 묶인 요금체계를 정확히 파악해서 필요한 서비스만 받는 현명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각자의 통화 패턴에 맞는 정확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만 있다면 실제 통신비는 20~ 25%까지 줄일 수 있다고.

    그러나 이미 전화기의 기능을 넘어선 차세대 휴대폰들이 더욱 다양한 기능을 장착하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세티즌닷컴이 온라인상에서 휴대폰 이용자들에게 “고가지만 다양한 기능이 있는 휴대폰과 통화만 잘 되는 휴대폰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고가의 다기능 휴대폰을 선택하겠다는 사람이 58.7%(2920명)로 더 많았다. 아직까지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가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로 제한되나 MP3, 카메라, 동영상 등 새로운 기능에 대한 관심도 높아 디지털 과소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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