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발’과 ‘첼로’를 보고 있으면 ‘장화, 홍련’ 베끼기의 장점과 한계가 모두 드러난다. 작가나 감독이 자신이 무엇을 베끼고 있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창조성을 그 안에 투여한다면, 영화는 비록 다른 영화를 베꼈더라도 어느 정도 완성도를 확보할 수 있다(지난주에 ‘가발’의 장점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가 무얼 하는지 모르면서 열심히 베끼기만 한다면 ‘첼로’ 같은 영화가 나온다.
‘첼로’의 주인공은 왕년엔 촉망받는 첼리스트였지만 지금은 대학 강사로 일하는 홍미주다. 그녀는 옛 학교 친구 동생의 귀국 독주회 소식을 들은 뒤로 이상한 일들을 겪는데, 그 현상들이 극에 달하는 순간 홍미주의 가족들은 바흐의 샤콘(이 영화를 위해 첼로곡으로 편곡했다)의 멜로디가 흐르는 동안 한 명씩 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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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얼 하는지 모르고 있다. 굉장히 똑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이 다루는 이야기는 10년 묵은 광고의 카피처럼 뻔하다. 죄의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의 드라마와 심리묘사는 심지어 ‘여고괴담’ 시리즈도 오래전에 버린 낡은 공식의 초라한 복제판에 불과하다. 뻣뻣한 대사들과 그보다 더 뻣뻣한 인물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캐스팅 역시 문제가 많다. 성현아는 기술적으로는 무리 없는 연기를 보여주지만 공포영화에는 맞지 않는다. 공포와 죄의식의 감정을 폭발하듯 터뜨리기엔 이 배우의 얼굴은 아직도 무디다. 조연들은 그보다 더 안 좋은데, 이는 배우들의 기량 때문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연기 지도에 더 큰 문제가 있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창의성과 스타일이 제거된 ‘거울 속으로’처럼 보인다.
그러나 칭찬해줄 것도 있다. 40일 만에 모든 촬영을 마친 기민함과 계획력이다. 그렇게 해서 절약한 시간을 각본과 아이디어를 점검하는 데 투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