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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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도전은 정의원의 오래된 꿈”

주변 인사들이 말하는 정몽준의 숨은 이야기 “신세대 카페 찾는 낭만 … 참모들에게 종종 시말서 요구”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10-15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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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권 도전은 정의원의 오래된 꿈”
    정몽준 의원은 ‘신비스러운 정치인’이다. 여론조사에서 20% 이상의 지지를 받는 유력한 대통령 예비후보이면서도 그의 주변에 관한 정보는 ‘진공’ 상태다. 매스컴 노출이 가장 많은 정치인 중 한 명이지만 동시에 대중으로부터 엄격히 차단된 인물이기도 하다. 정의원에게 호감이 있다고 말하는 국회의원들은 많다. 그러나 정의원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정몽준 계보는 한 명도 없다.

    ‘주간동아’는 정치인 정몽준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정치권 인사 A씨로부터 정의원과 관련된 공개되지 않은 일화들을 들었다. A씨와 정의원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본 대통령 예비후보 정몽준의 감춰진 인간적 면모, 자금, 조직, 인맥 등은 다음과 같았다.

    대선 출마 의지 정말 있나

    A씨에 따르면 정의원은 측근에게 종종 “국회의원의 3분의 1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 수준이 높아진다”고 말해왔다. “당선이 안 돼도 (대선에 출마해)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는 말도 해왔다고 한다. 정의원은 오래 전부터 대권을 꿈꿔왔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강한 의지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동 정씨 종친회 소속 정호선 전 의원은 지난 5월5일 광주에서 열린 하동 정씨 종친회 풍경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정의원은 “대선 출마는 종친회 어른들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정호선 전 의원은 “어른들의 뜻은 물론 출마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원은 “공직이나 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피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철학자 세네카의 문장도 자주 인용한다.



    A씨는 “정의원의 부인 김영명 여사는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딸로서, 미국 웨슬리대학을 졸업해 미모와 지성을 갖췄다. 지역구인 울산에선 사실 정의원보다 김여사의 인기가 더 높다. 영부인 이미지로선 대선주자 후보 부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입당이냐 신당이냐

    수개월 전 정의원의 민주당 입당설이 언론에 보도됐다. 정의원이 한 참모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 참모는 “민주당에 안 간다고 하면 기사가 안 되니까…”라고 답했다. 그러자 정의원은 “민주당엔 안 간다고 확실하게 기자들에게 알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의원 주변에 따르면 정의원은 민주당 입당이 아닌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실행 작업이 늦어지는 것은 ‘주변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의도로 추정된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동철 박사는 “연구원이나 현대중공업 조직이 정몽준 의원의 대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민국당 김동주 최고위원은 “정의원 행보에 관심은 많지만 현재로선 정의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정의원이 갖고 있는 정치조직은 의원회관 보좌진과 광화문 후원회 사무실 두 곳이 전부다.

    그러나 ‘잠재적 조직력’은 어느 대선주자 못지않다. A씨는 “정의원은 보름이면 정당을 창당할 전문가 집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정의원 본인이 92년 국민당 창당을 주도하는 등 신당 창당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엔 수십여명의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파견근무하고 있다. 주로 조직, 국제행사, 홍보 업무를 맡아왔다. 정의원이 대선 출마를 위해 축구협회장 자리를 내놓는다면 이들이 신당 창당 때 동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현대중공업엔 92년 국민당 창당 작업을 했던 정치권 인사 1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또한 ‘즉시 투입’이 가능한 전력이다. 민주당 이인제 의원 캠프에 있던 한 정치인은 최근 정의원측에 신당 창당과 대권출마 작업을 돕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정의원은 정치권, 학계, 재계, 문화예술계, 시민단체 등 각계에 원군세력이 있다.(표 참조) 정의원은 인맥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 ‘주간동아’는 정의원이 자신과 친분 있는 유력 인사들의 이름과 직책, 연락처를 가나다순으로 기록한 주요 지인 수첩을 만들어서 이용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략 중앙고 동문, ROTC 동문, 정씨 종친회, 옛 국민당 참여 인사들이 정의원의 4대 지지그룹으로 분류된다.

    정씨 종친회 관계자는 “김, 이, 박씨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성이 정씨다. 이번 대선에서 전국의 정씨들은 확실히 단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원은 중앙고 출신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는 몇 차례 술자리를 가졌으며 ‘선배’라고 호칭한다. 민주당 내 중도개혁포럼을 이끌고 있는 정균환 의원과도 몇 차례 골프를 함께 하는 등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남궁진 전 장관이나 정균환 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 송석찬 의원은 정의원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상태다. 고교 때 축구선수였던 민주당 장영달 의원도 정의원과 친분이 두텁다. 장의원은 “올해 초 일본에서 열린 한일의원 축구대회 때 정의원은 포워드, 나는 오른쪽 날개를 맡았다. 정의원이 한 골을 넣었다”고 말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 민주당 이인제 의원,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와의 우호적 관계도 정의원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유리한 환경이다.

    대통령선거 투표일은 12월19일. 중앙선관위는 선거기간에 소요되는 선거비용을 투표 한 달 전쯤 결정한다. 92년 대선 때는 367억, 97년 대선 때는 310억원이었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정의원이 대선에 나서려면 최소한 300억~400억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변에 따르면 정의원의 개인 재산은 1500억~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대부분이 주식(현대중공업의 대주주로서 지분 11% 소유 등) 형태다.

    그러나 정의원의 한 측근은 “만약 출마하더라도 주식을 팔아 대선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재벌 이미지’만 부각되니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 일이다. 이 측근은 “보편적 방법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편적 방법이란 ‘정당을 통한 정치자금 모금’이다. 2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원내교섭단체 규모의 신당을 만들 경우 정의원은 선관위로부터 대략 80억원대의 국고 지원을 받게 된다. 400억원까지 후원금을 기부받을 수도 있다. 정의원과 환경신당 필요성을 논의한 바 있는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원내교섭단체도 못 되는 환경신당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자금 문제에서 실타래를 풀어나가면 정의원의 대선 출마는 정계개편과 맞닿아진다.

    정의원은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 개최를 위해 개인 돈을 많이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정의원이 별도의 사비를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온 측면도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대한축구협회에 파견 나온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경우, 정의원 개인이 아닌 법인체인 현대측에서 월급을 지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드컵조직위원장 명의로 개최되는 여러 행사는 정의원이 그 주인공이 되어 정의원에게 포커스가 맞춰지지만 행사비용은 조직위 예산이나 조직위에 지원되는 국고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팀이 예상을 깨고 8강전에 진출하자 조직위는 급작스럽게 8강전 초대권을 국회의원 전원에게 돌렸다. 실질적으로 정의원이 의원들에게 인심 쓰는 효과를 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직·간접 비용은 조직위 몫이었다. 정치권에선 적당한 때가 되면 월드컵조직위 예산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최근 “형제간엔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측의 직접 지원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평이다. 92년 대선 때 현대그룹의 국민당 자금 지원은 유권자들을 크게 실망시켜 패배로 이어졌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선거자금은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정의원이 이미 실탄을 따로 비축해 뒀을 수도 있고, 상황이 급하면 개인 재산이라도 처분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과 친분이 있는 한 인사가 전하는 경험담. “어느 날 저녁 정의원과 연락이 되어 정의원이 오라는 데로 갔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였다. 정의원은 바에 앉아 혼자서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

    20, 30대가 주로 찾는 카페에서 드라마 주인공처럼 혼자 술을 마시는 풍경은 기존 정치인들에겐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정의원에겐 ‘코스모폴리탄’적 이미지, 낭만적인 면모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정의원은 특히 영어를 많이 구사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올해 초 정의원은 기자가 ‘한국팀이 16강에 진출하면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고 묻자, “오버 심플리피케이션(과도한 단순화)”이라고 답했다.

    정의원은 재벌가 출신이면서도 보수적이지 않으며 개혁적 성향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다. 일에 있어선 사소한 부분에까지 철두철미하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때때로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너무 ‘디테일’(detail)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의원은 시간관리가 철저해 참모들은 한가롭게 보낼 때가 거의 없다. 승용차 안이나 호텔 등에서 보고를 받거나 호출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 정의원의 참모들은 종종 정의원에게 불려가 ‘시말서’도 쓴다고 한다.

    지난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장례식 때의 일. 정의원의 참모들은 4, 5일간 상주들과 함께 밤을 새며 문상객을 맞았다. 장례식이 끝난 뒤 정의원은 정치인 문상객을 보고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참모들은 다시 밤을 새면서 1000여명에 이르는 정치인 문상객을 정리해 다음날 보고했다. 그런데 한 참모가 한나라당 한 의원의 소속 정당을 민주당으로 잘못 표기했다. 정의원은 그 참모에게 시말서를 요구했다. 주변에선 “참모들이 5, 6일이나 밤을 새면서 고생했는데 그 정도의 실수를 문제 삼는 것은 좀…”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월드컵 이후 정몽준 의원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세 번째로 높은 정치인이 됐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공적, 사적 활동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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