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방송이 마지막 전파를 쏜 2004년 12월31일 노조 조합원들이 고별행사에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뿐 아니라 SBS의 영역인 서울로도 전파를 송신할 가능성이 있다.”
A일보 경영진은 공중파 방송 진출과 관련해 “청와대가 지역민방 광역화에 우호적이다”는 태스크포스팀의 보고를 받기도 했다. 서울에도 주파수를 쏠 수 있게 되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도권 주파수(iTV)’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
당초 3개 신문사와 대기업도 관심
A일보 외에도 다른 언론사와 기업이 iTV에 눈독을 들였다. SBS와 경쟁하는 ‘서울권’ 제2민방(民放)이 세워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장기적으로는 가능하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올드미디어 채널을 확보하면 운신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다.
iTV 주파수에 관심을 가진 회사는 보광, 유한양행, CJ, 태광 등 기업과 중앙일보사, 국민일보사, 세계일보사, CBS, MBC 등 언론사였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도 참여를 선언했다. 그런데 일부 회사들이 물러나면서 주파수 쟁탈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방송문화진흥회(MBC)+경기지역새방송창사준비위원회(옛 iTV 희망노조 조합원들, 이하 창준위), CBS+창준위, 중기협, 비대위(노조에 반대한 iTV 직원들의 모임)의 4파전으로 압축된 것이다. MBC는 공식적으로 참여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옛 노조원들이 주도하는 창준위는 공익적 민간자본을 유치해 경인방송을 되살리겠다는 MBC가 파트너가 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다(뒷면 참조).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하 언노련)의 지지를 받는 창준위엔 진보적 언론인과 개혁적 사회·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창준위는 MBC의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들을 접촉해 경인지역 민방 참여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C가 아니라 방문진을 택한 건 새 방송사가 MBC의 자회사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방문진 이사인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창준위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최문순 사장의 ‘MBC의 미래 비전과 전략, ONE MBC, WORLD WIDE MBC’ 문건에 따르면 MBC는 방송 환경의 변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 긴장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MBC가 과점 체제에서의 지배적 위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최 사장은 문건에서 뉴미디어 진출과 채널 확대, 광고 외적 수입의 확대 등을 대응 방향으로 내걸었다.
최 사장은 또 문제 해결 방향으로 △임금삭감 △단일호봉제 개선 △팀제 도입△프로그램 중심의 인사 등을 제시했으나, 개혁 작업이 뜻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는 MBC에 iTV 주파수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CBS는 타 방송사 반발이 ‘걸림돌’
그러나 경인지역 민방 재허가 문제를 결정하고 사업자를 공모할 방송위원회가 방문진에 iTV 주파수를 주는 것은 부담이 크다. 특히 광역화가 이뤄져 MBC2의 형태로 경인지역 민방이 운영되는 건 실현 가능성이 낮다. 옛 노조원들은 방문진(MBC)을 파트너로 선호하고 있지만 광고의 쏠림을 지적하는 인쇄 매체의 반발 등 걸림돌이 적지 않다.
CBS는 지상파 방송 진출 의도를 벌써부터 공식화했다. CBS는 옛 iTV 구성원들을 100%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그러나 CBS 또한 지상파 방송 진출이 요원해 보인다. 특정 종교 채널에 국가의 기간 전파를 줄 수 없다는 논리를 뒤집기 어려워서다. 불교 등 다른 종교에서 반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CBS는 중기협 등과 컨소시엄 구성에 관한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중기협은 MBC와 CBS 같은 걸림돌은 없다. 또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명목을 내세울 수도 있다. 중기협은 “iTV 주파수 인수 협상에 중소기업들과 연합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1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중소기업 전용 케이블TV 채널 확보를 건의했다가 “이왕이면 좀 크게 생각하라”는 덕담을 듣고 고무됐다고도 한다. 그러나 중기협은 CBS와의 컨소시엄 구성엔 회의적이다. 걸림돌을 가진 CBS와 함께 하기보다는 ‘단독으로’ 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또 다른 한 축인 옛 iTV 직원들의 모임인 비대위는 옛 노조가 iTV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본다. iTV 재허가 거부가 잘못됐다면서 소송을 낸 비대위는 iTV가 되살아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9월 초 1심 결정이 나오는 행정소송에도 기대를 거는 눈치다. iTV는 아날로그방송 재허가를 받지 못했을 뿐 디지털방송과 라디오방송은 전파 송출이 가능하다. 디지털방송은 비대위의 ‘전가의 보도’로도 보이지만, 방송위가 이마저도 재허가를 해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방송위의 고민도 깊다. 8월 또는 12월에 결정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으나 이해관계가 복잡해 해를 넘길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방송과 통신이 빠르게 융합하면서 미디어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의 올드미디어는 어디로 갈 것인가. 경인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들은 방송위에 공모를 촉구하고 있다. 방송위의 부담은 더욱 커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