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편 끝자락, 폴란드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브리스코브 핀켄헤르트. 거주 인구가 3000여명에 불과한 이 작은 마을에 지난 주말부터 전 독일 매스컴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비네라는 39세 여인이 자신이 낳은 신생아를 무려 9명이나 살해, 유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독일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주위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현재도 네 자녀의 어머니
10년 넘게 은밀히 감춰졌던 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것은 7월31일이었다. 사비네의 부모가 사는 집의 청소 일을 해오던 사람이 뒷마당 창고 옆에 있는 커다란 수조 안의 모래를 퍼내다가 한 신생아의 유골을 발견했던 것. 그는 곧바로 경찰에 이 사실을 신고했고, 경찰은 집과 마당을 샅샅이 살펴 8구의 유골을 추가로 찾아냈다. 화분이나 양동이, 항아리 등이 시신 은닉 장소로 사용됐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사비네를 지목해 체포했고, 그는 혐의 내용 일부를 시인했다.
소식을 접한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비네는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늘 친절한 미소로 인사하던 여인이었다. 현재 네 자녀의 어머니이자 지금도 임신 6개월인 그가 9차례나 유아를 살해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비네와 동창이라는 한 여인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 여인은 학창 시절부터 사비네를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그가 정숙하지 못했고 일찍부터 남자관계가 복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사 결과, 사비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는 스무 살이 안 된 나이에 옛 동독 비밀경찰의 일원이었던 올리버 씨와 결혼해 세 자녀를 내리 출산했다. 그러나 사비네와 남편은 자주 다투는 편이어서 별거와 동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2001년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고, 올해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현재 각각 18, 19, 20세인 세 자녀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사비네는 결혼 후 브란덴부르크 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서민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했으나 그곳에서도 2003년 강제 퇴거당했다. 이후 일정한 거주지 없이 부모 소유의 공터에 세워둔 캠핑용 차량 안에서나, 아니면 새로 사귄 남자친구의 집을 옮겨 다니는 식으로 생활해왔다. 그는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치과 간호사로서의 수련을 받았지만 안정된 직장은 얻지 못했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보험외판원, 콜센터 등 12개의 직장을 전전했으며 현재는 무직 상태다.
사비네는 6월21일 처음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동거 중인 남자와 한밤중에 큰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 바람에 견디지 못한 이웃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남녀 사이에서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던 한 살 난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경찰은 아이를 임시로 할머니에게 맡기고, 사비네와 동거 중인 남자는 연행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구류했다. 그리고 사비네를 아동학대 혐의로 어린이 보호관청에 고소했다. 이 안건은 아직 처리 중인데, 그러던 차에 사비네의 부모가 사는 브리스코브 핀켄헤르트 집 마당에서 유아의 뼈들이 쏟아져 나오자 유력한 용의자로 그를 지목했던 것이다.
살해된 아이들은 1988년부터 99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모두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했다. 사비네의 진술에 따르면 아이들의 아빠는 전남편이었다. 수사의 핵심은 아이들의 죽음이 과연 그가 의도한 것이었나,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의도성 여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기 때문.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 사비네는 어떻게 자신이 아이들에게 폭행을 가할 수 있겠느냐며 절대로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처음 두 아이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켜 죽인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해명이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사비네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해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에 가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해산의 고통을 술로 이겨냈다. 거의 만취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고, 술에서 깰 때쯤이면 이미 죽어 있는 아이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얼른 이불로 덮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화분 속에 묻은 뒤 그 화분을 자신의 거처 발코니에 세워놓았다. “아이를 좀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서”였다. 발코니의 공간이 부족하게 되자 화분 등을 자신의 부모 집 뒷마당으로 옮겨놓았던 것이다.
‘파괴된 가족과 인간’ 언론 질타
산모가 신생아를 살해한다는 엽기적인 사건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신생아 살해(Neonatizid)’라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통 여자가 뜻하지 않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 그는 자기 신체의 변화를 부인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 한다. 예컨대 입덧은 무엇을 잘못 먹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배가 점점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더 격렬하게 운동해 살을 빼려 하는 식이다. 그러다가 해산하면, 태어난 아이를 보고 놀라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1999년 한 70세 노파가 49년부터 68년 사이에 8명의 아이를 생후 몇 달 사이에 죽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정신적으로 쇠약한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데, 사비네의 경우 불안정한 직장과 파탄 난 결혼 생활, 알코올 중독 등이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사비네가 임신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 또한 무척 놀라운 일이다. 남편이나 가족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외딴곳에 떨어져 산 것도,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사건의 담당 검사인 안네 바겐다는 “사비네가 오히려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심적 부담이 덜어지게 되어서 다행이라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가 누구의 양해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마음 졸이며 살았는지 짐작케 하는 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독일 언론들은 현대사회 속 소외를 논하며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현대사회의 익명성이 이런 기막힌 현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개탄했고,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비근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파괴된 가족과 인간관계를 다뤘다.
한편 브란덴부르크 주의 내무장관인 쇤봄은 “내 기억으로 독일 역사상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은 없었던 것 같다”고 하면서 느닷없이 “옛 동독 공산당이 전 국민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든 게 이런 끔찍한 사건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기민련 소속인 쇤봄은 이 사건을 통해 요즘 날로 세를 불리고 있는 좌파연합을 견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좌파연합의 한 축인 민사당(PDS)이 옛 동독 공산당의 후신이기 때문이다. 9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현재 기민련은 전체 지지율 42%를 기록하면서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유독 옛 동독 지역에서는 좌파연합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있다. 기민련 당수이자 유력한 총리 후보인 앙겔라 메르켈이 동독 출신임에도 말이다.
현재도 네 자녀의 어머니
10년 넘게 은밀히 감춰졌던 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것은 7월31일이었다. 사비네의 부모가 사는 집의 청소 일을 해오던 사람이 뒷마당 창고 옆에 있는 커다란 수조 안의 모래를 퍼내다가 한 신생아의 유골을 발견했던 것. 그는 곧바로 경찰에 이 사실을 신고했고, 경찰은 집과 마당을 샅샅이 살펴 8구의 유골을 추가로 찾아냈다. 화분이나 양동이, 항아리 등이 시신 은닉 장소로 사용됐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사비네를 지목해 체포했고, 그는 혐의 내용 일부를 시인했다.
소식을 접한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비네는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늘 친절한 미소로 인사하던 여인이었다. 현재 네 자녀의 어머니이자 지금도 임신 6개월인 그가 9차례나 유아를 살해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비네와 동창이라는 한 여인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 여인은 학창 시절부터 사비네를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그가 정숙하지 못했고 일찍부터 남자관계가 복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사 결과, 사비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는 스무 살이 안 된 나이에 옛 동독 비밀경찰의 일원이었던 올리버 씨와 결혼해 세 자녀를 내리 출산했다. 그러나 사비네와 남편은 자주 다투는 편이어서 별거와 동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2001년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고, 올해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현재 각각 18, 19, 20세인 세 자녀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사비네는 결혼 후 브란덴부르크 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서민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했으나 그곳에서도 2003년 강제 퇴거당했다. 이후 일정한 거주지 없이 부모 소유의 공터에 세워둔 캠핑용 차량 안에서나, 아니면 새로 사귄 남자친구의 집을 옮겨 다니는 식으로 생활해왔다. 그는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치과 간호사로서의 수련을 받았지만 안정된 직장은 얻지 못했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보험외판원, 콜센터 등 12개의 직장을 전전했으며 현재는 무직 상태다.
사비네는 6월21일 처음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동거 중인 남자와 한밤중에 큰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 바람에 견디지 못한 이웃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남녀 사이에서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던 한 살 난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경찰은 아이를 임시로 할머니에게 맡기고, 사비네와 동거 중인 남자는 연행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구류했다. 그리고 사비네를 아동학대 혐의로 어린이 보호관청에 고소했다. 이 안건은 아직 처리 중인데, 그러던 차에 사비네의 부모가 사는 브리스코브 핀켄헤르트 집 마당에서 유아의 뼈들이 쏟아져 나오자 유력한 용의자로 그를 지목했던 것이다.
살해된 아이들은 1988년부터 99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모두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했다. 사비네의 진술에 따르면 아이들의 아빠는 전남편이었다. 수사의 핵심은 아이들의 죽음이 과연 그가 의도한 것이었나,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의도성 여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기 때문.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 사비네는 어떻게 자신이 아이들에게 폭행을 가할 수 있겠느냐며 절대로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처음 두 아이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켜 죽인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해명이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사비네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해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에 가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해산의 고통을 술로 이겨냈다. 거의 만취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고, 술에서 깰 때쯤이면 이미 죽어 있는 아이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얼른 이불로 덮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화분 속에 묻은 뒤 그 화분을 자신의 거처 발코니에 세워놓았다. “아이를 좀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서”였다. 발코니의 공간이 부족하게 되자 화분 등을 자신의 부모 집 뒷마당으로 옮겨놓았던 것이다.
‘파괴된 가족과 인간’ 언론 질타
산모가 신생아를 살해한다는 엽기적인 사건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신생아 살해(Neonatizid)’라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통 여자가 뜻하지 않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 그는 자기 신체의 변화를 부인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 한다. 예컨대 입덧은 무엇을 잘못 먹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배가 점점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더 격렬하게 운동해 살을 빼려 하는 식이다. 그러다가 해산하면, 태어난 아이를 보고 놀라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1999년 한 70세 노파가 49년부터 68년 사이에 8명의 아이를 생후 몇 달 사이에 죽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정신적으로 쇠약한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데, 사비네의 경우 불안정한 직장과 파탄 난 결혼 생활, 알코올 중독 등이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사비네가 임신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 또한 무척 놀라운 일이다. 남편이나 가족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외딴곳에 떨어져 산 것도,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사건의 담당 검사인 안네 바겐다는 “사비네가 오히려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심적 부담이 덜어지게 되어서 다행이라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가 누구의 양해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마음 졸이며 살았는지 짐작케 하는 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독일 언론들은 현대사회 속 소외를 논하며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현대사회의 익명성이 이런 기막힌 현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개탄했고,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비근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파괴된 가족과 인간관계를 다뤘다.
한편 브란덴부르크 주의 내무장관인 쇤봄은 “내 기억으로 독일 역사상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은 없었던 것 같다”고 하면서 느닷없이 “옛 동독 공산당이 전 국민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든 게 이런 끔찍한 사건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기민련 소속인 쇤봄은 이 사건을 통해 요즘 날로 세를 불리고 있는 좌파연합을 견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좌파연합의 한 축인 민사당(PDS)이 옛 동독 공산당의 후신이기 때문이다. 9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현재 기민련은 전체 지지율 42%를 기록하면서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유독 옛 동독 지역에서는 좌파연합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있다. 기민련 당수이자 유력한 총리 후보인 앙겔라 메르켈이 동독 출신임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