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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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고추장’ 상표 분쟁의 교훈

  • 김재수 재미 변호사·연세대 국제비즈니스법 겸임 교수 jskim4u21@hotmail.com

    입력2005-08-19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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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 고추장’ 상표 분쟁의 교훈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혐한류(嫌韓流)’라는 만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혐한류’는 한국에 대한 왜곡된 지식과 감정을 담은 만화인데 일본에서 꽤 잘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류’를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일본 및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예의 ‘한류 위기론’이 또다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한류’는 주로 한국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또 ‘한류’는 연예계 등 민간 차원에서 흘러가고 있어서 일부에서는 ‘정부나 관에서 신경 쓰지 않는 게 한류를 돕는 길’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얼마 전 한국의 식품회사인 대상 미국지사와 재미동포가 운영하는 아씨마켓이 메릴랜드 주 연방지방법원에서 ‘순창 고추장’이라는 상표사용권을 둘러싸고 분쟁 끝에 재판까지 벌인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아씨마켓이 판매한 고추장은 중국산이었다. 아씨마켓은 순창이란 ‘순수한 창(pure spear)’이란 의미며, 이런 뜻으로 ‘순창 고추장’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 상표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비록 고추장이 중국산이라고 하더라도 ‘순창 고추장’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상은 일반 고객들이 아씨마켓이 주장하는 ‘순수한 창’ 고추장과 전라도 순창지역에서 생산되는 대상의 ‘순창 고추장’을 혼동할 수 있기 때문에 아씨마켓이 ‘순창 고추장’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양측 주장이 맞서면서 아씨마켓은 대상의 ‘순창 고추장’을 판매하던 H가게를 상표권 침해로 제소하고, 대상이 ‘순창 고추장’이라는 상표를 더는 미국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대상은 아씨마켓을 제소하고, 법원에 방해금지 명령을 신청했으며, H가게가 입은 피해 및 변호사 비용을 법원에 청구했다. 대상은 이에 따른 소송 비용만으로 약 200만 달러 가까운 금액을 지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메릴랜드 주 연방법원은 ‘순창은 조선시대 때부터 왕에게 고추장을 진상하던 고을의 지명이며, 따라서 당연히 한국인들은 ‘순창’이라는 말을 들으면 ‘순수한 창’으로 이해하지 않고 ‘전라도 순창’이라는 지명을 연상한다. 그러므로 아씨마켓 측의 ‘순창 고추장’ 상표권은 당연히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혐한증 비난보다 한국의 음악·영화·음식 보호가 먼저

    그러나 법원은 대상이 2년간이나 끌어온 아씨마켓과 H가게와의 분쟁에 충분히 개입해 ‘순창 고추장’의 상표권 주장을 할 수 있는 처지였음에도 수수방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H가게가 입은 손해를 아씨마켓에 요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더구나 대상은 200만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아씨마켓이 중국산 고추장을 ‘순창 고추장’으로 판매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적극적인 명령 신청은 하지 않고, 단지 대상의 ‘순창 고추장’ 상표 사용을 아씨마켓 측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극적인 판결을 구했다.

    현재 미국 내에는 ‘순창 고추장’처럼 마치 한국산 상품인 듯 국적을 속이고 판매되는 것들이 많다. ‘영광 굴비’ ‘마산 액젓’ ‘주문진 오징어’ 등 이름만 들으면 한국산인 듯 보이나 실제 내용물은 태국이나 중국 등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고급 이미지로 승부해야 하는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도 이 같은 싸구려 가짜 한국 식품이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게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 같은 부당 상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분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면 외국의 상표권 및 저작권 보호 제도와 사법 제도에 대한 더욱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혐한증’을 비난하기 전에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와 한국 음식의 맛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한류’를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할 일이다.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권리 침해자의 ‘아량’을 바라는 억울한 ‘순창 고추장’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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