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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하녀들’

꿈에서나 마님이 되어보나

  • < 장은수/ 연극평론가·한국외국어대 교수 > eunsu@hanmail.net

꿈에서나 마님이 되어보나

꿈에서나 마님이 되어보나
봄이라서 그런지 요즘 신데렐라 신드롬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왕자·공주병 환자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명랑소녀 성공기’나 ‘선물’ 같은 TV 드라마만 봐도 그렇다. 안방극장의 관객은 브라운관 속 하녀 탈출기를 보면서 나도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잠깐 현실을 잊는다.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프랑스 작가 장 주네 작 이윤택 연출의 ‘하녀들’ 역시 마님이 되고 싶은 하녀들의 얘기다. 하지만 오늘 같은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하녀와 마님 사이의 간극은 여전하며, 모두들 부와 권력을 쥔 ‘마님’이 되려고 안간힘 쓰지만 그것은 허구에서나 가능하다는 슬픈 유희를 보여준다.

막이 오르면 루이 14세 양식으로 꾸며진 침실에 드레스와 꽃이 넘쳐난다. 경대를 보며 화장하던 우아한 귀부인은 빨간 고무장갑을 낀 초라한 하녀의 시중을 받고 있다. 귀부인은 거만하고 하녀는 복종적이지만 심상치 않은 긴장이 감돈다. 갑자기 자명종이 찢어질 듯 울리면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온다. 마담이 집을 비운 사이 두 하녀가 매일같이 벌이는 연극 ‘마님과 하녀’ 놀이를 끝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녀들은 이름조차 혼동하며 무시하는 마담에게 “마담은 아름다워요” “저흰 마담을 사랑해요”를 연발하며 절대적 굴종과 충성을 연기한다. 치욕스런 현실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몰래 독약을 타서 마담에게 차를 건네지만 감옥 갔던 애인이 풀려났다는 소식 때문에 실패로 끝난다.

꿈에서나 마님이 되어보나
마담이 나가고 난 뒤 곧바로 ‘마담과 하녀’ 놀이가 다시 계속된다. 처음에 하다 말았던 마지막 독살 장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님 역의 끌레르는 끝까지 연기에 충실하기로 마음먹고 쏠랑주가 가져다 준 독약이 든 차를 마시고 정말로 죽어간다. 이렇게 해서 연극은 끝나고 연극 같던 하녀의 현실도 막을 내린다. 끌레르는 자신이 사랑하고 동시에 증오하는 마님이 되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나 그녀는 마님이 될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다. 다만 마님 역을 연기함으로써 이 소망을 성취하고, 자살함으로써 이런 소망을 가진 자신에게 벌을 준다.



배우 중심의 연극을 표방한 이번 공연에서는 연출선이 비교적 절제된 대신 각 배우들이 지닌 개성과 과장된 연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초연 때 주네가 남자배우로 배역을 정하도록 권했다는 이 연극은 배우들에게는 커다란 도전인 동시에 유혹이다. 더블 캐스팅된 마님 역은 배우 정동숙의 걸직한 목소리와 질퍽한 연기가 맞지 않아 촌극으로 흐른 경향도 있었지만, 소극장의 공간은 잘 훈련된 세 배우가 열정적으로 뿜어내는 땀과 눈물에 흠뻑 젖어들었다. 마님을 죽이는 것은 현실이 아닌 연극에서나 가능하고, 그것도 하녀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이 부조리극의 시각은 시니컬하기 짝이 없다. 극중극이라는 복합적 유희구조를 통해 현실과 연극이 마주 보고 있는 거울처럼 서로를 투영시키는 극장에 앉아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모두 무대다.’(4월12일∼5월19일, 산울림소극장)



주간동아 333호 (p86~86)

< 장은수/ 연극평론가·한국외국어대 교수 > eun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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