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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부르는 해외 마약범죄의 덫

밀거래·투약하다 적발돼 129명 수형생활 … 중국의 경우 처벌 수위 높아 대부분 사형·무기징역

파멸 부르는 해외 마약범죄의 덫

파멸 부르는 해외 마약범죄의 덫
신모(당시 41세) 씨는 2001년 9월25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시의 총살장에서 사형됐다. 45개의 총구가 동시에 불을 토했고 15명의 사형수가 뿜어낸 뇌수, 피가 메마른 땅을 적셨다. 그의 시신은 다른 14구와 함께 비닐포대에 담겼으며, 땅으로 흐른 뇌수엔 붉은 흙이 덮였다.

신 씨는 중국에서 마약사범으로 적발돼 사형이 집행된 첫 한국인이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마약사범으로 현재 중국 교도소에 복역 중인 한국인은 32명. 미결수 5명을 빼면 모두가 중형(10년 이상)을 선고받았다. 국정원 관계자는 “신 씨처럼 해외에서 마약범죄에 연루돼 결국 파멸에 이른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내국인 마약사범 수감된 나라 총 17개국

한국에 기반을 둔 마약 제조·공급책은 뿌리뽑혔다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단속이 거세져 ‘선수’들이 외국으로 캠프를 옮겼기 때문. ‘총장급’ 히로뽕 기술자의 상당수가 이즈음부터 중국 등에 똬리를 튼 것으로 분석된다(총장급은 최고기술자를 가리키는 은어로, 총장급 아래에 ‘학장급’ ‘교수급’이 있다).

“한국에 제조창을 둔 마약 조직은 없다. 히로뽕은 중국, 필리핀, 태국, 캐나다를 통해 들어오고 있으며 아편과 헤로인은 서남 및 동남 아시아에서 생산돼 이란, 태국, 중국을 거쳐 유입된다. 엑스터시, 케타민 등 신종 마약은 미국, 네덜란드,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반입되며 아직 소량에 불과한 코카인은 미국과 콜롬비아 등에서 들어온다.”(국정원 관계자)



해외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들어오는 마약의 제조 및 유통 과정엔 한국인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최근엔 해외여행에 나섰다가 호기심에 마약에 손을 대거나 국제 마약조직의 꼬임(무료 해외여행, 사례비 지급 등)에 넘어가 마약을 운반하던 중 외국의 수사당국에 검거되는 일도 늘고 있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 따르면, 마약을 운반하거나 직접 마약을 밀거래 혹은 투약하다가 적발돼 해외에서 수형생활 중인 한국인은 129명(8월27일 현재). 내국인 마약사범이 수감된 나라는 17개국에 달하는데, 중국(32명)이 가장 많고 일본(29명), 미국(26명), 필리핀(11명), 대만(6명)이 그 뒤를 잇는다(표1 참조).

중국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한국인은 14명. 그중 8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6명은 여전히 사형수 신분이다. 다만 2001년 신 씨가 불귀의 객이 된 이후 실제로 사형을 집행당한 한국인은 없다. 한국인 사형수의 경우엔 선고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기징역으로 형을 낮춰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파멸 부르는 해외 마약범죄의 덫


중국 내 한국인 수감 실태
* 최초 선고 기준 사형선고 14명 중 8명은 무기로 감형 / * 자료 : 국정원
  사형 무기징역 20년 15년 10년 미결
32 14 8 2 1 2 5
베이징 9 4 2 0 0 0 3
선양 22 9 6 2 1 2 2
칭다오 1 1 0 0 0 0 0


최근 5년간 한국 경우 마약 운반사건 적발 사례
* wkfy : 국정원
일시 공급지 목적지 사건 내용
2000년 7월 중국 일본 중국산 히로뽕 3kg 일본 밀반출
2000년 8월 아프리카 일본 아프리카산 대마초 60kg 일본 밀반출
2001년 12월 중국 필리핀 중국산 히로뽕 91kg 필리핀 밀반출
2002년 2월 아프리카 일본 아프리카산 대마초 30kg 일본 밀반출
2003년 12월 태국 미국 태국산 아편 20kg 미국 밀반출
2004년 3월 필리핀 필리핀산 히로뽕 600g 괌 밀반출
2004년 5월 필리핀 필리핀산 히로뽕 1.2kg 괌 밀반출
2005년 2월 중국 일본, 호주 중국산 히로뽕 1.2kg 호주 등 밀반출
2006년 3월 필리핀 필리핀산 히로뽕 12kg 괌 밀반출
2006년 3월 브라질 룩셈부르크 브라질산 코카인 4kg 한국과 프랑스 경유 룩셈부르크 밀반출
2006년 5월 중국 중국산 히로뽕 6kg 괌 밀반출


관광객에게도 마약 운반책들 접근

중국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 씨와 김모 씨가 무기수로 감형된 경우인데, 이들은 헤이룽장 성 치타이허(七臺河) 시에서 히로뽕을 제조하다가 검거됐다. 이들의 히로뽕 제조공장은 1000여㎡에 이르렀으며, 중국 공안은 히로뽕 완제품 8.27kg, 히로뽕 반제품 및 마약 제조원료 1t을 압수했다고 한다.

총장급 기술자 정모 씨는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수년 전 옥사했다. 간질환으로 사망했는데 의사의 치료를 제대로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중국 감옥의 열악한 처우는 인권단체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마약을 투약하거나 마약범죄에 개입하는 것은 인생을 끝장내는 행위”라고 말했다. 중국의 마약사범 처벌이 가혹하기 때문이다. 헤로인·히로뽕을 50g 넘게 밀매하거나 운송하면 사형에, 50g 이상을 단순 소지한 사람도 무기징역에 처해질 만큼 양형 기준이 엄격하다. 아편전쟁(1840~1842년)의 악몽을 간직한 중국은 ‘마약과의 인민전쟁’(2004~ 2008년)을 선포하고 마약 뿌리뽑기에 나선 상황이다.

미결수를 제외한 중국 내 한국인 수감자 27명 중 10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명에 불과하다. 15년형 1명, 20년형 2명을 제외하면 기결수 중 80%가 사형수이거나 무기수인 셈이다. 한국인 마약사범은 베이징(北京)에 9명, 선양(瀋陽)에 22명, 칭다오(靑島)에 1명이 수감 중이다(표2 참조).

가차없이 사형에 처하는 엄격한 처벌에도 중국에서 마약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중국 마약 수사기관인 금독국(禁毒局)에 따르면 2005년 적발된 마약사범은 4만5000건에 5만8000명. 마약 밀매 및 밀조 조직도 1500개를 넘어선다. 중국 당국이 강제로 마약을 끊게 한 의존자만 지난해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파멸 부르는 해외 마약범죄의 덫

브라질 경찰에 압수된 동희 1호 적재 코카인.

중국에서 마약범죄에 연루되는 한국인은 주로 중국에 진출한 마약조직원,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간 도피자, 사업실패자, 소규모 무역상 등이라고 한다. 중국동포(조선족)를 매개로 범죄조직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다, 중국의 마약사범 양형 기준에 대한 무지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최근엔 마약 의존자들이 해외에서 마약을 복용하거나 현지가이드의 유혹에 넘어가 히로뽕에 손댔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있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중국 현지 마약조직이 투약 경험이 없는 한국인 관광객에게도 접근하고 있다”면서 “호기심에 한번 마약을 복용하면 다음 여행길에 또다시 마약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상하이(上海)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던 마약 브로커 신모(45) 씨는 중국 수사당국에 쫓기고 있다. 그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마약·섹스 관광을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테이블당 50만~100만원을 받고 술과 마약을 팔았다고 한다. 불법체류 중인 한국인 조직폭력배와 얽힌 중국 유흥업소에선 엑스터시를 최음제 혹은 피로회복제라고 속여 권하기도 한다.

중국 마약조직의 주요 타깃은 한국인 골프 관광객. 마약조직은 칭다오와 상하이, 선양 등지에서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골프장 주변을 무대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흥주점 등에서 골프관광객을 대상으로 은근히 마약을 권유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국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마약운반책들 어떤 수법 쓰나

섬유 샘플·차 등으로 위장해 운반 부탁


파멸 부르는 해외 마약범죄의 덫

중국 웨이하이항에서 인천행 배를 기다리고 있는 보따리상들.

“심부름 값을 드릴 테니 보이차 좀 인천항으로 운반해주세요.”

8월20일 보따리상 A 씨는 중국 산둥 성의 한 항만 앞 노상에서 B 씨로부터 보이차를 대신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인천국제여객터미널에 마중 나올 C 씨에게 전달해주면 수고료를 주겠다는 것. A 씨가 넘겨받은 꾸러미에 든 것은 보이차가 아니라 시가 3억원 상당의 히로뽕(약 100g)이었다. 전북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가 이 마약을 적발하면서 A 씨는 결국 마약 밀수범이 되고 말았다.

“급한 샘플인데 인천공항까지 운반해주세요.”

“쭛쭛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한테 전해주시기만 하면 돼요.”

해외 공항이나 항만에서 이따금씩 볼 수 있는 광경으로 무심코 부탁을 들어줬다 마약사범으로 몰린 사람이 적지 않다. 해외에서 실형을 살고 있는 마약사범의 상당수가 운반 심부름을 하다가 적발된 것이다.

인천공항세관 관계자는 “밀수품이나 마약이 들어 있을 경우엔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밖에 없다”면서 “불가피하게 부탁을 들어줬다면 반드시 세관에 먼저 신고해 휴대품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제의 조심하세요!!!

.무료 해외여행 등의 선심성 관광을 제의하면서 여행용 가방 등의 운반을 요청해오는 경우.

.해외공항에서 섬유 샘플이나 광석 등이 들어 있다며 사례비 지급 조건으로 가방을 한국(혹은 제3국)으로 운반해줄 것을 요청해오는 경우.

.공항에서 여행객을 가장해 접근한 뒤 긴급 용무가 생겨 귀국이 곤란하다며 국내 가족, 친지에게 선물을 전달해달라고 요청하거나 공항, 항만 통과 시 휴대물품이 많아서 그러니 가방을 좀 들어달라고 부탁해오는 경우.

.유력 인사임을 과시하면서 우리 공항, 항만 직원에게 특별 요청을 해놓았다고 언급하며 휴대품 운반을 부탁하고 사례비를 주는 경우.


외항선원 연루된 마약범죄도 빈번

국제 마약조직이 무료 해외여행 등을 미끼로 한국인에게 마약 운반을 제의하는 일도 잦아졌다고 한다.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나라가 많은 데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 이미지를 갖고 있어 의심을 덜 받는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 이들은 운반 물품을 수출샘플 등이라고 말한 뒤 항공기 출발 직전에 물품을 전달함으로써 운반자를 속인다.

중국에서 식품점을 운영하던 최모(58) 씨와 이모(53) 씨는 6월, 중국에 체류 중인 마약범죄 조직원으로부터 물건 운반을 조건으로 무료 해외여행을 제의받고 페루로 출국, 코카인을 넘겨받아 스페인 마드리드로 운반하려다가 페루 공항당국에 적발됐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운반하던 물품이 마약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중국 선양에 거주하던 박모(41) 씨는 지난해 중국에 체류 중인 나이지리아 마약조직으로부터 섬유 샘플을 아르헨티나에서 영국으로 운반해줄 것을 부탁받고 아르헨티나 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출국 수속을 밟다가 섬유 샘플 속에 은닉된 코카인 8kg이 적발돼 영어의 몸이 됐다.

한국인 외항선원이 연루된 마약범죄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외항선 선장이나 선원을 이용해 마약을 운반하면 별도의 운반 수단이 필요하지 않은 데다 통관 수속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남미의 마약조직들은 한국계 마약조직원을 이용해 경제 사정이 어려운 한국인들을 현지로 불러 마약 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

4월 가나 선적의 원양어선 선원 박모(46) 씨 등 3명은 남미 마약조직과 공모해 코카인 30kg을 스페인으로 밀반입하려다 가나 연안에서 해군에 적발됐다. 지난해 7월엔 또 다른 외항선원 박모(52) 씨가 대서양 공해상에서 헬기로부터 남미산 코카인 3700kg을 넘겨받은 뒤 스페인으로 항해하다가 스페인 해경에 붙잡히기도 했다.

“남미 마약 조직이 한국인을 운반책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내국인이나 외항선원을 포섭하는데, 운반하다가 적발되더라도 조직이 해결해줄 수 있다며 안심시킨다. 거액을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마약 심부름을 하다가 적발돼 외국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국정원 관계자)

해외에서 마약범죄에 연루돼 적발되면 장기간 수형생활로 인해 개인 및 가정이 파멸되는 데다 국가 이미지도 실추된다.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마약의 경유지로 이용되거나 한국인이 마약 관련 국제범죄에 연루되면 한국발 물품의 세관검색 강화 등으로 인해 경제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왜 마약 유통 경유지로 이용되나

마약 청정 이미지 탓 목적지에서 검색 소홀


파멸 부르는 해외 마약범죄의 덫

한국의 공항에서 마약감시견이 마약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국제 마약조직이 한국을 마약의 중간 경유지로 이용하는 일이 잇따라 발각되고 있다. 한국을 중간기지로 이용하다 적발된 사건만 최근 5년간 11건(표3 참조).

히로뽕, 코카인은 물론이고 신종 마약인 MDMA, LSD, 2C-B 등도 태국, 중국 등에서 마약조직을 통해 밀반입된 뒤 제3국으로 반출되고 있다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한국을 경유하는 마약 운반 사건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마약 청정국 이미지를 갖고 있는 한국의 공항, 항만을 경유지로 이용하면 목적지에서 적발될 확률이 낮다고 여기는 듯하다.”(국가정보원 관계자)

51개 항공사가 33개국, 112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은 마약이 생산지(동남아, 남미)에서 소비지(유럽, 미주)로 이동하는 요로에 자리잡고 있다. 마약조직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춘 셈.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의 한 관계자는 “인천공항의 환적 및 환승 여건이 뛰어난 데다, 검색이 엄격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 공항을 거치면 목적지 공항 세관 검색이 소홀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국을 거쳐 들어온 화물은 도착지에서 별다른 검색 없이 통과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마약의 중계지로 낙인 찍히면 외국 공항, 항만에서 한국 화물의 물류 처리 속도가 떨어져 수출에 차질을 빚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6.09.05 551호 (p16~19)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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