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C 왼쪽 날개 밑에 하푼과 청상어를 달 수 있는 세 개의 포드가 있다.
이 물음에 ‘해군 항공’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해군을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해군에 무슨 항공이 있어?”라고 묻는 사람이라면, 미국 항공모함에서 뜨고 내리는 전투기(함재기)를 상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항모 전투기는 미국 해군에나 있는 것이지 한국 해군에 무슨 항공이야’라고 따지는 사람에게는 우리 구축함에 실려 있는 링스 헬기나 수상한 선박과 잠수함을 추적하는 대잠초계기 P-3C를 생각해보라고 답하고 싶다. 작긴 하지만 한국 해군에도 항공이 있다.
사고 대비 주황색 조종복 착의
지난 7월 독도함 진수로 때 아닌 경(輕)항모 논쟁이 벌어졌다. 독도함은 중형 헬기인 경우 최대 15대까지 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배에 어떤 헬기를 탑재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된 것이 없다. 이유는 헬기 예산은 잡아놓지 않고 독도함부터 지었기 때문인데, 헬기도 없는 독도함을 놓고 ‘경항모냐 아니냐’ 싸우는 것은 우물가에서 ‘묽은 숭늉, 진한 숭늉’ 다툼을 하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다.
육군의 여단급 부대를 해군에서는 전단, 연대급 부대는 전대라고 한다. 해군 항공부대의 이름은 제6항공전단(전단장 임철순 준장)인데,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8월8일 경북 포항에 있는 6전단을 찾았다. 항공기는 크게 고정익기와 회전익기(헬기)로 나뉘는데, 6전단에는 고정익기로 구성된 61전대와 회전익기로 편성된 62전대가 있다.
6전단장 임철순 준장.
그러나 61전대(전대장 김일환 대령)는 한곳에 고정익기를 모아놓고 있다. 61전대는 미국 세스나사에서 제작한 캐러번(Caravan)과 록히드 마틴사에서 생산한 P-3C를 갖고 있는데, 두 항공기는 모두 프로펠러 엔진을 달고 있다. 캐러번은 주로 훈련용으로 쓰이므로, 61전대의 주 전력은 P-3C가 맡는다.
공군 조종사나 육군의 헬기 조종사는 국방색 조종복을 입는다. 그런데 해군 항공 조종사는 선명한 주황색 조종복을 입는다. “왜 이렇게 조종복 색깔이 화려하냐”고 묻자, 그들은 “사고로 항공기가 바다에 불시착할 경우에 조종사를 쉽게 발견해 구조할 수 있도록 화려한 색깔의 조종복을 입는다”고 대답했다.
P-3C에서 내려다본 독도.
63.4t의 무게를 가진 P-3C는 부드럽게 이륙했다. 이정복 소령이 조종간을 잡은 P-3C는 호미곶을 지나 동해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금방 바다는 시퍼레졌고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잔물결에 햇살이 반사되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동승한 62대대장 심재옥 중령이 독도 상공에 도달했다고 알려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독도는 ‘이런 곳에 어찌 섬이 있을까’ 하는 강한 경외감과 함께 다가왔다.
P-3C의 위력이 드러난 것은 잠시 뒤였다. 독도 주변을 두어 바퀴 돌 무렵 울릉도에 있는 해군 레이더 기지에서 독도 동쪽을 항해하는 선박의 정체를 알아달라는 연락이 날아왔다. 함정의 최고 속도는 30노트(약 시속 56㎞)에 불과하지만, P-3C는 최대 405노트(약 시속 750㎞), 보통은 205노트(약 시속 380㎞)로 날아갈 수 있다.
P-3C에서 레이더로 함정을 찾는 승무원을 비음향조작사라고 한다. 육지에 있는 레이더는 수상한 함정이 섬 뒤로 돌아가면 속수무책이지만, P-3C는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므로 섬 그늘에 숨은 수상한 배를 쉽게 찾아낸다. 때때로 P-3C는 육지에 있는 레이더기지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감으로써, 육지의 레이더로는 포착할 수 없는 먼 거리의 물체를 탐지하기도 한다.
음향조작사 등 최고의 승무원들
P-3C의 레이더는 목표물을 점이 아니라 형상으로 잡아낸다. 사진처럼 선명한 형상은 아니고 탐지한 선박의 윤곽은 보여줄 수 있는 정도이지만, 노련한 비음향조작사는 이 자료만으로도 어선과 군함, 적 군함일 경우 어떤 형태의 군함인지를 구별해낸다고 한다.
위험 선박에 다가간 함정은 아무리 중무장을 했더라도 총알보다는 빠르지 못하므로 일정 거리 밖에서 상대를 검색한다. 그러나 비행기는 ‘재빠르므로’ 상대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살펴볼 수가 있다. 이때 상대가 적군으로 밝혀져 강력한 저항을 하면 어쩔 것인가. P-3C는 유사시를 위한 중무장을 갖추고 있어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전투함에서 적함을 공격하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는 하푼(harpoon·작살이라는 뜻) 미사일이다.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에는 이 미사일이 8발 탑재되고, 한국 공군의 대표 전력인 KF-16에는 두 발이 탑재되는데, P-3C는 좌우 날개에 세 발씩 도합 6발을 장착한다. 적의 저항이 거세면 P-3C는 재빨리 적함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하푼을 발사해 상대를 수장시킨다.
동해 작전 비행을 마치고 귀환하는 P-3C 승무원들(위). P-3C 내부. 승무원은 자기가 맡은 계기판 앞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소노부이 투하를 준비하는 무장통제사. P-3C 안에 있는 좁은 화장실(아래 왼쪽부터).
음향조작사가 물속의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무장통제사가 ‘소노부이(sonobuoy·sono는 음파를 뜻하는 접두어이고, buoy는 부표를 뜻한다)’를 투하해줘야 한다. 소노부이에는 물속에서 나오는 소리만 듣는 것과 물속으로 강한 음파를 쏜 다음 그 반사파를 탐지하는 것, 수심별로 수온을 재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음파는 수온에 따라 전파 속도가 달라지므로 잠수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면 먼저 수온부터 측정해야 한다.
소노부이는 길이 1.5m쯤 되는 길쭉한 원통모양을 하고 있다. 울릉도 상공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무장통제사는 기내에 실어놓은 소노부이를 꺼내 투하 준비를 했다. P-3C는 소노부이를 음향조작사가 원하는 곳에 정확히 떨어뜨리는 장치가 있다. 잠시 후 ‘퍽’하는 소리와 함께 소노부이가 차례로 투하되기 시작했다. 투하된 소노부이는 부착된 안테나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P-3C로 전송한다.
그때부터 바빠지는 것은 음향조작사이다. 이들은 먼저 수온을 분석해 바다 속 상황을 파악하고 이어 소노부이가 잡아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동해는 결코 조용한 바다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쿠릴해류라는 한류와 쿠루시오 해류라는 난류가 마주치는데, 두 해류가 만나면 바로 섞이지 않고 둥글게 돌아가면서 거대한 ‘물 덩어리(水塊)’를 만든다.
보통의 물은 음파를 통과시키지만 물 덩어리만은 소노부이에서 쏜 음파를 반사한다. 고래도 심심찮게 음파를 반사한다. 때문에 음향조작사는 반사돼오는 음파가 물 덩어리와 접촉한 것인지 고래와 접촉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잠수함을 포착한 것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음향조작사는 예민한 귀를 가진 섬세한 사람이 맡는다.
동해 바다를 소란스럽게 하는 또 하나의 불청객은 수많은 어선과 상선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음이다. 소노부이는 어선에서 틀어놓은 CD 플레이어의 음악도 잡아낸다. 포항과 울산 같은 대도시에서 나오는 육지 소음도 만만찮다. 문제는 이러한 소음 덩어리 속에 적 잠수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음향조작사는 이중에서 잠수함 소리를 찾아내야 한다.
97년 취재진을 태운 P-3C는 서해에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중국 해군의 명(明)급 핵추진 잠수함을 찾아낸 적이 있었다. 명급 잠수함은 모종의 작전을 마치고 한-중 경계선인 공해상을 따라 북상하다 탐지됐는데, P-3C는 연속해서 소노부이를 투하해 명급 잠수함의 항적을 정확히 추적했다. 결국 중국 잠수함은 탐지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 다시 부상해 중국 수역으로 들어갔다.
유사시 적 잠수함을 발견한 P-3C는 어떻게 공격하는가. P-3C는 양날개에 경어뢰를 탑재한다. P-3C에서 투하된 경어뢰는 30노트 이상의 속도로 적 잠수함을 향해 달려가 ‘박치기’를 하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잠수함에 금이 가면, 그 틈으로 바닷물이 새 들어가 잠수함은 수장되고 마는 것이다. 현재 P-3C는 미국제 Mk-44 경어뢰를 달고 있으나 조만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경어뢰 청상어가 양산되면 청상어를 탑재할 예정이다.
작전에 들어간 P-3C를 통제하는 것은 전술통제관이다. 조종사와 부조종사, 항공기관사는 항공기 운항에만 신경을 쓰고, 음향조작사와 비음향조작사·무장통제사, 통신을 담당하는 항법통신관, 그리고 P-3C에 탑재된 모든 전자 장비에 대한 긴급 정비를 지원하는 전자통제사는 전술통제관의 지시를 받아 전투에 돌입한다.
경제수역 방어 P-3C가 훨씬 효과적
어느덧 시계는 정오를 넘기고 있었다. 대대장인 심재옥 중령이 식사를 하자고 불렀다. P-3C에는 조그만 주방시설이 있어 승무원들은 모여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실 수 있다. 그러나 대대장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주방으로 오지 않았다. 이유는 임무 때문이었다. 조종사들은 조종실에서, 전술통제관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각자가 맡고 있는 계기판 앞에 앉아서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화장실에 가는 횟수를 줄여야 하니 도시락은 국물 없이도 먹을 수 있는 김밥이 가장 좋다고 한다.
P-3C를 탄 지 다섯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독도와 울릉도를 보았을 때의 환호와 수상한 선박을 검색하고 소노부이를 투하할 때의 긴장감은 잊혀지고 피로감과 함께 지루함이 밀려왔다. 지루함은 P-3C를 탈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승무원들은 수상함과 잠수함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
30여분 후 P-3C는 포항공항에 착륙했다. 자신의 보금자리로 가던 P-3C가 유도로에 멈춰 섰다. 웬일인가 했더니, 갑자기 유도로 좌우에서 강력한 분수가 솟아올라 P-3C를 덮어버렸다. 심 중령은 웃으면서 “바닷바람에 섞여 있는 염분을 지우기 위해 린스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P-3C에서 내린 취재진도 곧바로 샤워장으로 달려가 비행 피로를 씻어내는 ‘린스’를 했다.
200해리로 넓어진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함정으로 지킨다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경제수역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려면 함정보다는 P-3C가 제격이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무려 105대의 P-3C를 갖고 있는데, 조만간 P-3C 후속기를 자체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단 여덟 대의 P-3C를 갖고 있다. 조만간 8대를 더 구입해 16대로 늘릴 것이라고 하나 일본을 따라가려면 그야말로 족탈불급(足脫不及)이 아닐 수 없다. 임철순 6전단장은 적어도 P-3C가 40대는 있어야 경제수역을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상함과 잠수함 분야는 어느 정도 틀을 잡은 만큼 해군은 항공 세력 육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축적되지 않으면 항공모함에 탑재하는 함재기 세력도 배양될 수 없다는 것이 해군을 아는 모든 사람들의 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