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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최고 대 최고|⑦ 트라파토니 vs 에릭손

V 비책 영광의 지휘봉… “가자 우승 고지로”

유럽의 빅리그 클럽서 '우승 제조기' 명성 …이탈리아 4회 대권 도전, 잉글랜드 부활 자존심 격돌

  • < 김한석/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 hans@sportsseoul.com

V 비책 영광의 지휘봉… “가자 우승 고지로”

2002월드컵에 출사표를 던진 32강 사령탑 중 가슴속에 벅찬 야망 하나 품고 있지 않은 감독이 누가 있을까. ‘최고 대 최고 시리즈’를 장식할 마지막 포지션은 벤치에 앉아 그라운드를 조율할 최고의 감독들이다.

감독을 평가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표팀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이가 있는가 하면, 클럽 무대에서 빛나는 성적을 쌓은 사령탑도 있다. 그 가운데 유럽의 빅리그 클럽에서 쌓은 명성을 지렛대 삼아 대표팀 무대에서 정상을 노리는 두 감독을 소개한다. 이탈리아의 4회 우승 도전을 이끄는 조반니 트라파토니(63)와 ‘축구 종가’ 잉글랜드 사상 최초의 용병 감독으로 36년 만의 도전을 위임받은 스웨덴 출신의 스벤 예란 에릭손(56). 두 사람은 각각 최고령 우승 감독과 최초의 용병 우승 감독이라는 위업을 위해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1973년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이래 꼭 30년. 이제 월드컵 우승으로 기념비적인 자신의 20번째 우승을 채우려 하는 트라파토니는 60년대 AC 밀란과 대표팀(A매치 17회 출전)에서 수비수로 활약한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다. 그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펠레를 꽁꽁 묶은 뒤 자신의 유일한 A매치 골까지 터뜨리며 3대 0승을 이끌었던 63년 브라질전 때였다. 이후 63, 69년 유럽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해 13년간 모두 일곱 차례의 우승컵을 안았다.

반면 에릭손은 강한 집념과 이론공부로 지도자로서 뒤늦게 축구인생을 꽃피운 무명선수 출신이다. 고향의 아마추어 클럽에서 선수 시절을 보내 대표팀과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76년 스웨덴 3부 클럽인 데케르포르스 클럽의 감독을 맡아 2년 만에 1부로 끌어올리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이래, 82년 독일 함부르크를 3대 0으로 꺾고 스웨덴 사상 최초로 유럽축구연맹(UEFA)컵을 석권하면서 일약 스타감독으로 떠올랐다.

탁월한 지도력 왕년의 뛰어난 수비수



잉글랜드가 유로2000에서의 부진과 월드컵 예선 초반의 침체 등 위기를 겪으며 축구 종구국의 자존심 대신 실리를 택한 것은 분명 성공작이었다. 66년 월드컵 우승 주역이자 잉글랜드의 축구영웅인 보비 찰튼 경 등은 ‘제자의 나라’ 스웨덴에서 구세주를 영입한다는 데 반대했지만, 에릭손은 지난해 2월28일 스페인과의 데뷔전에서 3대 0 쾌승을 거둬 반대 여론을 일시에 잠재웠다. 지난해 9월1일 독일에 5대 1 대참패를 안겨주며 월드컵 직행 티켓을 예약했을 때는 기사 작위를 수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부임 이후 8승3무2패, 승률 73.1%.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연봉 300만 파운드·한화 60억원)이 아깝지 않은 것은 바로 그가 추구하는 실리축구 때문이다. 에릭손은 “1년 남짓 맡는 팀에서 다른 스타일을 시도할 순 없다. 월드컵에선 팀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4-4-2시스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잉글랜드 특유의 빠른 역공을 더욱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세계 최고의 윙플레이어인 베컴이 부상으로 본선 출전이 불투명해지자, 에릭손 감독은 4월17일 파라과이전에서 미드필더 제라드를 오른쪽 날개로 변신시켜 오언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선회하는 등 치밀한 용병술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히든카드를 찾아 2, 3부리그 경기까지 매주 수차례 현장을 찾는 ‘발로 뛰는 명장’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동거중인 변호사와 스웨덴 출신 기상 캐스터 사이의 삼각관계를 캐는 과열 보도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나의 프라이버시가 잉글랜드의 우승 도전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당당히 해명한 후 그에 대한 영국 국민의 신뢰는 더욱 높아져 가는 분위기다.

반면 이탈리아는 대표팀에서 활약한 스타의 카리스마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유로2000 결승에서 프랑스에 골든골로 패한 후 ‘전술의 대가’ 디노 조프 감독은 비난의 화살을 받고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이제는 클럽 무대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선 베테랑에게 맡기자’는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월드컵 도전의 지휘봉이 향한 곳이 바로 노장 트라파토니.

이전에도 그는 꾸준히 하마평에 올랐다. 문제는 그가 미드필더까지 수비 중심으로 운용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카테나치오(빗장수비)에 안주하려 드는 전통주의자’란 평가를 받곤 했다는 것. 이런 우려는 2002년 7월 부임 이후 11승4무1패, 승률 82.3%라는 성적을 거두며 깨끗이 사라졌다.

80년대 프랑스의 필드사령관 플라티니와 골게터 로시를 내세워 유벤투스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트라파토니 감독은 3-4-1-2 포메이션의 바탕 위에 토티라는 ‘넘버 10’의 플레이메이커를 활용해 비에리, 델피에로, 인자기, 델베키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파워를 지원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말디니-네스타-칸나바로로 이어지는 세계 최고의 수비 진용에 공격력만 살아나 준다면 아주리 군단의 통산 네 번째 대권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축구 종가의 명예 회복을 위해 대리전을 펼치는 에릭손. 여권위조, 인종차별, 재정파탄, 승부조작 등 일련의 악재 속에,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에 2년 연속 출전 좌절까지 겪은 이탈리아 축구의 위기를 해결하러 나선 트라파토니. 2002 월드컵에서 탁월한 지략과 리더십을 보여줄 두 사람을 잊지 말고 지켜보자.





주간동아 333호 (p70~71)

< 김한석/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 han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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