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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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벗는다” … 참을 수 없는 누드 열풍

인터넷·디지털카메라 확산 알몸 노출 욕구 폭발 … 보수적인 성의식 엄청난 변화 신호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06-04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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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벗는다” … 참을 수 없는  누드 열풍
    ‘완전 노출’(누드)의 계절이다. 한창 때의 몸매를 사진에 담아두기 위해 사진관을 찾아가 누드 사진을 찍거나 애인과 친구의 누드 사진을 디지털카메라(이하 디카)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 혹은 누드 동호회에 가입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모임을 갖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또 최근 누드 사진을 찍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연예인들로 인해 누드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된 상황이다. 한마디로 누드 열풍이 불고 있다.

    “아 햏햏(아햇햇으로 발음)하다.”

    이 말은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보았을 때 드는 즐거움 또는 어이없는 기분, 깨달음을 뜻하는 네티즌 용어다. 누드 열풍에 빠진 이들의 감정이 바로 이 ‘아햏햏’이 아닐까. 누드카페 ‘누드러브’의 게시판에 글을 올린 ‘나?자연인’이라는 ID를 쓰는 한 네티즌은 이 느낌을 이렇게 적었다.

    “아름다운 내 몸” 일반인들 누드 촬영 부쩍 늘어

    “과감하게 자신을 상대에게 보이고, 설령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내가 발가벗었다는 그 느낌만으로도 뭔가 지금껏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생각의 틀을 깨는, 정말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어쩌면 쾌감 같은….”



    5월30일 밤 10시30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신데렐라스튜디오(www.cinderellaphoto.co.kr). 프로필 사진과 국내외 일반인들의 누드 사진 촬영으로 유명해진 이곳에 강북구에서 만화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이연씨(29·여·가명)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작지만 균형 잡힌 몸매의 김씨는 며칠 전 자신의 누드 사진을 촬영하기로 예약해둔 터였다.

    김씨는 몇 년 전 화실에서 누드 크로키를 배우면서 남자 누드모델의 맨몸을 처음 봤다. 김씨는 처음에는 누드모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부끄러워했지만 두 시간쯤 지나자 자신도 누드모델이 돼보고 싶다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후 생업에 쫓겨 그 느낌을 잊고 지내다가 요즘 사진관에서 누드 사진 촬영하는 게 유행이라는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낸 것.

    김씨는 직원의 안내로 화장을 하고 옷을 벗은 뒤 가운을 걸쳤다. 그러나 사진 촬영 전 김씨는 불안한 듯 스튜디오 안을 왔다 갔다 했다. 마침내 짧은 반바지만 입고 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카메라 앞에 섰다. 스튜디오의 박민수 실장(39)이 긴장하지 말고 고개를 들라고 거듭 주문했지만 김씨의 어깨는 자꾸 움츠러들고 고개는 땅으로 향했다.

    “예쁜 포즈는 이상하게도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네요. 전문 모델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 같아요.”

    김씨는 중요 부분은 드러내지 않는 세미누드로 촬영했다. 사진 7컷(15만원 안팎)을 촬영하는 데 30분 넘게 걸렸다. 촬영보다는 긴장을 푸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촬영이 끝나고 컴퓨터로 화상을 보면서 사진을 고른 김씨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평소 자신의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

    “나는 벗는다” … 참을 수 없는  누드 열풍

    5월30일 밤 평범한 만화방 주인 김이연씨(가명)가 용기를 내 사진관에서 누드 사진을 찍었다.

    요즘 김씨처럼 자신의 누드 사진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이 적지 않다. 명동의 이츠미포토(itsmephoto.com)의 경우 매달 5~10명, 신데렐라스튜디오의 경우 20~30여명이 누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신혼부부와 중년층, 남성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20~30대의 여성들로 한창 때의 몸매를 사진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 이런 이들을 위해 촬영에 필요한 소도구들을 준비해두고 전문적으로 누드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관들도 늘어나고 있다. 신데렐라스튜디오나 이츠미포토를 비롯해 미호스튜디오, 포토하우스(photo-house.co.kr), 위드스튜디오(withstudio.pe.kr) 등이 대표적이다.

    2~3년 전부터 일본 관광객들이 국내에서 누드 사진을 촬영하는 게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잡았는데 그 바통을 내국인들이 이어받은 셈이다. 그동안 연예인들이나 전문모델들의 누드 촬영은 드물지 않게 있어왔지만 일반인들의 누드 촬영은 드물었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당한 일이라는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것은 인터넷과 디카다. 사진관에서 자신의 누드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또한 요즘 디카로 본인 혹은 이성친구의 누드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디카’로 찍어 홈페이지 게시 새로운 유행

    ‘아햏햏’이라는 말이 처음 통용되기 시작한 디카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 com)의 ‘누드 갤러리’는 만들어진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반인들의 누드 사진이 550여건이나 올라 있고 조회 건수가 평균 20만회를 상회한다. 여기에는 ‘너무 섹시한 나의 여친(여자친구)’이란 제목으로 가슴을 조금 풀어헤친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려둔 이도 있고, ‘너무도 이쁜 내 가슴’이라며 접사 사진을 찍어 올린 용감한 여성도 있다. 한 회원은 ‘평가해주세요-모델은 여자친구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침대 위에 요염한 포즈로 누워 있는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려놓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 관계자는 “필름 카메라의 경우 촬영 후 현상소에 가서 현상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점이 많지만 디카는 촬영한 뒤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인터넷에 바로 띄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붐이 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누드 갤러리에 누드 사진을 게재한 김천일씨(33)는 “디카 동호회에서도 누드 촬영 행사가 한 달에 2~3건은 있어 누드를 접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쉬워졌다”며 “자기 몸이나 친구 혹은 애인의 누드 사진을 찍는 것도 선정적이지만 않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누드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음사이트에 들어가 ‘누드’라고 치자 480여개의 카페가 떴다. 성인 동영상이나 에로틱한 사진을 올려놓은 카페가 대부분이지만 누드 모임을 갖는 누드카페들도 상당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카페는 ‘자연주의’라는 이름의 누드 모임 동호회들.

    이들은 나체주의(nudism)를 자연주의(naturism, 자연주의란 영어 단어 속에는 나체주의란 뜻도 있다)라고 부르면서 ‘자신과 타인, 환경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함께 나신(裸身)이 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한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환경과는 무관한 단순한 나체 모임 동호회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모임이 다음사이트의 ‘누드러브’(cafe.daum.net/naturist). 지난해 말 일부 언론에 단체여행에서의 나체 모임 사진이 공개되면서 널리 알려진 이카페는 현재도 정기적으로 ‘유니폼 모임’(나체 모임을 뜻하는 은어)을 열어 네티즌들 사이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는 벗는다” … 참을 수 없는  누드 열풍

    일반인도 연출만 잘하면 누드모델 못지않게 아름다운 사진을 얻을 수 있다.

    2년 전 명문대 법대를 졸업한 직장인 강모씨(28)가 주도해 만든 이곳의 회원은 현재 5만5000명. 이 모임은 강씨가 외국의 나체주의 사이트를 모방해 만든 것으로 처음에는 남자 회원만 있다가 2001년 류모씨 부부가 가입하면서 여자 회원들도 늘어났다. 다음사이트 회원이면 누구나 이 카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정기모임에 참가할 수 있는 정회원이 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정회원이 되어도 ‘유니폼 모임’에 참가하려면 정기모임에 세 번 참석해야 한다.

    요즘은 애초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성적 호기심으로 가입한 회원들이 많아져 활동이 위축된 상태. 직장문제 등으로 카페 운영을 류씨에게 넘긴 강씨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자연주의 모임을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해 당분간 활동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우리 사회의 성의식이 좀더 개방되기를 기다린 뒤 다시 자연주의 모임을 만들 생각이다”고 말했다.

    원래 ‘자연주의(나체주의)’의 의도는 건강했다. 날씨가 추운 북유럽 사람들이 따뜻한 봄이면 온몸에 햇볕을 쬐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나체주의는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을 겪으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옷을 벗고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건강과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고 한다.

    조만간 공공장소 알몸시위·누드비치 생길 수도

    그러나 요즘 이 운동은 일상에 지친 중상류층의 쾌락추구형에서부터 억압적인 기존 질서를 조롱하는 히피형, 단순히 햇볕을 많이 쬐는 것이 목적인 일광향수형까지 다양한 형태로 퍼져 있다. 최근 국내의 누드 열풍에도 이처럼 다양한 현상이 한데 엉켜 있고, 각기 다른 목적이 개입돼 있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옷을 벗고, 또 어떤 이들은 예술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하기 위해 옷을 벗는다. 전성기 때의 아름다운 몸매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혹은 포르노그래피를 위해, 그리고 일시에 큰돈을 벌기 위해 옷을 벗는다.

    자신과 부인의 누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정직 처분까지 받았던 미술교사 김인규씨나, 여고생의 치부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통해 세상에 대한 반항과 절망을 표현한 화가 최경태씨 등은 누드에 나름의 정치적 함의를 담으려 했던 이들이다. 김씨는 인위적인 해석이 들어가 왜곡되는 누드와 있는 그대로의 몸(naked)의 차이를 묻고자 했고, 최씨는 자본주의가 명품을 사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학생들을 양산한다는 점을 꼬집고자 했다.

    전문적인 누드모델들은 자신들의 몸이 예술작품에 쓰인다는 데서, 연예인들은 자신들의 누드가 포르노가 아니라 예술행위라는 점과 젊었을 때의 몸매를 사진으로 남긴다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연예인들의 경우 그 기저에는 돈과 꺼져가는 인기를 되살리고픈 열망이 깔려 있기도 하다.

    자칫 누드 열풍이 예술적으로 승화되지 못한 이미지만을 양산할 경우 그 부정적인 영향도 우려되고 있다. 특히 연예인들의 누드 사진은 애초의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인터넷 등을 통해 널리 유통되면서 포르노물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어떻게 쓰이느냐는 문제다. 최근 경찰에 적발된 음란 누드카페도 누드 열풍의 부정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벗는다” … 참을 수 없는  누드 열풍

    ‘부끄러움’을 벗어던지고 누드 사진을 찍은 일반인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누드 열풍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우리나라는 성형이나 건강식품 등 유난히 몸 관련 산업이 활성화돼 있지만 벗은 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터부시해왔다”며 “이제 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면서 이런 금기마저 깨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요즘 성에 대한 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최근의 누드 열풍은 디카나 인터넷을 통해 수면 밑에 있던 성의식이 한꺼번에 노출되는 과정일 뿐 새로울 것은 없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성의식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 이런 과정을 거쳐 언젠가 보수적인 우리의 성의식이 더욱 개방된다면 외국에서처럼 반전이나 환경 등 사회적 이슈를 알리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알몸시위가 벌어지기도 하고, 또 동해안 어디쯤에는 누드비치가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겉으로는 보수적이고 건강한 듯하지만 실제 그 뒤안을 들여다보면 이중적인 성의식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누드 열풍이 어떻게 건전한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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